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미쁘신 하나님 (고전 1:1~9)

  • 잡초 잡초
  • 414
  • 0

첨부 1


미쁘신 하나님 (고전 1:1~9)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고린도는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교통이 발달했기 때문에 무역과 상업도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사람들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도덕적으로는 매우 부도덕하고 또 황폐했습니다. 고린도는 다른 헬라의 도시들처럼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다만 우상 숭배뿐 아니라 우상 숭배를 핑계로 공공연하게 매춘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비너스 신전에 무려 천 명 이상의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말만 사제였지 실상은 공인된 창녀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사치와 향락과 퇴폐 문화의 온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는 말은 음란하게 행동한다는 말로 사용될 정도였다고 하는 것을 볼 때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퇴폐적이고 향락 지향적인 도시 고린도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그 결과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일 년 반 동안 머물면서 천막 수선하는 일을 하며 전도했습니다.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고린도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파당이 생겼습니다. 누구는 바울에게, 누구는 아볼로에게, 누구는 게바에게, 그리고 또 누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며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발생한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까지 끌고 갔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음행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사도직을 놓고 시비하는 일까지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사도 바울로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 그는 엎드려 기도하며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오늘 한국 교회의 형편은 어떤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오늘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급격하게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툭하면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으로 달려가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신앙 이전에 인간적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고 날이면 날마다 교회 안의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이 전파를 타고 안방에까지 전달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분명히 세상의 빛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빛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 참 소망을 안겨 주어야 할 교회가 자신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한국 교회의 현 주소인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하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그 유명한 스펄전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문제가 없는 완전한 교회를 제게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자네가 혹시 그런 교회를 찾을 것 같으면 오히려 나에게 소개시켜 주게.” 그렇습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 중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물론 이 땅에 세워진 주님의 몸된 교회의 문제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들만 바라보며 비판하고 안타까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 심하게 가슴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를 위하며 간절히 부르짖어 간구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을 다시금 하나의 교회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빛으로 발견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한 성도들로 남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다만 고민하고 염려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자신에게는 없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매달렸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는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열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죄악과 불의 가운데서 그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참 소망이라는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사도 바울은 그런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문제 투성이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붓을 들었습니다. 붓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절망과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에 차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인사말에서 책망의 말보다는 기대에 찬 소망의 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문제들의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써 내려가다 보니 이 짧은 인사말 가운데서 그는 열 번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 말씀으로 재차 강조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또한 고린도전서 2장 2절 말씀으로 다시금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다른 처방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이 그들의 모든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그는 믿고 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9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무슨 말입니까?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인간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신실하시다는 말입니다. 공동 번역 성서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설립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왜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문제의 장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처음부터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교회를 위하여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파당이 생기고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라는 것도 결코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의견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다 보니까 마찰과 잡음이 생긴 것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사람의 생각에 의지할 것 같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문제 해결의 방법까지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그 옛날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 문제들의 해결 방안도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찾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파당을 짓는 문제도, 분쟁을 일삼는 문제도, 부도덕의 문제도 성경이 지시하시는 대로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문제라도 주저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와 내려놓음으로 말미암아 신실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평강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