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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3) :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 (신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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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3) :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 (신 6:1~9)

다음 세대가 중요합니다

유대인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은 약 1,400만 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미국에 590만 명, 이스라엘에 53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서울과 서울 근교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 적은 인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은 유대인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는 몇 명이나 될까요?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부터 2006년까지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173명으로, 전체 수상자의 2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상분야는 주로 물리, 화학, 의학, 경제학으로 상대적으로 평화상과 문학상의 비율이 낮습니다. 과학과 경제학 분야만 따진다면 거의 전체 수상자의 1/3에 육박하는 놀라운 숫자입니다. 그 뿐 아니라 미국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는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20%가 유대인이고, 미국 100대 부호 중에도 2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가히 세계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의 학계, 재계, 정치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유대인의 자녀교육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고 간에 자녀교육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자녀교육열 하면 우리나라가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민족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노벨 평화상만 빼고 과학 의학 경제 분야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어떻게 결과가 이렇게 다를까요? 그 답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소위 '쉐마 교육법'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독특한 자녀교육법이 들어 있습니다. '쉐마'란 히브리말로 '들으라'는 뜻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이스라엘)"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신명기 6장 1절부터 나오는 말씀을 '쉐마'라고 부르며 자녀교육법의 근거로 삼고 철저히 이 말씀에 근거해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쉐마의 말씀에 보면 '축복'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안 나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유대인 부모들에게 자녀에게 이렇게 가리치라고 명하신 의무들뿐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이 '쉐마' 말씀을 자녀와 자녀손들을 위한 최고의 '축복의 말씀'으로 알고 너무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한 번 살펴볼까요? 쉐마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인 4절은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오직 그 분만 섬기고 그의 말씀만 청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녀교육의 첫째 원칙은 공부도 아니고 출세도 아니고 하나님만 참 신인 줄 믿고 그분만 따르고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둘째 부분인 5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가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만 하나님이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인 6~9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자녀들에게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나와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특히 자녀들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집에 앉았을 때든지 밖에 나갔을 때든지, 내 품 안에 있을 때든지, 부모의 품을 떠나 어디를 가있든지, 누워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말씀을 가르치고 또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쓴 팔찌를 손목에 차고 말씀을 쓴 천으로 머리에 두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말씀을 쓴 두루마리를 두어서 언제나 하루 24시간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쉽게 대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녀들이 말씀을 늘 보고 배우고 외우게 해서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원칙이나 방법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내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며 반드시 잘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쉐마 교육을 유대인들이 그대로 실천해서 자녀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인들은 세계 위에 우뚝 서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은 위대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신 28:13). 그래서 오늘도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다른 교육보다 말씀교육을 목숨 걸고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놀라운 복을 우리 다음 세대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온 자녀들, 즉 2절에 나온 네 아들과 손자들은 누구겠습니까? 물론 우리의 혈육인 자식들과 후손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를 놓고 본다면 우리 교회의 아들과 손자들, 우리 교회의 후손들은 누구겠습니까? 우리가 목숨 걸고 말씀 가르치고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들이 되도록 가르쳐야 할 후손들은 누구겠습니까? 올해 2008년 우리 교회 주제는 총회의 주제를 따라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다음 세대는 누구겠습니까? 첫째,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는 어린이들입니다. 둘째,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는 청소년들입니다. 셋째,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는 청년들입니다. 넷째,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는 새 가족들입니다. 이 '다음 세대'들을 잘 품고 키워야 교회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는 미래가 있는 교회인가?

어떤 교회가 미래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교회의 교회학교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 현재 교회학교 어린이와 청소년 숫자가 많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당장 숫자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학교 시설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본당은 시설도 좋고 냉난방이 완비되어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예배드리는데, 교회학교는 시설도 낙후되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단정해도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미래가 없다." 지금 아무리 어른 숫자가 많이 모인다 해도 미래가 없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목사님이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떤 교회 교사헌신예배 강사로 갔을 때라고 합니다. 교육관에서 강의를 하는데 때마침 무더운 여름인데도 에어컨은커녕 낡은 선풍기 몇 대만 돌아가서 무척 무더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마침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장로님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른들 예배드리는 본당에는 에어컨 있습니까?" 장로님들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무척 자랑스러운 듯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물론입니다. 아주 최신형 에어컨 달아서 예배 때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교회 아주 망할 교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을 들은 장로님과 교사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강사로 온 목사님이 교회를 축복하기는커녕 망할 교회라고 하니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하지만 이 '망할 교회'라는 말 속에는 깊은 뜻이 들어있었습니다. 미래가 없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어른들은 시원하게 예배드리겠다고 본당에 최신형 에어컨 달면서 교육관에는 선풍기 몇 대 달아서 아이들은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예배드리게 하는 교회니 이런 교회에 아이들이 올 리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어른이 많이 모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텅텅 비는 교회가 되고 말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미래가 없는 교회고 망할 교회인 것 맞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미래가 있는 교회인가? 우리 교회는 망할 교회인가, 흥할 교회인가?" 여러분도 궁금하시다면 예배 마치고 당장 교육부실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교회건축위원회와 함께 몇몇 교회를 탐방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그래도 최근에 건축한 소위 잘 지었다는 교회들을 돌아보는데 참 많은 것을 깨닫지만 그 중에서도 이 교회는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교회인가? 즉 미래가 있는 교회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를 배려하지 않고 미래가 없는 교회인가? 이것은 건축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그야말로 본당중심의 건축을 했더군요. 본당은 정말 으리으리합니다. 천정은 하늘을 찌를 듯 높고, 좌석은 수천 석에 의자는 너무 편하고 푹신합니다. 냉난방은 물론이고 음향과 영상 시설은 최신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부분의 건축비를 본당에 투자하다보니 자연히 교육관이나 다른 시설은 상대적으로 미약하지 그지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와서 교회를 볼 때 어디부터 보겠습니까? 당연히 본당이지요. 그래서 본당을 크고 화려하게 지으면 속된 말로 폼은 납니다. "야, 이 교회 참 멋지다. 잘 지었다" 하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에 교회를 지을 때는 다른 곳보다 본당에 주로 투자를 했습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본 교회 중에 그야말로 모든 시설의 중점을 교육과 새 가족에 최우선적으로 배려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른들 예배드리는 본당은 조금 작게, 수수하게 지었다면 교육관은 가장 편하고 좋은 자리에, 최신식 시설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말 불편 없이 예배드리고 모일 수 있도록 건축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좀 더 걸어도 좋으니 꼭대기나 지하에 본당을 만들었다면 아이들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좋은 위치에 교육시설을 만들고, 또 본당 중에서도 가장 본당과 가깝고 제일 깨끗하고 좋은 방, 제일 햇볕 잘 드는 방은 반드시 새 가족부실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 가운데 어떤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입니까? 어떤 교회가 미래가 밝은 교회입니까? 실제로 대구의 어떤 교회는 어린이와 유아들을 위해 좋은 시설을 만들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니까 아이들이 교회에 많이 와서 건축 후 1년 사이에 교회학교가 세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는 것이 아니라 어른은 두 배로 늘었습니다. 왜냐? 요즘은 어른들 따라 아이들이 교회 가는 시대가 아니라, 아이들 따라 어른이 교회 가는 시대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자기 자녀 귀한 줄 알아서 자녀들이 편하고 좋은 교회 가는 것입니다. 자식 사랑입니다. 그러니 교회도 다음 세대를 품고 그들을 배려하는 교회가 되어야 어른도 품을 수 있고 지금보다는 내년이, 내년보다는 십년 후가 더 좋은 교회, 미래가 밝은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도 그런 교회를 지을 것입니다. 교회 건축도, 그리고 모든 교회의 정신과 모든 프로그램도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말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보는 것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제가 서양의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서구 교회들 가운데 웅장한 교회건물, 수십 수백 년 된 보물급 교회건축물은 있는데, 예배 때 텅텅 비어 사람이 없는 교회를 보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 교회들도 다 좋은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웅장한 교회건물에 사람들이 가득 찰 때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시절에 거기 모인 사람들만 생각했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십년 이십년이 지나고 백 년이 지나니 텅 빈 웅장한 건물만 남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런 징조가 서서히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선교 12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교회는 그 성장이 정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인구 4천 7백 28만 명 가운데 53.1%에 해당하는 2천 4백 97만 명이 종교인구인데,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전체의 18.3%에 해당하는 8백 76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불교가 22.8%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일 뿐만 아니라 10년 전인 1995년을 기준으로 할 때, 천주교가 무려 74.4% 증가하고, 불교가 3.9% 증가한 것에 비해, 기독교는 오히려 1.6% 감소한 통계입니다. 이런 통계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특히 성인들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에 해당하는 교회학교 아동과 청소년, 청년의 감소는 더 우려할 만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총회에서 통계를 낸 것을 보면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지난 10년 동안 교회학교 학생 수가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학교 유치부 학생 수를 보면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약간씩 증가하다가 2000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5~6년 사이에 1.03%의 감소율을 보였고 심지어 어떤 해에는 한 해에 7.1%나 감소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동부는 1996년보다 2005년에 0.95% 감소했는데 1997년도에는 한 해에 9.7%나 감소하였습니다. 중고등부는 더 심각합니다. 지난 10년 사이에 학생 수가 7.8% 감소했는데, 특히 1997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무려 31.9%나 줄었습니다. 우리 교단만 아니라 다른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육부가 2000년 이후로 계속 감소하고 있고 중고등부는 타격이 가장 심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데 당연하지 않냐?"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학교 숫자의 감소율이 출산감소율보다 몇 배 더 크다면 핑계가 안 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교회학교 숫자가 그리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어른들이 주일 평균 650명에서 700명 사이 출석하는데 교회학교가 평균 300명에서 400명 사이 출석한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어른에 비해 아이들이 참 많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모든 에너지와 역량이 다음 세대를 위해 모아지지 않으면 십년 후, 이십 년 후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더 감사한 것은 청년의 숫자가 정말 많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 청년부는 불과 10명, 12명 모였는데 최근에는 70명이 넘게 모입니다. 여섯 배, 일곱 배 증가한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될 것이라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른들이 청년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고 후원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 세대들 중에 새 가족은 여전히 과제가 많습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에 등록한 새 가족이 150명이 채 안 됩니다. 물론 다른 교회에 비해 정착률이 높아서 그 가운데 상당수가 정착하고 지금도 신앙생활 잘 하고 있지만 교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우리 성도들이 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교회의 문턱이 많이 낮아지고 텃세가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더 교회 문턱을 낮추고 새 가족이 신앙생활 하기에 정말 좋은 교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가 될 수 있고, 미래가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고, 망할 교회가 아닌 흥할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시고기의 마음으로

올해 우리 교회 주제로 삼은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가 한낱 구호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이 일은 우리 교회의 미래뿐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품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이 말을 드리고 설교를 맺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가시고기'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가시고기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부성애가 가장 강한 생물이라고 합니다. 암컷 가시고기가 알을 낳을 때 산란준비는 온전히 수컷의 몫입니다. 수컷 가시고기가 새끼를 키울 둥지를 짓고 나면 암컷은 그곳에 알을 낳고는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립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수컷의 알 지키기가 시작됩니다. 알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수많은 침입자들을 물리치고 알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앞 지느러미를 이용해 부채질하며 끊임없이 둥지 안에 새 물을 넣어줍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둥지 안의 알을 지키고 키우는 데만 전념합니다. 마침내 알이 부화해 새끼들이 탄생하지만 수컷은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갓 부화한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오면 새끼들을 물어다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아직 나올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화한지 5일 정도 지나면 새끼들은 제법 자라 둥지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새끼들을 모두 안전하게 떠나보낸 수컷은 마침내 그 자리에서 삶의 최후를 맞이합니다. 둥지 짓기부터 새끼들을 모두 떠나보내기까지 약 15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수컷의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주둥이는 다 헐었고 화려했던 몸 색깔은 볼품없이 변해서 그토록 애지중지 지키던 둥지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며칠 후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은 죽은 수컷 주위로 모여듭니다. 새끼들이 모인 것은 자기를 위해 희생한 아버지를 슬퍼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비의 살을 파먹기 위함입니다.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주는 것이 바로 '가시고기' 아비의 자식사랑입니다.

비유가 어떻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가시고기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교회 건축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장로님들 중에 몇 분이 건축위원이 되고, 또 어떤 분이 될 것인가 깊이 의논을 했습니다. 그 결과 비교적 연세가 있는 장로님들, 즉 은퇴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장로님 몇 분과 아직 은퇴가 많이 남은 비교적 연세가 젊은 장로님도 건축위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세가 있는 장로님들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몇 년 안 있으면 은퇴할 텐데 오래 일 하지도 못할 우리들 말고 좀 젊은 장로님들이 건축위원이 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연세 드신 장로님들,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제 은퇴가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세요. 저는 건축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중에 그런 분은 한 분도 없겠지만 은퇴 몇 년 안 남은 내가 뭘 하겠느냐? 교회 다 지어봐야 내가 쓰지도 못할 교회인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고 내가 교회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마지막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바로 건축을 해서 그들에게 남겨주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앞으로 교회건축을 할 일은 다시 없을 것인데 마지막으로 한 번 멋지게 교회 짓고 물러나면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장로님들은 이 말에 쾌히 승낙하고 건축위원을 맡아주셨습니다.

여러분, 사실 건축위원장이나 건축위원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속된 말로 잘 해봐야 본전이요 못하면 손해입니다. 열심히 건축 위해 일해도 잘 되면 그만이고 조금만 문제가 있거나 마음에 안 들면 온갖 비난과 욕은 다 들어야 하는 어려운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장로님들 마지막으로 제일 멋진 일 하겠다고 맡았습니다. 1년 대계는 농사요, 10년 대계는 나무 심는 것이요, 100년 대계는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우리 교회의 10년 대계를 위해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100년 대계를 위해 교육을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할 것입니다. 마치 가시고기가 자식들을 위해 둥지를 짓듯 교회를 건축할 것입니다. 가시고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새끼를 지키다가 마지막 죽으면 그 몸마저 새끼들을 위해 내주듯 그런 마음으로 건축을 할 것입니다. 어디 장로님들이나 건축위원들뿐이겠습니까?

앞으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부모의 마음, 가시고기의 마음을 품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가 되고 그래야 교회에 미래가 있습니다. 어디 건축뿐이겠습니까? 앞으로 모든 일을 하매 교회는 지금 우리들 자신이 편하자고, 우리들이 누리자고 하지 마시고 앞으로의 세대를 배려하고 그들을 생각하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런 희생의 마음, 다음 세대를 품는 마음을 가진 교회를 반드시 축복하셔서 아름다운 미래를, 참으로 놀라운 앞날을 우리에게 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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