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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베스의 기도 (대상 4:9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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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대상 4:9 - 10)

(9)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가 읽은 이 기도는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한국교회에 한 10년 전부터 유행했던 기도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도 이 기도 계속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이미 축복 받은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유행을 타서는 안 됩니다. 이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썼던 부르스 윌킨슨 이라는 사람은 무려 30년 동안 이 기도를 계속했고 그 결과 받은 축복을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다시 한 번 야베스의 기도를 묵상하며 우리의 기도 내용들을 점검하고 그래서 모두 축복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말씀은 성경에서 꼭 오아시스와 같은 구절입니다. 그 내용도 우리에게 감동적이기도 하려니와, 말씀의 위치도 꼭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역대기상 1장부터 9장까지는 지루한 부분입니다. 아담부터 바벨론 포로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의 족보를 쫙 나열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만 500명이 넘습니다. 4장에서도 야베스와 관련된 부분 외에는 온통 사람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 역대기서 첫 부분은 대충 건너뛰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그 한 가운데 숨겨져 있는 이 오아시스와 같은 야베스의 기도 부분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읽는 기쁨입니다. 힘들고 졸리더라도 꾸준히 말씀을 읽어 가십시오. 그러다가 한 구절이 가슴에 ‘팍’ 하고 꽂힐 때, 그 동안의 수고는 넉넉히 보상받고도 남습니다.

기도로 운명을 바꾼 야베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녀들의 행복을 바랍니다. 그래서 이름도 될 수 있으면 좋은 이름, 긍정적인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어머니는 자식의 이름을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즉, ‘고통’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아마 야베스가 태어날 때,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 어머니가 야베스를 힘들게 낫고 죽었을지도 모르고, 야베스를 낳았을 때 그 아버지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정에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쳤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식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짓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야베스가 평생동안 ‘고통아’ ‘고통아’라고 불렸을 때의 그 고통과 절망감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더욱이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운명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 뜻 그대로 야곱은 평생 동안 남의 것을 움켜쥐는 인생을 삽니다. 형 에서의 것을 움켜쥐기 위해 거짓말하고 사기를 치고 삼촌 집으로 달아납니다. 삼촌 집에서도 삼촌 라반의 것을 움켜쥐려고 하지만 이번엔 자기가 속임을 당하면서 20년 동안 수고로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얍복 강에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창32:28). 이는 “더 이상 사기꾼 인생으로 살지 말라.”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줍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운명입니다. 야베스는 고통스럽게 사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 말씀합니까? 9절의 첫부분을 보십시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고통스런 야베스의 운명이 존귀한 자의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운명을 바꾼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10절에 드린 야베스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야베스는 평생 동안 10절에 있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옵소서”, “하나님,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하나님, 당신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이 네 마디 기도가 야베스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야베스 기도의 중요성

이 야베스 기도가 우리에게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축복하는 기도가 약합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은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교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신앙인들은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 교회에 봉사해야 된다, 희생해야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잘 모릅니다. 또 자기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이기적인 것은 죄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많은 시간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왠지 쑥스러워하고 죄송스러워합니다.

또 우리 기도는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한 기도는 적습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을 한 번 분석해 보십시오. 우리 기도는 문제에 끌려 다니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남편 문제, 자녀 문제, 건강문제, 물질문제, 바로 눈앞에 벌어진 문제만을 놓고 간구하다 우리 기도는 끝나고 맙니다. 자기 미래를 위한 진취적인 기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정말 소중한 것은 ‘나’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는 것은 내 몸을 통해서입니다. 내가 잘 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내가 잘 되고 능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되고 연약하면 다른 사람에게 짐만 될 뿐입니다. 먼저 나입니다.

이 나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죽으면 이 우주도 끝장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데 여러분이 죽은 이후에 이 우주가 계속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태어나던 날이 바로 이 우주가 창조되던 날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이 우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변화되면 우주도 변화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슬프면, 아무리 아름다운 새가 와서 지저귄다 하여도 그 노래는 슬픔의 노래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뻐하며 감사로 가득 차 있다면, 길가에 풀 한 포기도 마치 여러분을 반기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내가 능력 있어야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오늘 야베스의 기도 하나 하나를 묵상함으로써 나를 소중하고 능력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기도, 내게 복에 복을 더하시고

야베스는 먼저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시길 기도했습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된 인생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믿는 여러분에게도 많은 복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야베스는 “하나님, 저에게 주시기로 미리 창세 전에 계획하셨던 그 복으로 저를 채우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제대로 누리고 살지 못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환상 중에 천국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 천국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너무 황홀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천국 한 모퉁이에 허름한 창고가 한 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창고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간청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저 창고를 꼭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해진 이 사람은 강청을 해서 결국 그 창고 안을 구경하게 됩니다. 창고 안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인 하얀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이 쓰인 상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간곡히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 상자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이 사람은 얼굴빛이 침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이 사람이 평생 동안 받을 수 있는 축복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복을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했고, 그 많은 복들이 여기 천국 창고에 썩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복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혹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창고는 기도하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인생을 볼품없이 살도록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신묘막측하게 지으셨다고 시편 기자는 139편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만약 우리가 볼품없이 살고 있다면 그것은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예비하고 계시지만 그 복은 간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7:7), 야고보서에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매일같이 주기도문을 반복합니다. 그 중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간구를 어떤 생각을 하시며 반복하고 있습니까? 그 기도를 이렇게 바꾸어 보십시오. “저를 이 세상에 내려보내시면서 제 인생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그 하나님의 뜻이, 그 하나님의 복이 제 인생 가운데 다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도록 간구하여 그의 인생을 고통의 인생에서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었습니다.

둘째 기도,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야베스의 두번째 기도는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지경은 곧 땅을 말합니다. 내가 경작할 수 있는 땅을 넓혀 달라는 간구입니다. 오늘날의 의미로 해석하면 나의 사업을 확장 시켜달라는 기도이고, 그래서 나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자기의 사업이 확장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지금 직장에 있습니까? 자기 자리를 높이시고, 유능하게 하여 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케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지금 구역장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 구역의 지경을 넓혀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자기 인생의 지경을 자기 능력이나 경험으로 한계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인생 가운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자신만을 바라볼 때는 내가 감히 어떻게 그 큰 일을, 내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하면서 연약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등 뒤에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능력 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플러스하십시오.

이런 실험이 있습니다. 벼룩을 통에 넣고 높이 뛰도록 합니다. 벼룩은 자기 키의 50-100배 높이 뛸 수 있습니다. 보통 2-3mm 이니 약 20cm만큼 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벼룩의 중간에 유리벽을 설치 합니다. 그러면 벼룩은 여러 번 뛰다 그 벽에 부딪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놔두었다가 이번엔 그 유리벽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그 뛰는 높이를 관찰하면 그 벼룩이 10cm 이상은 뛰지 못합니다. 스스로 한계에 걸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동일한 실험을 물고기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큰 어항에 물고기를 넣고 중간에 유리벽을 설치합니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여러 번 그 유리벽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옵니다. 한참 이렇게 놔두었다가 유리벽을 제거해도 물고기는 그 경계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한계는 거기까지라고 정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래 동안 고생하고 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한계를 스스로 작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영향력을 미치는 인생으로 삽니다. 필립스 브룩스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능력에 맞추어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추어 능력을 달라고 구하라” 내 능력은 이 만큼이니까 이 정도의 일만 하겠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안에 하나님께서 무한한 능력을 심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보따리를 열기 시작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러므로 더 큰 일을 구하십시오. 우리 인생의 바운더리를 더 넓게 치십시오. 주님은 기드온을 부르실 때 자기를 스스로 작다고 여겼던 기드온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두려워하는 예레미야를 부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7) 한계에 갇히고 연약한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적극적으로 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성경은 온갖 진취적인 축복으로 가득합니다. 야곱이 아들 요셉을 다음과 같이 축복하였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49:22) 이 기도는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샘 곁에 심겨진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듯 하나님 제 인생을 축복해주셔서 제 인생의 지경이 확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편 2편 말씀도 그렇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8).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온 천하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땅끝입니다.

셋째 기도,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고

야베스의 세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경이 넓어도 그 지경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손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의 손이 돕는 인생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계획을 세워 놓아도 환경이 바뀌면 헛수고가 되고 말 때가 있습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았는데도 실패할 때가 있고 대충 했는데도 성공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16:1)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같이 주의 손이 나를 도우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할 때는 지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지치는 이유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치는 이유는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아무리 많은 일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조그만 일도 힘이 들고 짜증이 납니다. 새벽을 기도로 채우는 사람은 하루가 두렵지 않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일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일에는 ‘되는’ 일이 있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일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일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일이 자연스럽게 되는 은혜의 사람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일을 다하고도 성사될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일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일이 저절로 됩니다. 어떤 리더가 훌륭한 리더냐 하면 일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뒤에서부터 몰아쳐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만들어주는 리더가 정말 훌륭한 리더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임할 때 이처럼 일이 되어 갑니다.

이 기도는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사람이 붙고 일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팔자가 주어지고 또 결혼할 때 팔자가 바뀝니다. 상대방의 팔자가 내 팔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제 예수님의 복이 내 복이 되었습니다. 나의 저주는 예수님이 가져가시고 예수님 안에 있던 복은 나에게 들어왔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교환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아침  ‘나는 복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기도,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네 번째 기도는 사단의 역사를 미리 저지하는 기도입니다. 전쟁이나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막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 가장 잘하는 전쟁입니다. 병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예방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건강법입니다. 야베스의 네번째 기도가 바로 미리 환난이나 근심을 막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저축이 됩니다. 지금부터 이런 식으로 기도를 드리면 환난 때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미리 깨어서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했지만 쉽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시험을 미리 막는 예수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베스의 네번째 기도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미리부터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방패입니다. 시험을 막는 기도가 우리를 환난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환난을 당했다 할지라도 기도하고 환난을 당한 사람과 기도하지 않고 환난을 당한 사람은 그 회복 속도와 결과가 다릅니다. 기도하고 환난을 당한 사람은 곧 일어 설 것입니다. 그 환난이 오히려 복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연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대로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미리 막아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둔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으르렁댑니다. 그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미리 환난을 막는 기도를 그 일생동안 부지런히 드림으로 근심이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근심이 없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젊었을 때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것을 간구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근심 없는 것이 복입니다. 내 건강이나 내 배우자로 말미암아 근심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와 손주들로 말미암아 근심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하는 일에 근심이 없고 평안히 사는 것이 복입니다. 근심은 우리 마음을 썩게 만듭니다. 늘 평온한 상태 이것이 근심이 없는 마음입니다.

야베스 기도의 결론

야베스가 이렇게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10절 하반절에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 형제 중 존귀한 자가 됩니다. 역대기 기자는 1장에서 9장에 이르는 족보를 기록하다가 야베스 부분에 와서 붓이 멈춘 것은 야베스의 기도가 너무 감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모든 사람들도 야베스처럼 기도함으로 풍성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족보를 쓰던 일을 잠깐 멈추고 야베스의 기도를 기록하였습니다.

야베스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야베스 기도를 반복함으로 야베스처럼 형제 중에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존귀한 존재가 되어서 으쓱대라는 말이 아닙니다. 존귀한 자가 되어서 여러분의 가계를 일으키고, 가문을 일으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야베스 기도󰡕라는 책을 썼던 브루스 윌킨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30년 넘게 이 야베스의 기도를 매일같이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너무나 풍성하고 능력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분은 이 기도대로 받은 복이 너무 많아 언젠가는 “주님 제게 복이 너무 많습니다. 주님의 복을 조금만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럽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성도님들도 야베스의 기도를 자신을 위한 간구로 바꾸어 매일같이 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을 존귀케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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