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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란 중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 (살전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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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중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

세상에 태어나서 젖을 먹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장성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되는 것처럼,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이 장성한 신자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예외도 있습니다. 기질이 다르고 성품이 특별한 분을 보면 예수 믿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시간마다 빠짐없이 나와 은혜를 받습니다. 마치 몇 십 년 믿은 사람처럼 믿음이 쑥 쑥 자라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은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믿음의 소문이 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볼 때 마다 영광스럽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20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애정을 갖는 것은 사도 바울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불과 3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복음을 받은 사람들의 믿음이 크게 자랐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믿음이 급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앙경력이 너무 짧다 보니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잘 몰랐습니다. 교회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이 모범적인지 잘 몰랐습니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3주밖에 복음을 듣지 못했기에 성경 전체를 읽지도 못했을 뿐더러 성경 공부를 한 적도 없기에 성경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 말세에 대해서 그들은 똑바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교회는 연약하고 위험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 후서 3:16~18에 보면,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아직 예수님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란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걱정된 바울은 디모데를 이 교회에 보냈습니다.

본문 2~5을 보면,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5절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하는 자는 핍박하는 유대인을 가리킬 수도 있고, 또 이교도들이나 이단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들입니다. 말세에 우리 성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주면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4:24절을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택한 백성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미혹하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말세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상한 표적이나 기사를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종들도 이런 표적을 보여주어 어리석은 자들을 미혹시키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환란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환란과 시련을 허락하실까요?

1.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할 때는 참 신자인지 거짓 신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시험과 환란이 오면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집니다.
화란의 유명한 부흥사인 코리텐 붐 여사의 간증을 들어보면, 붉은 혁명이 일어난 뒤 소련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목숨을 건 모험일 만큼 기독교에 대한 국가의 박해가 심했다고합니다. 그래서 몇 몇의 사람이 비밀리에 모여 조심스럽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몇 십 명의 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관총을 손에 든 소련군 몇 명이 문을 박차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소련군은 “꼼짝 하지마라! 이 자리에서 너희를 즉결 처분하겠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이제라도 예수를 배반할 사람은 즉시 나와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벌벌 떨던 몇 사람이 일어나 걸어 나왔습니다. 군인들은 그들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어서 이곳을 나가라 만일 여기에서 어물거리면 너희도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군인들은 “더 살고 싶은 사람은 어서 나와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인들은 공포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죽음을 각오한 채 기도만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지하의 문을 닫고 쇠고랑을 채운 뒤,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던지고 교인들을 얼싸안고 외쳤습니다.

“놀라셨죠?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혹시 우리를 감시하기 위하여 파견된 가짜 교인이 있을까봐 일부러 총을 들고 행패를 부린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도망갔고 들킬 염려가 없으니 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그제서야 그들은 안심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에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도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참 신자인지 아닌지는 환란 때에 드러납니다. 이렇듯 환란은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되게 합니다.


2.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아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해서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한번은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를 망치와 정으로 쪼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그 좋은 대리석을 이처럼 많이 깨어버리면 낭비가 아닙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대리석이 깨어져 나갈 때에 비로소 조각은 살아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심령도 깨어질 때만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어져 나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육이 깨어져 나가는 고통이 너무 커서 많은 사람들은 그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댓가 없이 신앙이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야고보서 1:2~4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오는 환란과 시련은 결코 우연히 오지 않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오는 시험은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현실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이 시험으로 우리의 믿음이 강건해 진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많은 시험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험을 통과하면서 절대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환란이 오고 시험이 닥쳐도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많은 시험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품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갔던 디모데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본문 6~9을 보면,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교역자들의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넘친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그 당시의 시험하는 자 때문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다 낙심되고 타락했을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사랑의 기쁜 소식을 듣고,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본문 8절 말씀처럼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사랑은 지극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생겨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이니,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요?

고린도전서 4:15~16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복음으로써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낳았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녀라고 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많이 보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주간 밖에 머물지 못했기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고 싶었습니다. 영적인 부모로서 영적인 자녀를 사랑하는 사도 바울의 애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교역자들은 기도의 시간이 깁니다. 교회가 크면 클수록 기도해야 할 대상이 많습니다. 그래서 서너 시간을 기도해도 다하지 못합니다. 저는 기도할 때 각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지구를 한 바퀴 돕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와 교역자들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합니다. 제가 사랑에 빚진 자이기에 기도밖에는 사랑의 빚을 갚을 수가 없어 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에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맨 마지막에 아내와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도가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도 역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기도했습니다. 교역자와 교인들과의 관계는 부자지간의 관계와 같아야 할 줄 믿습니다. 왜냐햐면 우리 모두는 천국에서 함께 영원히 살아갈 하나님의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서로가 서로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환란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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