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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단을 건너라 (수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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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을 건너라 (수 3:1~7)

여호수아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고 비전을 성취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영적인 군사들을 격려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를 보면서 온갖 좌절감을 떨쳐버리고 창조적 내일을 향해 2008년을 힘차게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1. 요단강 앞에 선 이스라엘

요단강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죽음입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본 요단강은 죽음과 같은 엄청난 모험과 시련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만 했던 첫 번째 난관이었습니다.

1) 지나 온 광야의 삶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되어 애굽을 떠나던 날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애굽땅을 벗어나자마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광야였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직선으로 광야를 가로질러 가면 40일이면 갈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40일을 무려 40년을 돌아 왔습니다. 광야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훈련장이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는 성막의 은혜를,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은혜를, 만나와 메추라기 은혜를, 그리고 생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2)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

지금 이스라엘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는 여호수아입니다. 모세의 40년 사역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호수아를 키운 것’입니다.  그는 모세를 통하여 믿음을 배웠고, 철저하게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고, 나아가 기도하면 이모든 것을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의 원리를 깨우쳤습니다. 실제로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지게 할 때도, 목이 마른 백성들을 위해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그 현장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믿음의 아버지이시오, 스승이신 모세를 통하여 참 믿음이 무엇인지 또 기도가 무엇인지를 그는 배웠고 경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3) 약속의 땅 가나안

가나안이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비하신 땅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 축복의 땅입니다. 사명의 땅입니다. 우리가 요단을 건너 가야할 땅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선물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운 여정을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모험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엎드려 기도할 것을 요구하고 땀과 피를 흘려 싸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축복은 때로 고난이라는 보자기에 싸여 찾아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도 마찬가지입니다.


  2. 요단을 건너려면.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면서 그 전에 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요단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성경에서 요단은 영적으로 ‘죽음의 강’을 뜻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죽이고, 철저히 섬기는 사람에게 내일 약속의 가나안 땅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1)싯딤을 떠나라(1절)

우리는 어떻게 요단을 건너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여호수아가 일찍이 일어나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싯딤이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14장 10절에 보면 싯딤은 역청 구덩이가 많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싯딤에 머물고 있는 동안 사건이 속출하였습니다. 먼저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할 뻔했습니다(민 22장-24장). 백성은 바알브올에서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과 음행하는 범죄로 염병이 만연하여 2만4천명이 죽었습니다(민 25장). 싯딤에서 떠났다는 얘기는 이 땅, 썩어질 것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싯딤에서 떠나야 합니다. 습관적인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실패의 흔적에서 떠나야 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떠나야 합니다.

2)언약궤를 따르라(3절)

요단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했습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제사장을 따르라. 언약궤를 따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너희를 앞장 서 가리라는 말씀입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요단을 건너게 하는 인도자가 되었듯이 그리스도역시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약궤를 따를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3) 스스로 성결케 하라.(5절)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여호수아는 명령합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케 하라"  요단은 믿음의 사람만 건널 수 있는 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요단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보고 두려워 떨던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불평하던 사람은 아무도 그 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거룩한 시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요단을 건너가지 못합니다. 미래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언제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약속의 땅을 쟁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가나안을 소유하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성결해야합니다.


  3. 제사장의 헌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제사장이란 ‘특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자리에서 앞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요단강 도하를 이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헌신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1)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널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의 순종입니다. 그들이 언약궤를 메고 물이 흐르는 요단강에 발을 디뎠다는 것은 놀라운 순종을 말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이 발을 요단강에 대자마자 바로 그 순간에 요단이 그쳤습니다(15-16절). 그래서 그들은 걸어서 강을 건너 축복의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순종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축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믿음을 보이라고 우리에게 믿음을 구합니다. 우리는 우선순위가 분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자기를 포기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발로 밟을 때 신을 벗고 발바닥으로 밟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13절). 발바닥으로 땅을 밟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신발을 벗고 발바닥으로 밟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주권에 철저히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노예나 종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발바닥으로 밟으라는 말은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철저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도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너는 철저한 종이 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맨발로 선 종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이 넘쳐흐르는 요단강에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는 제사장의 모습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요단 가운데에서 굳게 선 모습입니다. 물이 그쳐서 쌓여 선 요단강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건너기까지 서 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첫 발걸음은 잘 하지만 중간에서 포기하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요단 가운데 늠름하게 서 있는 제사장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자리라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에게 가나안 땅은 완전한 천국이 아니라 성도의 사명지입니다. 그곳이 더 힘든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성도는 목적 없이 방황하는 광야 성도가 되기보다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향해 달려가는 가나안의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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