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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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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눅 18:1~8)

기도는 호흡이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하나 묻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다 기도를 하며 사십니까? 예, 물론 하지요. 기도를 잘 하든지 못 하든지, 오래 하든지 짧게 하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기도를 하기는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아무리 기도를 안 한다 해도 최소한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시간에는 기도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밥 먹기 전 감사기도는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하루에 기도를 몇 번이나 하세요?" "최소한 하루에 세 번은 기도합니다." "꽤 많이 하시네요. 그럼 시간은 얼마나 오래 하세요?" "예, 한 1분쯤 할 겁니다." "아니, 하루에 기도를 세 번 이상 한다더니 어떻게 세 번 합쳐서 1분밖에 안 됩니까?" "예, 밥 먹기 전에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식사기도를 한 끼 당 20초쯤 한다는 뜻이 되네요. 한심합니까? 아니요. 잘 하는 것입니다. 식사기도만 하든, 하루에 1분만 하든 어쨌든 기도는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라도 꼭 기도를 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기도가 늘고 기도가 생활화되기 때문입니다. 누군들 처음부터 기도를 길게, 오래, 잘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다 어눌하고, 기도를 해도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금세 끝내기 일쑤였지만 그러다가 점점 기도가 느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성도의 삶이요 우리의 영적 호흡이기 때문에 길든 짧든, 잘 하든 못 하든 간에 어쨌든 기도는 꼭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기도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크리스천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산다고 하면서 숨 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숨 쉬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의 호흡이 길면 길수록 우리의 신앙은 잘 자랍니다. 기도의 호흡이 자주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 신앙은 더 강해집니다. 따라서 세상 모든 크리스천은 기도하지만 고작 하루 세 번 식사기도만 하고 사는 사람과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께 드리며 출근한 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기도를 하고 시작하는 사람, 하루를 마치며 침상에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 즉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사람과는 그 영적 능력이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라고 해봐야 고작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장로님의 기도 인도가 끝나면 "아멘" 하는 것 이상은 전혀 기도생활을 안 하는 사람과, 틈만 나면 기도하며 모든 일들을,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어가는 사람은 그 결과가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호흡입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도의 능력이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기도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누구나 내 기도가 응답받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면서 "들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기도하는 분은 없겠지요. 누구나 내 기도가 응답 받고 기도하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늘 그렇게 되던가요? 늘 우리 기도가 응답받고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더냐는 말입니다. 아니지요. 응답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오늘은 바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왜 응답받는 기도가 있고,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느냐? 왜 우리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질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느냐 말입니다. 오늘 제가 성경에 비추어 여러분에게 그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진정 응답받기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드시 던져봐야 합니다. 그 질문은 "우리가 기도할 때 분명히 이루어질 줄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루어질 줄로 믿는가?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인 고영건 교수가 쓴 <인디언 기우제>라는 책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중에 호피 인디언이라는 부족이 있는데 이 부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기우제만 유독 영험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고영건 교수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착안하여 세계적으로 성공한 유명인 15명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윌튼, 치킨 프랜차이즈의 대부 샌더스, 피카소, 나이팅게일, 처칠, 찰리 채플린, 유진 오닐, 슈바이처, 톨스토이 등을 연구해 본 결과 이들은 모두 인디언 기우제의 대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 모두가 인생에 부정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못했고, 어떤 사람은 큰 병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인종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자기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바꾸어 간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신이 바로 인디언 기우제의 정신, 즉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될 길을 찾으라, 아니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도도 이와 같다. 기도하면서 "과연 될까?" 하는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고 반드시 된다고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안 될 거야,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힘들고"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안 됩니다. 기도가 안 이루어집니다. 이런 생각은 다 버리고 거꾸로 "이래서 되고, 저래서 쉽다"고 가능성을 찾고 가능한 이유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자, 예를 하나 들어봅니다. 어떤 분이 사업을 하나 시작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사업을 시작하는데 꼭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업이 실패할 만한 이유가 참 많습니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경기가 침체되어 있습니다. 이 물건이 잘 팔릴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업자금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는 단 한 번도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보세요. 이런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그 사람 절대로 사업 시작 못합니다. 시작해도 안 됩니다. 안 될 이유가 너무 많으니까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니 안 될 이유도 많지만 사업이 성공할만한 이유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사업경험은 없다지만 내 주변에 이런 일을 해 본 사람이 많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경기는 안 좋아도 사람들이 이 물건을 반드시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 등등... 이런 생각을 하니 용기가 나서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이유를 찾지 말고 긍정적인 이유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기도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또 생각만 하지 말고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고, 이루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된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됩니다. 왜요?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가니 이런 말을 합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군대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관이 부하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했는데 "안 됩니다" 소리를 하면 큰일 납니다. 불호령과 함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할 수 없습니다. 해야지요. 그래서 심지어 사회 있을 때 부엌에 한 번도 안 들어가 본 사람이 군대 가서 조리병이 되어 밥을 하고 요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남을 고쳐주기는커녕 병원 가는 것을 제일 싫어하던 녀석이 군대 가서 의무병이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경상도 말로 '무대뽀' 같습니다. 그렇게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정신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식의 정신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안 되면 되게 하십시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비유가 하나 나옵니다. 소위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라고 불리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들려주기 전에 이미 이 비유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1절을 보실까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렇습니다. 이 비유의 목적은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두 가지 기도의 자세가 나옵니다. 첫째는 "항상 기도하고" 즉 항상 기도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가끔 생각날 때만 기도하고, 어쩌다 의무적으로 기도하는 사람 말고 항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응답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다고 절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앞에서 말한 대로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려주신 비유가 이것입니다. 어떤 도시에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하나 살았습니다. 2절에 그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니 사람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겠습니까? 특히 요즈음 말로 바꾸면 돈 없는 사람, 빽 없는 사람을 아주 사람처럼 여기지도 않는 아주 거만하고 부패한 재판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과부가 하나 살았습니다. 과부라면 성경에서 고아와 나그네와 더불어 3대 약자, 즉 가진 것 없고 가장 소외된 사람인데 우리는 벌써 '과부'라는 말만 듣고도 이 재판장이 과부를 얼마나 무시했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과부에게 억울한 일이 있었는데 재판장에게 찾아가 내 원수에 대해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지만 재판장은 콧방귀도 안 뀝니다. 글쎄요. 이 여인이 과부가 아니라 돈 많은 집이나 힘깨나 쓰는 집 부인이었다면 그렇게 안 했겠지요. 혹 과부라고 해도 두툼한 '떡값' 봉투를 내밀었다면 이렇게까지 무시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이 과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재판장을 찾아가서 귀찮게 굽니다. 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계속 찾아가 졸라댑니다. 절대 포기 안 하고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드디어 재판장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 과부가 나를 계속해서 귀찮게 굴겠구나. 내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우습게 아는 재판장이긴 하지만 귀찮아서 못살겠으니 하는 수 없이 과부의 말을 들어주어야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과부의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7절에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여기서 과부는 무능하고 부족한 사람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무능하고 아무 것도 아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수 있게 될까요? 본문에는 몇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첫째, 7절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그 분의 '택하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서, 우리가 능력이 있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못났지만 자격도 없지만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를 택하십니다. 우리를 택하여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못났기로서니 내 자식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못난 자녀라도 부모니까 자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과부처럼 못나고 힘없는 우리지만, 무능하고 부족한 우리지만 하나님이 택하시고 자녀 삼아 주셨기에 우리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1절에 나온 것처럼 응답이 없다고 들어주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응답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아주 빨리, 기도하자마자 즉시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시간이 걸릴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너무 급해서, 아니면 너무 약해서 그만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말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대답이 없으니까 지레 포기하고 "엄마 아빠 나 안 사줘도 돼." 하니 부모는 "그래? 잘 됐다. 안 그래도 돈 없는데 말이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따라서 절대 낙심하면 안 됩니다.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언제까지? 사줄 때 까지, 응답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세 가지를 묻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세요. 첫째, "여러분은 요즘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둘째, "그렇다면 그 기도가 정말 응답받기 원하십니까?" 셋째, "그렇다면 그만큼 기도하십니까?" 이게 무슨 뜻입니까? 기도에 응답해 달라는 말은 하면서 정말 기도를 그만큼 하고 있냐는 말입니다. 기도도 온전히 안하면서, 죽도록 매달려보지도 않았으면서 안 주신다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말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셋째, 7절에 나온 대로 우리가 밤낮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과부가 재판장을 매일 찾아가 귀찮게 매달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고 매달리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것입니다. "들어줄 때까지 졸라라!" 다같이 따라합니다. "들어줄 때까지 졸라라!" 어떤 아이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필요한 게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 아빠가 사주실까요?" 답은 이것입니다. "너 친아들 친딸 맞니?" "그럼요." "그러면 들어주실 때까지 졸라라." 아무리 못나도 아무리 부족해도 내 친자녀기에 끝까지 조르면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똑같은 방법입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따라합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라면, 그 분의 친자녀라면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응답받을 때까지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앞서 호피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왜 꼭 비가 온다고 했습니까?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면 왜 꼭 이루어집니까?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성경에 비추어 우리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 방법을 일러드렸습니다. 물론 우리 기도가 잘못된 기도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이렇게 설교했더니 "그래? 그럼 난 오늘부터 하나님이 일확천금 쏟아 부어 주실 때까지 계속 기도할 거야." "나는 저 원수가 망할 때까지 계속 붙들고 늘어질 거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도가 허황된 기도나 잘못된 기도가 아닌 한은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은 옵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런 확신을 가지시고 오늘도 낙심하지 말고, 밤낮 부르짖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응답하실 때까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 교회 성도들 참 대단하다.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붙들고 기도하니 내가 들어주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다."고 말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우리의 모든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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