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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에 이르는 길(11) : 장애물10 - 열등감↔자신감 (출 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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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길(11) : 장애물10 - 열등감↔자신감 (출 4:10-17)

<우리의 인간관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열등의식>
여러분,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십니까? 대개 불만이 많을 것입니다. 코가 너무 낮다. 눈이 너무 작다. 귀가 너무 크다. 이빨이 못 생겼다. 키가 작다. 크다. 살이 너무 쪘다. 너무 말랐다. 다 한 두 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버젓하게 생겼는데도 불만이 많습니다. 

선풍기 아줌마가 있습니다. 옛날에 찍은 사진을 보면 꽤 예쁘게 생겼습니다. 가수로서 인기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외모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불법 성형수술을 받았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성형중독에 빠져들었습니다. 20여 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얼굴에 실리콘, 콩기름, 파라핀을 넣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세 배나 큰 얼굴로 변해서 선풍기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불러온 비극이었습니다. 

행복을 가로막고 서 있는 열 번째 장애물은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자기가 남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느낌입니다. 열등감은 하나만 아니라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저렇게 성격이 좋아서 여러 사람들과 잘 지내는데 자기는 성격이 안 좋다며 괴로워합니다. 성격에 대한 열등감이지요. 집안이 좋은 사람을 보면 가문에 대한 열등감이 생깁니다. 청춘남녀가 결혼할 때 집안이 엇비슷하면 괜찮은데 한 쪽이 기울 때, 내세울 것이 없는 집안 사람들은 열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열등감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자기를 미워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마땅한데 열등감이 있으면 그게 안 됩니다. 내가 싫어집니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할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열등감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참 힘들게 만듭니다. 나보다 더 나은 외모, 더 좋은 성격, 더 높은 학력, 더 훌륭한 가문, 더 멋진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만나기 싫습니다. 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기 때문이지요.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어떤 이야기도 그냥 듣지 못합니다. 새겨듣습니다. 예를 들면, 대화 중에 "에이 무식하게 그런 것도 모르냐?"하고 농담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 때 지식에 대한 열등감이 별로 없는 사람은 그냥 웃으며 지나가지만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나는 못 배워서 무식하다. 너는 얼마나 유식하냐?" 발끈 화를 냅니다. 그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얼음장이 됩니다.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나 손에 끼고 다니는 반지도 마찬가지이지요. 친구들끼리 모여 있을 때 "야, 너 그 목걸이 가짜 아니야?" "야, 너 그 반지 남대문 시장에서 산 것 맞지?" 하고 슬쩍 농담을 던집니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그냥 웃으며 "맞아. 길에서 5천원 주고 샀어. 가짜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깁니다. 그러나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아주 기분 나쁜 반응을 보여서 농담을 던진 사람에게 무안을 줍니다. 이렇게 열등감이 심한 사람에게는 농담 한 마디 던지기 어렵습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합니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으면 배 아파하고 허물을 찾고 싶고 비딱하게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열등감은 시기심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낄 때 그 사람의 인격이나 그 사람이 누리는 대상에 대해서 시기하고 폄하하기가 십상이지요. 그래서 동창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점점 고립되고 소외되어서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모세의 언어 장애 콤플렉스>
오늘 우리는 열등감을 반드시 극복해야지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적인 비결을 다 찾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세가 열등감을 느꼈다면 이해가 됩니까? 모세는 외모가 아주 뛰어났고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사람입니다. 애굽의 궁중에서 그 당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주저합니다. 열등감 때문이지요. 모세에게는 언어 장애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출애굽의 영도자로 쓰시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못 하겠다고 핑계를 댑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말재주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본래부터 말을 못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굽에서 제일 가는 궁중 교육을 받았을 때 수사학이나 웅변 교육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로 쫓겨와 40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을 때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짐승들만 끌고 다니며 초라하게 지내는 동안 사교성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모세의 나이 80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이렇게 나이 늙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열등감이 왜 없었겠습니까? 모세는 말주변도 없고 나이도 늙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두려워했던 것이지요.

어쨌거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의 영도자로 쓰시기 위해 불러 주셨으나 모세는 못하겠다고 발뺌을 합니다. 10절을 보세요.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모세가 열등감이 있다는 말이지요. 말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조리 있게 말을 못할뿐더러 말을 더듬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무지 설득시킬 자신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여러분, 남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나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 사시나무처럼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이 있지요. 얼굴이 빨개지고 말하려고 했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식은땀만 줄줄 흘리는 사람이 있지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할 때마다 항상 두렵고 떨립니다. 무슨 큰 발표회라도 있을 때 제 차례가 올 때까지 얼마나 초조한지 모릅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하여 많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설 때에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큰 실수를 했던 사람, 발표할 때 크게 당황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후에도 남 앞에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때의 충격이 오랫동안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될 때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은 더더욱 두렵습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대중 연설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말주변에 대해서 뿌리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콤플렉스 처방전>
이런 모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응답하십니까? 하나님은 모세가 언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시지 않습니다. 다 아십니다. 모세가 완벽했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사실을 다 아십니다. 우리에게 결점이 있고 열등감이 있는 것을 다 아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써 주십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체에 결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신체 기관을 지으신 이가 누구인가를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여러분, 입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비록 말을 잘 못하고 잘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지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나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아닙니까? 비록 모세가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모세의 입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든 못하든 그 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말 잘하는 사람은 교만해서 안 됩니다. 자기가 잘나서 말 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말 못하는 사람 역시 열등감을 느끼거나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 못하는 우리 입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나의 신체적 조건은 내 맘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말주변 없는 입을 말 잘하는 입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 실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이라는 의식을 한 시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외모나 천성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모세의 말 못하는 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뒤 12절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비록 모세의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말주변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입을 지으셨으니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모세의 약점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 약점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세와 동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을 잘못해서 쭈빗거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돕겠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요!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 아주 빼어난 재주를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 잘나게 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제 잘난 맛에 살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모도 부족하고 재주도 떨어지고 가문도 시원찮은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못한다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언변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함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부족함과 연약함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일으켜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아직도 머뭇거립니다. 열등감의 쓴 뿌리는 얼마나 뽑기가 어려운지요! 13절을 보세요.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자기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것이지요.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안 되겠습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지요." 하나님께서 약점 많은 모세를 붙들고 쓰시겠다는데 기어코 고집을 부립니다.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도 참을성을 잃으십니다. 14절 전반부를 보세요.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하나님께서 역정을 내신 것이지요. 모세가 숱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어떤 것도 쓸데없는 기우요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모세를 직접 말하는 연사로 쓰시는 제 1안이 모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제 2안을 모색합니다. 14-16절을 보세요.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말 못하는 모세의 대변인으로서 모세의 형인 아론을 붙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다시 한번 읽게 됩니다. 우리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못 미더워할 때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의 약점을 대신 커버할 사람을 붙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목회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양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모를 허락하신다는 말씀이지요. 모세가 말주변이 없어서 이스라엘 군중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우면 말 잘하는 아론을 대신 세우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무엇 무엇이 부족해서 못 한다고 하는 것은 좋은 핑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결점을 아시고 여러 가지 신비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용납할 때 우리의 부족함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바꾸세요!>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목사님이 서울 반포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을 때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여자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주변 교인들을 보니까 다 학력도 높고 자기보다 나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집사님은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구역장을 맡았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대학 나온 구역 식구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전문대 강사가 구역 식구가 되었고, 교수도 구역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이 그 구역에 방문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초등학교도 간신히 나온 여집사님이 대학교수들을 거느리고 구역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구역 예배가 끝나고 나올 때 "총장님"하고 불렀습니다. "아니, 총장님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대학 교수들 거느렸으니까 총장이지." "목사님, 제가 출세했습니다." 구역 식구인 대학교수가 내년에도 우리 구역장님 그대로 맡겨 달라고 신신 부탁했다는 간증입니다. 이 여집사님은 믿음으로 열등의식을 잘 극복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높고 낮은 이가 없습니다. 재주 많고 적은 이가 차이가 없습니다. 가문이 좋고 나쁨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외모에나 가문이나 학력에 약간의 부족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더욱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약점이 바뀌어 장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남보란 듯이 버젓한 외모와 훌륭한 조건을 다 갖추고서도 그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온 줄도 모르고 겉멋만 들어 사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여러분, 남 보기에 외모도 시원찮고 가문도 별로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만 의지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전 1: 27-29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옳습니다. 이 세상에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크고 작은 열등감이 한두 가지씩 있습니다. 열등감은 해롭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오늘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외모나 처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이 귀한 분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외모나 환경이나 출신이나 학력이 많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하나님을 더욱더 힘써 의지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약점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래도 못 미더워할 때 하나님은 사람들을 붙이셔서 우리의 약점을 보완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이제 열등감은 다 하나님께 맡기시고 한 번 활짝 웃어봅시다. 잘 생기고 안 웃는 사람보다 못 생겼어도 잘 웃는 사람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정감이 갑니다. 주 안에서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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