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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 (요일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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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오늘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I.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

A. 성부의 사랑에서 비롯됨

그리스도 예수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벌주기 원하시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인간을 향한 사랑에 있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무엇인가 갈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격이 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이 사랑에 있어 삼위일체 하나님 누구도 갈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치 없는 인간들을 사랑하심으로서 기쁨을 느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에는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아름다우시고 완전하시고 그 성향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서로 간에 사랑하십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직접 보기 어려운 사랑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전에도 지극히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셨지만 그것만을 보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는 인간의 지성이 너무나 어려워졌고 타락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와 언약을 맺으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뜻을 따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위하여 인성을 입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났지만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그리스도의 사랑은 구별이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오직 하나님으로서의 사랑, 즉 신적인 인격의 사랑이고, 아들의 사랑은 하나님으로서의 사랑일 뿐만 아니라 인성을 취하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사랑, 즉 사람의 사랑이었습니다. 인성을 취함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 인성을 취하여 사람의 몸 입고 오셔서 목숨을 버리신 것은 사람으로서 하신 일이니 이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동시에 또한 사람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눈이 어두워진 죄인들이 직접 볼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온 사랑이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그분의 인격 안에서 생생히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은 오직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서른 세 해 동안 사신 예수님은 우리들이 직접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눈이 어두운 죄인들의 마음속에도 생생히 기억될 수 있는 모습이었고, 그 모습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게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사람마다 삼위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본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B. 성부의 사랑의 목적을 실현함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누리고 가족관계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이 세상에 펼쳐보여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잘 돌보고 가꾸어서 영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계획이 시간 안에서 아름답게 실현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하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지은 큰 죄로 인해 어두워진 세상 위에 하나님의 찬란한 사랑과 자비, 은혜와 긍휼이 그리스도를 통해 빗줄기처럼 지나가게 하시므로 당신의 사랑이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들어오기 전보다 더 큰 영광을 거두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영혼이 파괴되고, 마음에는 죄 된 욕망이 가득 차 하나님에게 복종하며 살기 싫어하는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당신 안에 있는 사랑을 친히 보일 수 있도록 죄 없는 자신의 외아들로 사람의 형상을 입어 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의 희생을 통해 보이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하셨으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큰 사랑은 망가진 세상과 하나님 떠난 인간을 향해 멈추지 않은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의 목적을 실현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대한 감격만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왜 날 사랑하실까? 왜 주님이 쓸모없는 죄로 가득한 인간을 살게 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그 분은 죽으셔야 했을까?’를 생각하며, 자신이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살아있으나 사실은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것이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목적을 실현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면,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우리를 불러내어 당신의 사랑을 받게 하시는 것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넓게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며, 아주 좁고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큰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는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계획에 어떻게 부흥하면서 사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의 계획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만을 위하던 삶을 포기하고 나를 아름답고 존귀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망가진 이 세상 어느 한구석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움 때문에 감격하고, 한편으로는 이 망가진 세상 이 아름다운 하나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주님이 주신 이 땅의 자원과 하늘의 자원으로 망가진 이 세상 어느 한구석을 그곳을 고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또렷하게 발견하고, 그 사명을 위해서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하늘의 자원을 공급받으며 인내하고,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루하루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성부하나님이 범죄 한 우리 인간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줄을 타고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II.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길

그러면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며 사는 길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문제를 살피기에 앞서서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오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일반적으로 아는 것을 사랑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그렇게 열렬하고 뜨거운 것이 아닌, 그저 살기 싫은 부부가 애들 생각해서 억지로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사는 것으로 잘못된 기준을 세웁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주위에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안에서 그런 사랑이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랑에 대해서 진작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사랑은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게 하는 사랑이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랑이고, 그를 위하여 멸시를 받을 때 그를 더 가까이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그리스도를 자주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게 죽으심으로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살던 모습을 생생하게 성경에 남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사물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 수 있는 기능, 즉 지성을 주셨습니다. 지성은 이치를 추론하며 파악해가는 이성과 가슴에 ‘번쩍’하고 들어오는 어떤 사실들을 통해 판단하는 오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를 믿게 되는 것이 바로 오성에 들어오는 참 빛 때문입니다. 오성에는 진리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감을 통해 감각하는 사물들에 대한 인상이 들어오게 됩니다. 어느 한 순간에 진리처럼 ‘번쩍’ 들어와 영상으로 맺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영혼이 그런 것들에 대해 반응을 합니다. 영혼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한 번 욕망이 열리게 되면 눈은 보아도 차지 않고, 귀는 들어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계속 목마르고, 영혼은 거기에 몰두해 버립니다. 예수가 안 보입니다. 세상이 커 보이면 주님은 안 보입니다. 의식적으로 이 감각의 문을 닫으려고 애쓰고, 예수를 많이 생각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생각나게 해 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물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의 진리 속에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익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첫 번째 길입니다. 가능한 한 덜 보고 세상을 너무나 잘 알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을 더 많이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은 원숭이처럼 예수님을 흉내 내라고 보여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도저히 그것을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선한 행위를 더듬어 올라가면 그것이 그분의 성품을 원천으로 해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은 신으로서의 성품과 사람으로서의 성품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성품을 통해서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사람의 성품을 통해서는 아래에 있는 우리 자신을 비춰보게 만드셔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많은 삶의 모범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의 성품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무한한 질적 차이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 묵상을 통해서 우리 속으로 깊이 내려오게 될 때 우리의 마음에 그 예수님에 대한 성품과 생각이 가득 차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 변화되어 가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를 닮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향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향하는 것과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내 속으로 깊이 들어가므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면 나를 초월해서 주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간절한 열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충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도 자부심을 느꼈던 사람이 이제는 온전히 순종하기 전까지는 결코 마음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깨어짐의 이유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깊이 살피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 사람의 마음은 물대인 동산과 같아서 각종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샘의 근원이 생수로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예배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III. 결 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일까요? 창조세계를 망가뜨리고 방탕한 길로 떠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기에 주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멸시와 천대를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죽으셨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 변함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사랑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고통은 물질이나 먹을 것, 권력의 부족에서 오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이유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사랑을 받지 않고, 사랑해야 할 그리스도는 버리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사랑함으로서 이 사랑의 질서를 뒤바꾼 것입니다.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정말 십자가 사랑 안에서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탁월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앞에 여러분들이 보여야 할 반응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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