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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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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수없는 주님의 사랑 (롬 8:31~39)

사람은 대단해 보이지만, 매우 연약한 존재다. 육체적으로 볼 때, 정말 연약하다. 평생 병원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원균에 쓰러진다. 정신적으로도 연약하다. 누군가 시기하는 소리에 마음이 상하고, 사랑의 눈짓에 행복하고, 작은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잔다.

오히려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정서적으로 연약한 사람일 수 있다. 세계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이 집에 들어오면, 고독을 견딜 수 없어서, 외로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아내 조세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인간은 의지적으로도 연약하기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겼다.

영적으로도 연약한 존재다. 시험을 만나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만하면 반듯한데, 돈 앞에 가면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있다. 돈에는 아주 의로운데, 이성 앞에만 가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이성 앞에서는 깨끗한데, 명예 앞에는 꼼짝 못하는 사람이 있다.

  명예 앞에서도 지혜로운 듯 보이는데,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가 싶어서 쳐다보면, 교만하기 짝이 없다. 겸손하다 싶은데, 우유부단하다. 말은 잘하는데, 삶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은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나무라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도와주신다.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신다. 어떤 경우에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문은 말씀한다.

(31下)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다. 죄와 사망에서 건져 놓으신 우리를, 어떤 경우에라도 포기하실 리 없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끝까지 위하는 사랑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사랑을 믿지 못하는 악한 구석이 있다. ‘과연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를 사랑해 주실까? 아직도 하나님의 눈에 꼭 들게 살지 못하였는데, 정말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셔서, 버리지 않을까?’하는 의심을 가끔 한다. 그래서 회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목사도 이런 회의에 빠질 수 있다. 위대한 선지자나 사도들도, 회의에 빠진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불안해 할 수 있다. 이럴 때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위기를 만날 수 있다.

(36)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데도, 이상하게 환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지만, 본문은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의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기 때문인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3겹줄 사랑 때문이다.

1. 우리 안에 거하시며 도우시는, 성령님의 사랑 때문이다(26-30).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다.
어떻게 도와주시는가? 

성령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신비한지, 그 당시 사용되는 단어들을 가지고 표현이 안 돼, 헬라어의 3단어를 하나로 묶어서, 도우심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쑨안티람바노마이(συναντιλαμβάνομαι).

쑨(함께) 내 곁에 함께하셔서, 안티(반대, 보상) 건너편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곳에서,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람바노마이(취하다. 번쩍 들어 옮겨준다) 해결해 주신다.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셔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신다는 뜻이다.

어느 날 큰 바위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어, 이것을 치우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어, 쩔쩔매고 안타까워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포클레인으로 그 돌을 번쩍 들어서 옮겨 주셨다.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신다.

우리 인생의 짐이 무거워서, 쩔쩔매시는 분이 계신가요? 성령님이 옮겨 주신다. 영적으로 실패한 자리에서 안타까워하며, 당황하는 분이 계신가요? 날마다 반복적으로, 똑같은 죄를 범함으로 실패의 언덕을 넘어서지 못해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시나요?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올바로 살아갈 수 없다.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

기도로 인하여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변화시켜서,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 에베레스트 산이나, 세계의 최고의 산을 올라갈 때, 등반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셀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끝까지 짐을 져주고, 길을 안내해 주며, 못 올라 갈 때는 붙잡아주며, 마지막 정상에 올라갈 때도, 셀퍼의 도움이 있다. 산 정상에 힘겹게 올랐을 때, 산 정상에서 두 손을 치켜들어 환호할 때, 조용히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은 해발 평균 5천 미터 이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와는 심장이 다르다.

신체적으로 그런 곳에 올라갈 수 있고, 모든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셀퍼는 길들도 아주 잘 알고, 기후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코치를 받고 따라가면 된다. 이처럼 힘든 세상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감동을 주신다. “너 왜 그런 길로 가려고 하냐? 그러면 안 돼, 왜 그 죄악에서 안 떠나느냐? 이제 그만 끊어야지 정리해야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충고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는 일도 성령님이 하신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성령님은 아신다.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한 어촌 마을에 고기잡이 나간 배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걱정을 하고, 온 동네가 걱정을 했다. “언제 우리 남편이 돌아오나, 언제 우리 아버지가 돌아오나”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떤 아이가, 촛불을 넘어뜨려서 한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불끄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가혹한 시련입니까! 남편은 풍랑 속에 돌아오지 않고, 집은 불이나 가재도구가 모두 타버렸으니 얼마나 가혹한 시련인가!

그러다 아침을 맞았는데,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렸던 배가 돌아와, 뱃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어젯밤 풍랑 속에서,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육지에서 큰 불길이 올라와, 그 불길을 보고 항로를 바로잡아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면 이 집에 불이 난 것은 재앙인가? 구원의 등불인가? 집에 불이 나지 않았다면, 가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사실만 보고, 이는 잘못이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말하지 말라. 어려운 시험과 질병, 장애가 있을 때, 짧은 눈으로 보면 시험이요 문제다.

그러나 주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을 놓고 볼 때, 어려운 문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도하심이다.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의롭게, 영화롭게 만드시는 방법이다(30).


2.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31-34).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옛날이야기이다. 어떤 분이 다섯 아들이 있었다.

그의 친구는 자녀가 하나도 없어, 아들 하나만 양자로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를 줄 테니, 잘 키워보라고 엉겁결에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말을 하니, 욕만 얻어먹었다. 그래도 약속을 안 지킬 수 없어, 잠자고 있는 다섯 아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아들을 주나 하고 생각했다.

첫째는 장남이라 안 되고, 둘째는 제일 똑똑하고 지혜로워 안 되고, 셋째는 제일 미남이고, 자기를 쏙 빼 닮았기에 안 되고, 넷째는 늘 병약하고 비실한 아들인데, 그런 아들을 남에게 주려니 불쌍해서 안 되겠고, 다섯째는 사랑스런 막내인데, ‘어떻게 남에게 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 주신 그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알 수 있나요?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신 사실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던 것을 포기하셨다.

여호와의 증인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지옥을 보내느냐? 지옥이 없다고 하지만, 성경은 지옥이 있음을 말하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이렇게 우리를 지독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변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31). 하나님의 사랑은 넓고 커서,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다. 표현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다.

그래서 찬송가 304장 3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면 알수록, 그의 사랑을 측량할 길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났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죄인, 원수였지만, 그래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셨다(롬5:6, 8, 10). 그래서 “그는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이처럼 은혜에 풍성한 하나님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랑을 쏟아 주셔서,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여기서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이런 사랑을 주셨는데, 무엇을 아끼시겠는가? 가난을 이기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열등감을 이기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재산? 권세? 용모인가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으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신다. 필요한 능력, 필요한 물질, 필요한 사람, 그 모두를 하나님이 다 주신다. 그 사랑에 안겨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상처도, 유혹도 대적이 될 수 없다.

나를 대적하고 조종하려는, 죄의 세력이 있나요? 볼 때마다 주눅이 드는, 재물과 외모와 학벌이 있나요? 그 모든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나를 위해 내어 주셨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기에, 마귀가 우리를 고발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죄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나를 죽이고 괴롭히는 능력을 잃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고발할 수 없다(33-34).
 

3.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35-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십자가의 사랑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희생하는 사랑, 헌신하는 사랑이다. 죄인에게 베푸시는 긍휼과 은혜의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다. 이 사랑을 받은 자는 견딜 수 없다. 뜨거운 사랑이 그리스도를 향해 나타난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그 사랑에게 끊을 수 있겠는가?

사탄 마귀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얼마나 방해를 했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도록, 그토록 방해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헤롯왕을 이용하여 죽이려고 했다. 베드로를 이용하여,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유혹했다. 가룟유다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공격했다.

사탄은 사망권세를 가지고, 예수님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활하셨다. 사탄은 예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누가 우리의 이 관계를 끊을 수 있겠는가?

사탄은 예수님을 공격할 수 없기에, 우리 영혼을 공격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연약한 우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격한다. 사탄이 7가지로 우리를 공격한다.

(1) 환난이다. 환난은 에워싸여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말이다. 환난이 오면,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난을 주나?, 하나님은 사랑인데, 왜 이런 환란을 주나?, 하나님이 능력이 없지 않는가?’ 하면서, 원망하고 의심하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16:33)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 환난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자라게 한다. 주님의 돌보심을 믿고 전진하자.

(2) 곤고다. 원문의 뜻은, 좁은 공간을 말한다. 아주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마치 새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외롭고 고독해진다. 이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믿음이 약해지기 쉽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작은 방에 갇혀 있을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3) 핍박이다. 노골적으로 미워하고, 거부하고, 공격당함을 말한다. 바울도, 스테반도,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돌에 맞고 쫓겨 다니다가 죽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자가에 사형 당하고, 사자에게 찢김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럴 때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음을 포기하기 쉽다.

(4) 기근이다. 쫓겨나 직업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디를 가도 밥을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기근이 오면 마음이 흔들리기 쉽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많은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가!

(5) 적신이다. 입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벌거벗음을 말한다. 바울은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6) 위험이다. (고후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7) 칼이다. 죽음과 전쟁을 말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약한 존재다. 죽이겠다고 하면, 조국도 배신하고, 가족도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배신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인간은 칼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요, 흔들리기 쉬운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두렵지 않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결론입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변함없는 뜨거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 뜨거운 확신을 이야기한다.
 
(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이 나를 정죄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 믿음이 꺾이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려 자신을 희생하기 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우리의 노래가 되고, 우리의 신앙이 되고, 우리의 찬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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