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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적성숙의 길(2) (행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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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성숙의 길(2) (행 1:12-14)

  영국의 역사에서 유명한 사람 중에 ‘메리’라는 여왕이 있습니다. 그녀는 1516년 헨리8세와 캐서린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불행한 가정생활을 경험한 그녀는 여왕이 되었을 때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부친이던 헨리8세가 자기 친어머니와 이혼을 한 것이 평생 한이 되어 복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하나로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이혼을 빌미로 천주교에서 성공회로 바꾼 것에 독기를 품고 다시 천주교로 환원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과 의회가 반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 가장 강력한 반발을 했던 사람들이 개신교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존 낙스’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메리여왕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에 많은 성도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메리여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 역사는 그녀를 ‘피의 메리(Bloody Mary)’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왕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존 낙스를 가장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가 기도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존 낙스의 기도가 여왕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켰고, 그 여파로 메리는 1558년 정신병을 앓다가 쓸쓸히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날마다 기도하는 기도에는 이처럼 놀라운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도 힘이 있지만, 기도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성경은 기도에 능력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과연 기도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첫째,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본문은 사도행전의 처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다 귀하지만 사도행전이 귀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과 교회공동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주님은 약속하셨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떠난 뒤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과연 그들이 거기에서 한 일이 무엇일까요?  본문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여기 ‘힘썼다’는 말에서 기도의 열정을 봅니다.  ‘전혀’라는 말에서 기도에만 집중했음을 압니다.  ‘마음을 같이하여’는 말에서 그들의 기도가 간절하여 하늘에 사무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당시 성도들의 삶이요,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를 보면서 이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삶과 신앙에는 기도가 출발이었고, 기도가 중심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계속되는 말씀을 통해 기도에 힘쓴 성도들에게 임한 엄청난 능력, 놀라운 결과를 알려줍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성도들의 변화입니다.  특히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누구보다도 베드로의 변화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와 사도행전의 베드로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전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비겁자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다니면서 용감한 척 했던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주님보다 한발 앞서서 주님 곁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죽으신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자기도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했습니다.

또한 그는 배신자입니다.  주님의 제자가운데 가장 크게 배신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나중에는 저주까지 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이럴 수는 없는 법입니다.  람을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배신하는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줍니다.  혹이라도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도움을 주고, 힘을 주고,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주님이 그런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호언장담했던 인물입니다.  다른 제자들과 비교해서 자기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이 앞선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
러니 그의 주변에서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너무도 거슬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비겁자, 배신자, 교만한 자입니다.  그는 주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신앙이 없었고, 사랑한다고 했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어떻게 변했을까요?  사도행전의 전반부는 교회의 이야기지만, 인물로 말하면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아주 다른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는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 이상 배신자가 아니라 주님에 대한 옹호자요, 변호자요,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베드로만큼 사랑하고 변호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교만하지 않습니다.  늘 겸손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말도, 행동도 그의 모든 모습은 복음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바로 기도의 능력이 이렇게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기도는 한사람 베드로를, 믿음의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내적성숙이라 말합니다.

여러분, 정말 변화를 원하십니까?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끼십니까?  그래서 나도 성경의 사람처럼, 이 시대에 뛰어난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습니까?  지금의 내가 아니라 더 나아지는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초대교회처럼 기도에 힘써보십시오.  분명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변화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앞을 내다보는 능력입니다.
기도하니까 변화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앞을 내다보는 놀라운 통찰력이 생깁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본문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1장 마지막부분인 15절부터 26절까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도하는 중에 베드로가 말을 시작합니다.  가룟유다가 주님을 배신하고 죽은 것을 언급하면서 이제 유다 대신에 한 사람 제자를 더 보강할 것을 제안합니다. 한참 열심히 기도하는데 이 무슨 생뚱맞은 일인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앞일을 보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되면서 많은 내적 외적 부흥을 이루게 되는데 그 중심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선교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큰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한사람이 빠졌습니다.  처음에 주님이 열두 명을 세울 때 분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열둘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일을 위해 지금 보강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20명 가운데 한 사람을제비뽑아 세웁니다. 그래서 세워진 인물이 맛디아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다시 12명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초대교회의 중추적인 인물들로서 큰일을 감당합니다.  이것이 본문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사도행전 1장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니까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입니다.  기도하니까 앞을 보고, 멀리 내다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도하는 사람만큼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시대에 쓰임받은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특히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이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앞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선견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만큼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만큼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또한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큰 능력입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만큼 앞을 내다보지 못한 민족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오늘 지금 살아있으면 사는 것이고, 내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국문학자인 이어령 교수는 우리말에 ‘내일’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내일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내일(來日)은 ‘다가올 내(來)’와 ‘날 일(日)’로 구성된 한자어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만큼 우리에게는 내일과 미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말은 생각의 집’이라고 하는데 내일의 생각이 살 집을 잃었으니 한국인의 미래는 셋방살이를 할 도리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나라의 번영과 영원을 다짐하는 애국가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라는 것입니다.  미래는 고갈하고 마멸하는 소멸의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모래알이 큰 바위가 되도록 영원하라’는 일본의 기미가요(국가)와 비교해 보면 왜 우리가 침략을 당했는지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하면 ‘깨라’는 말이 따라오고, ‘꿈자리’하면 ‘사납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어 다녔습니다.  우리가 언제 내일을 생각합니까?  오늘로 족했습니다. 더 이상 내일은 꿈도 소망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 민족에 복음이 심

어진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꿈을 꾸기 시작했고, 신실한 믿음의 지도자들이 앞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꿈과 소망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앞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멀리 보아야 합니다.  꿈을 꾸고, 소망을 갖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앞을 내다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미래를 보면 말도 바뀝니다. 앞을 내다보면 분명 행동도 바뀔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일에서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면서 살도록 해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앞을 내다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앞을 보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꿈을 꾸고, 기도하는 사람은 앞을 보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많이 기도하시고, 깊이 기도하면서 앞을 보는 통찰력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령이 임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변화도 일어나고, 앞을 보는 통찰력도 생기지만, 무엇보다도 위에 계신 성령이 내려오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장 귀한 교훈으로 줍니다.  1장에서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바로 2장 1절로 넘어가면 성령이 오십니다.

불같은 성령이 기도하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 강하게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자 이들은 방언을 하고, 능력을 행합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뜨거움을 맛봅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꿉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오시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성령의 바람이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임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다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문제가 없고, 걱정 없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다 주고, 다 고치고, 다 만들고, 다 진행합니다.

역사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 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역사속에 처음 초대예루살렘교회에 있었고, 이런 성령의 바람이 중세시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도 있었고, 그리고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에게 임한 성령의 바람은 1907년에 한번 강하게 있었고, 또한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 소위 7080시대에 있었습니다.  그때 믿음 생활하시던 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교회마다 기도하는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이때 새벽기도가 가장 활성화되어 새벽마다 성도들의 발걸음이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도시길, 시골길 관계없이 더위와 추위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교회로 모였습니다. 이때 철야기도가 가장 왕성했습니다.  지금처럼 심야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고 아침에 바로 직장과 학교로 갔습니다.  그때는 몇 날 몇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이때 산기도가 또한 왕성했습니다.  산마다 골짜기마다 기도의 소리로 진동했습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기도소리에 감동을 받을 만큼 이쪽저쪽에서 메아리쳐 울렸습니다.  이때 수련회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물론이고 중고등부, 청년들, 어른들 할 것 없이 열악했지만 수련회 장소로 이동하여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수련회 갔다 오면 목이 다 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목이 쉬지 않으면 은혜 받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귀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때 한국교회 연합집회가 가장 왕성했습니다. 여의도에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한국교회의 영성을 자랑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를 비롯한 영적각성집회가 열려 어린아이부터 노년까지 아스팔트 바닥에 꿇어 앉아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 땅에 그렇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때 세워진 교회들이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개척교회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큰 교회로 성장하여 예배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우리교회도 그 때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지금도 그 때 세워진 교회들이 지역에서 교회의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처음 믿은 사람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려 교회의 직분을 받아 섬기고 있습니다. 이때 청소년과 청년들의 복음에 대한 헌신으로 가장 많은 목회자, 선교사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때 태어난 자녀들이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바람가운데 태어난 자녀를 믿음의 부모들은 말씀과 기도로 잘 양육시켰습니다.  그 자녀들이 지금 자라서 어느 덧 30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시상식을 유심히 봅니다.  요즘도 연말시상을 하면 연예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수상소감을 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옛날에는 없었습니다.  모두 7080세대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셨고, 그들이 잘 성장하여 지금 한국사회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때 결국 한국도 가장 큰 경제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한국전쟁이후 폐허가 된 이 땅에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제발전과 부흥은 바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 그 때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이후 가난하고 못사는 이 땅에 축복이 임했습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잘 살아보자고 외치며 땀을 흘리고 눈물을 쏟으며 수고했습니다.  지금 한국이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분명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노력하는 사람이 우리보다 많습니다. 잘 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민족도 있습니다. 노력한다고 다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의 경제부흥은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7080시대에 마을마다 동네마다 세워진 교회에서 새벽마다, 밤마다 눈물과 통곡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한국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이 그저 아련히 떠오르는 옛 추억의 기억으로만 남아서야 되겠습니까?  성령의 바람은 옛날에도 지금도 불어옵니다.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불어옵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 불어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잊지 맙시다.  분명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 앞을 내다보는 능력, 그리고 성령이 임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개인과 공동체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다 됩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전혀 기도에 힘써서 기도의 능력 속에 내적성숙을 이루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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