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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음 세대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공동체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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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공동체 (출 2:1-10)

지금부터 한 10년 전인가요? 다음세대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명예와 학자로서의 꿈을 내려놓고 포항으로 내려가 기독교대학인 한동대학에서 자신의 삶을 바친 김영길 총장이 있습니다. 당시 한동대학이 한참 경제적인 위기를 겪을 때 학교의 재정 사정은 날로 악화되어 갔고, 심지어 교직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교수 가운데 한 분이 다소나마 학교에 도움을 주기 위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한 계좌 천원 운동"을 벌리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후원 운동을 한동대 '갈대 상자'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갈대 한 올 한 올은 약하지만 수많은 갈대가 모여 우리 시대의 나일 강에 던져질 수많은 모세를 지킬 바구니를 만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한동대 갈대 상자 운동이 탄생합니다. 후원금 천원은 '한 올'의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수많은 후원자들의 기도로 엮은 갈대 상자 안에는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 될 인재들을 키우고자 하는 믿음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한동대 총장의 아내인 김 영애 권사님이 쓰신 '갈대 상자'라는 책 제5장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무렵 애굽에서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는 모두 죽임을 당했다. 모세의 운명도 폭풍 속의 촛불 같았다. 모세의 부모가 갈대를 꺽어 아기를 누일 바구니를 엮던 그 밤, 그들은 눈물로 통곡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는 죽어야 할 아기를 바로 공주의 손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살리셨다. 뒷날 민족의 지도자로 모세가 서는데 이 갈대 상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갈대 상자' 안에 담겨져 있던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나일 강가의 갈대 상자야말로 모든 시대의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특히 모세의 출생과 양육의 배후에서 책임을 다한 부모의 헌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모세의 부모에게서 배워야 할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키우는 지혜를 함께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 동성 교회에 속한 젊은 세대가 어떻하면 다음 세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모세 같은 삶들이 나올 수 있을까하는 것은 이 시대에 여긴 모인 우리의 숙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자녀가 성공의 자리에만 설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이 나라에 기러기, 펭귄 아빠들이 탄생하는 눈물겨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진단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가 어떤 진단을 하든 사람을 세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세상이 힘들수록 다음세대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흔히 자식 교육을 돈과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모세가 태어나던 시대는 최악의 교육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교육이 아닌 생존 그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애굽의 새 통치자는 바로는 태어나는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출1:22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런데 본문 출 2장이 열리면서 어느 한 가정에 아이가 출생합니다. 2절에 보면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여기 등장하는 부부는 바로 모세의 부모였습니다. 출6:20절에 보면 그의 부모의 이름이 아므람과 요게벳으로 기록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인구가 증가하자 애굽왕 바로가 우려하여 이스라엘민족의 인구를 줄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계책을 세우게 되고 그중 갓 태어난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버리라는 법을 정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가정에 탯줄을 자르고 부모의 품에 안긴 이 아이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아이는 '준수했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행7장에 보면 스테반의 설교에서 잘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행7:20절에 보면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 집에서 석달 동안 길리더니" 여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기였다고 한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주신 목적이 죽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들은 깨닫습니다. 단순히 잘 생긴 것을 가지고 온 가족의 목숨을 걸 수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 대목에서 바로 모세의 부모의 믿음을 발견합니다.
히11:23을 보십시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여기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영웅들의 리스트에 모세의 부모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이 아기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태어난 것을 확신했고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아기를 길러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는 이 아기가 섭리의 아들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태어난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기르십시오.

믿음으로 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자녀라는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을 만드는 두 개의 방편인 말씀과 기도로 길러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의 젖을 먹이십시오.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날마다 말씀을 들려주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매 순간 마다 기도로 아기를 축복하십시오. 기도 속에 아기가 자라게 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을 믿음으로 길렀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께 대한 믿음-이것이 자녀 양육의 유일한 기초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아기 모세를 숨기기 어려운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도 커지고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이제는 별 수 없이 나일 강에 이 아기를 던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이 순간 이 자리에서의 최선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가 '갈대 상자'였던 것입니다.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왜 역청과 나무진을 칠했을까요? 갈대 상자를 물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수의 역할을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슨 일을 시도하다가 뜻대로 안될 때 "이제는 믿음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담은 갈대 상자는 원어로 '아크'입니다 이 아크는 네모난 상자로 법궤도 아크라고 하고 노아의 방주도 아크라고 합니다. 이 아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해치려는 무서운 현대의 바로의 칼들이 노리고 있습니다. 한시도 부모들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교통사고, 부정식품, 진화론의 무신론 사상, 도덕성의 부패, 무서운 병균, 이런 무서운 바로의 칼날로부터 어떻게 보호하고 지킬 것입니까? 한시도 마음놓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자신의 핏줄을 나일 강에 버려야 된다는 아픔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믿음을 실어 갈 상자에 담아 모세를 나일 강에 띄웁니다.

그러나 4절을 보십시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이것이 바로 믿음의 기다림이 아닙니까?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입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 왔다고 했습니다. 아니 바로의 딸 공주가 목욕할 곳이 없어 나일 강으로 직접 나온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우연일까요? 자, 거기서 갈대 상자를 발견합니다. 우연일까요? 상자를 여는 순간 히브리 아기임을 발견합니다. "재수 없게 히브리 아기로군"-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상자가 열리는 순간 아기가 울어댑니다. 한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는 잠자던 공주의 모성애의 본능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연이었을까요? 이어서 모세의 누이가 뛰어 나와 유모를 구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아니, 공주가 유모 하나 구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공주는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친모가 월급 받고 유모가 되어 이 무서운 시대에 안심하고 당당하게 공주의 아들로 자기 아들을 기르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이것이 우연일까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한 모세의 부모의 믿음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요 상급이 아니었을까요? 히11:6의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모세는 훗날 애굽의 궁중에서 40년 동안 하나님 없는 교육을 받았지만 유모로 들어간 수년의 교육을 통해 받은 그 가치관은 그의 삶의 기초가 되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애굽에서의 잠시 쾌락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위대한 출애굽을 감행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가 아닌가요? 잠22:6을 기억하시나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20세기의 가장 탁월했던 영성 신학자였던 라브리 공동체를 섬겼던 "프랜시스 쉐퍼"는 "21세기가 오면 사람들은 목적 없이 돈을 벌고 진리 없는 교육을 하고 의미 없는 사랑을 나누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공부하는 목적과 삶의 존재 가치를 부여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별로 없지만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조밀한 만큼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사람이 있습니다. 나라의 장래는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 속담에 "1년을 위해서라면 밀을 심어라. 10년을 위해서라면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라. 그러나 100년의 꿈과 비전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키우라고 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가장 보람된 투자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3년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진단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할지를 모른는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고 있는 암담한 현실입니다. 여러분,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왜 이렇게 무섭도록 간격이 좁혀지고 있는 것입니까? 요즘 욱일 승천하고 있는 중국에는 숨은 비밀이 한 가지 있습니다.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이 핑퐁 외교로 관계 개선이 되었을 때 미국은 많은 원조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 때 중국은 어떤 원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똑똑한 중국 학생 10만 명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단순히 빵 한 조각으로 잠시의 배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당시 수많은 청년들을 미국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들이 예일, 프린스턴, 하버드를 졸업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현재 중국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관료들은 우리나라의 관료보다 훨씬 깨어 있습니다. 시스템 상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화 되어 있습니다. 게임이 안 될 지경입니다. 상해에 푸동을 한번 가 보신 분은 놀랄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도 다녀왔지만, 70층이 넘는 건물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모습에 탄성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혈연과 지연으로 얽혀있는 현실에 어느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어디 고시를 패스해야 하고,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 현실이 아닙니까? 그리고 속에 들어가면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다 바보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나 태도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윗사람한테 잘 보여서 다음에 한자리 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을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한국의 현실을 풍자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천재 6명을 한국 땅에 한꺼번에 보냈습니다. 이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최근에 점검해 보았을 때 이들의 현재 삶이 이러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가는 학원 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종래의 과학이론을 뒤집어엎을 만한 실력을 가지고 이론을 발표했지만 이를 시기한 학계와 선배 학자들로부터 왕따를 당해서 굉장히 고심하다가 어려운 길보다는 편한 길, 돈 버는 길을 선택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강남에 학원 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을 찾았더니 중국 음식점에서 자장면 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그는 수학과 물리학 밖에 모르기 때문에 내신성적에 걸려서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먹고살아야겠기에 그가 택한 직업이 철 가방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불쌍하게도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머리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은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일인데, 갈릴레오가 아무리 깊게 연구해 봐도 주체사상은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당국이 자아비판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자아비판의 자리에 서서 자기 마음과는 다른 주체사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내려오면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허구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들켜서 아오지 탄광에 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예상대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까다로운 각종 규제와 급행료 등에 걸려서 빛도 보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사업에 부도가 나서 지금 어디 사는지 하나님도 그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퀴리부인은 라듐을 발견해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좋지만 얼굴이 받쳐주지 못해서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특유의 근면성을 살려서 지금 재봉사로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킹박사는 재주는 뛰어났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절망 속에 빠져 살다가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서울시내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위 이야기에서 우리나라는 아무리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천재가 있다할지라도 그 천재를 쓰지 못하는 국가, 그리고 어떤 원칙이나 방향 없이 자기이익과 자기생각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기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정말 절망입니까? 지금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못해 방황하는 청년들이 한 둘이 아닌 현실입니다. 그래서 미래가 안 보인다고 소중한 생명을 끊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대통령을 바꾸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도를 바꾸면 됩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이 시대에 갈대 상자 안에 믿음의 거목을 키우는 일에 진력을 다 해야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모세의 부모가 한일은 석달 동안 자녀를 숨겼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석 달 동안만 견딘 그 보잘 것 없는 믿음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정상적인 과정이었다면 모세는 죽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믿고 포기하지 않은 이들 부모의 믿음이 어린 모세를 죽음에서 건져내고 하나님께 쓰임 받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비합니다. 모세를 적진 한복판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게 하시고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시면서, 동시에 친어머니를 통해 가장 중요한 유년기 교육을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비록 갈대 상자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 약속의 땅을 향한 행진은 나일 강의 기적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나일 강에서 '건져 낸' 한 사람의 모세 한 사람으로 새 시대를 열은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자녀를 든든히 세워야할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맥아더 장군이 자기 자녀를 위한 기도문을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내 아들에게 유우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우리 주변은 엄청난 변화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를 우리가 주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거대한 풍랑에 휩쌓여 침몰할 것입니다. 이제 다음세대를 주도할 거목을 키우는 일에 교회가 최선을 다 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세상 앞에 구원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을 리더하는 다음세대의 갈대상자를 만드는 역사를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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