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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상처 처리하기 (히 1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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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마음의 상처 처리하기 (히 12:15-17)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큼 세상을 보고 이해합니다. 상처가 있으면 그 상처를 토대로 세상을 보고 세상 속에서 그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어느 목사님은 26층 아파트에서 사십니다. 그 목사님은 높은 층을 좋아해서 26층에 사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혜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층의 혜택 중에 가장 좋은 혜택은 좋은 전망과 여름에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집은 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사모님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모든 창문을 다 닫고 걸어야만 주무십니다. 왜 그렇게 하냐면 도둑이 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26층에 어떻게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옵니까?”라고 하면 사모님은 “옥상에서 로프타고 들어옵니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 사모님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사모님에게 있는 아픈 기억들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결혼하기 전까지 도둑을 세 번이나 맞았다고 합니다. 특히 고3 때는 여름에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데 책상 앞에 열어놓은 창문에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직접 보고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사모님의 상처가 26층 아파트에서도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게 만드는 병적인 반응을 보이게 한 것입니다. 반면에 목사님은 달랐습니다. 목사님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도둑을 맞은 적이 없습니다. 목사님의 가정은 항상 대식구였습니다. 식구가 많을 때는 16명이 한 집에서 살았답니다. 도둑이 들어오다가도 32짝의 신발을 보면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그 덕분에 목사님은 한번도 도둑맞은 일도 없고 단독주택에 살았는데도 창문을 다 열어놓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안경이 있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라는 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상처 처리하기입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주의 이름으로 처리되어지기를 바랍니다.

1.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사도바울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후11:23 이하를 보면 그는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고, 서른아홉 번씩 다섯 차례 매를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번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했고, 온갖 위험을 다 겪었고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갈 6:17에서 바울은 자신이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흔적이라는 것은 상처자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전도자로 목회자로 일생을 사는 동안 온갖 상처를 다 받았고 그런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와 마음에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딤후 4:10에 보면 바울은 사역을 하다가 동역자들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은 것 같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말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늘 함께 있을 줄로 알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자기를 떠나는 배신을 겪을 때 바울이 받았던 상처를 보아야 합니다. 배신이 주는 아픔은 큰 것입니다.  딤후 4:14-18에 보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에게 받은 상처를 말합니다. 알렉산더는 바울을 심히 대적했습니다. 그 아픔의 순간에 바울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그를 떠났던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사도바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정도의 사람이 상처를 받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직접 대면했고, 말할 수 없는 계시를 받았고, 그 당시의 세계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로마를 복음화 하는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가 상처를 받을 때도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딤후 4:17에 보면 사도 바울이 사람들로 인하여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 주님이 바울 곁에 서셔서 바울에게 용기를 주실 만큼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상처를 받았다면 우리들이 상처 받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아마 제가 여러분에게 “자신은 마음의 상처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한다면 단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마음의 상처는 주로 가까운 사람에게 받습니다.

요셉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들은 형들이었습니다. 야곱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은 형 에서와 외삼촌 라반이었습니다. 가족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상대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이 더 큰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서로에게 허물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가족끼리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상대를 통해서 사랑을 받기를 원하지만 원하는 만큼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기대하는 것과 달리 상대는 사랑 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를 사랑해 주지 못합니다. 그것이 상처가 됩니다. 또 상대도 상처가 있기에 그 상처로 인한 쓴 뿌리로 가까운데 있는 나에게 쓴 물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상처를 누구를 통하여 받는가 조사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아버지에게서 40.7% 어머니에게서 32,1% 라고 합니다. 상처 받는 내용은 함부로 하는 말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말을 할 때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 라도 자존심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자존심 상하고 무시당하면 살인까지 하게 된다고 합니다.
윤성주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를 고생시키시는 아버지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가끔씩 술을 드시고는 식구들을 구타하시면서 “나는 짧게 굵게 살 것이다”고 하면서 “나이 오십이 되면 죽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윤성주 목사님은 아버지가 빨리 나이 드시기를 간절히 소원했답니다. 학수고대하며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십이 되셨는데도 돌아가시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굉장히 실망했다고 합니다.
자식만 부모에게 상처 받는 것 아닙니다. 올바로 살지 못하는 자식 때문에, 열심히 살지 못하는 자식 때문에 부모도 상처를 받습니다. 게으로고 말을 잘 듣지 않고, 부고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지 못하는 자식 때문에 부모도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3. 마음의 상처에 따르는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상처로 인하여 생긴 쓴 뿌리 때문에 나타나는 몇 가지 결과를 말합니다. 첫째, 상처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마음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모든 환경이 좋아도 이상하게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받은 상처로 인한 쓴 뿌리의 열매입니다. 셋째, 더럽게 됩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더럽게 할 수 있습니다. 포장지는 멋진데 그 포장지를 뜯어보니 쓰레기가 들었다면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그렇듯이 곁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생각이 더럽고 혼자 있을 때 더러운 것을 추구한다면 아직 치료되지 않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 세속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망령’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속된 더러운, 세속적인’이라는 뜻입니다.  다섯째,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합니다. 여섯째, 에서처럼 진정한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일곱째, 하나님께 버림 받고 회개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처리되지 못한 상처는 나 자신에게 더 큰 아픔과 또 다른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한국에서 치유사역으로 가장 알려진 분이 정태기 목사님입니다. 정목사님이 젊을 때 두 가지 별명이 있었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재봉틀’이었습니다. 너무 자신감이 없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도 못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분이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하시다가 37세 되던 해에 치유그룹에 들어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원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상처를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보다 세 살 더 많은 친어머니가 계셨지만 제법 돈이 있었던 아버지는 열여섯 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를 작은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본 부인에게서 4남매를 낳고, 작은 부인에게서 5남매를 낳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다정할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폭군으로서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정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캄캄할 때까지 집밖에서 빙빙 돌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일에만 파묻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어두운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나다 보니까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성격이 삐뚤어지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니까 이유 없는 분노와 불안, 짜증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분노가 쌓이게 되자 화풀이의 대상으로 만만한 사람을 골라서 골탕을 먹이게 됩니다. 자기 집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의 아들을 이유 없이 못살게 군것입니다. 부모님께 분풀이를 하려다 보니까 도저히 무서워서 못하고, 그 대신 아무 힘도 없는 아이를 무조건 괴롭혔던 것입니다. 정목사님의 간증에 따르면, 자기 속이 아주 분노로 들끓어 오를 때면 그 파출부 아주머니의 아들을 빈 항아리에 들어가게 하고 뚜껑을 닫아서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풀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정목사님이 가진 병적인 분노의 희생자는 집에서 키우던 얼룩소였습니다. 형이 맡은 소는 살이 잘 찌는데 정목사님이 기른 소는 바짝 바짝 말라가고 고삐만 잡으면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얼룩소를 때리고 못살게 구니까 소 역시 히스테리 신경증에 걸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목사님이 분노를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치유하지 못했을 때 대인관계는 물론이고 부부관계가 원만할리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상처가 치유 받을 때까지 인생을 늘 우울하게 비관적으로 살아오다가 치유 공동체에 들어가서 마침내 이 상처를 고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상처가 자신을 고통스러운 인생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분풀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로 인한 아픔이 해결되지 않으면 애꿎은 사람들이 상처의 희생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닌데 쉽게 흥분하고 일단 흥분했다하면 그 속에서 온갖 독한 것들을 토해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처로 인하여 생긴 쓴 뿌리 때문에 쓴물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쏟아내는 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한번 쏟아낸 것은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쏟아낸 그 독한 것들이 자신을 곤란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 며칠 제가 목이 헐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목에 생긴 작은 상처 때문에 침을 삼킬 때도 말을 할 때도 제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도 같은 것입니다. 상처로 인해서 발생하는 쓴물이 다른 사람도 고통스럽게 만들고 나 자신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4. 마음의 상처는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은 어떤 상처도 치유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와 상처로 인한 쓴 뿌리 그리고 토해내는 쓴물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면 치유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해주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치유를 받기 보다는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가정을 멀리합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교회를 멀리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치유가 안 됩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가정을 깨버리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교회를 옮기면 되겠습니까? 안보면 될 것 같지만 안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는 상처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시는데 우리가 그 훈련을 피한다고 훈련이 끝나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다가오는 훈련을 피해서 도망간다면 하나님은 그보다 강력한 훈련 프로그램을 적용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매주시는 나무 멍에를 부러뜨려버리니 하나님께서 쇠 멍에를 매주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도시에서 목회를 하다가 늘 힘들게 하는 한 성도를 두들겨 패고 시골교회로 옮겼더니 더 센 성도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또 상대를 두들겨 패려고 했는데 상대가 태권도 5단이어서 실컷 두들겨 맞고 다른 사역지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치유 받아야지 막나가거나 회피해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이 유년기에 신체적 학대를 받은 181명을 조사한 결과 70%가 자기가 부모에게 받은 학대를 그대로 자녀에게 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분명히 자기 부모처럼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텐데 왜 지기 부모처럼 자녀들을 학대하게 되었을까요?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약 상처를 치유 받기만 한다면 더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영국 황실 아카데미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고 하는 사람이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일생 소원인 스트라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기를 원했습니다. 마침내 이 분이 258년 전에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핀란드에 가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흥분한 나머지 넘어지는 바람에 그 바이올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실망 가운데 있는데 런던의 악기를 손질하는 기사가 악기를 잘 수리해서 감쪽같이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친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를 해보니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숙한 치유자이십니다. 우리들의 상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앞에 나와서 치유를 받으면 우리는 이전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치유자이신 하나님 앞에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누가 나의 상처를 치료합니까? 출애굽기 15:26절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고, 말 4:2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4:23을 보면 주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도 치유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남으로 치유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좋은 상담자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치유하기를 원하시고 내가 주님을 찾기를 기다리십니다.

시편기자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시 121).

저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설픈 의사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돌팔이 의사와 같습니다. 어느 병원 환자가 수술실에서 도망을 나왔습니다. 온 병원에 비상벨이 울리고 직원들이 동원된 뒤 마침내 수위실에서 환자가 붙잡혔습니다. 수위 아저씨가 환자를 붙들고 물었다. “무슨 수술인데 그렇게 겁을 내요?”, “맹장 수술이요”, “그까짓 맹장 수술 가지고 그렇게 겁을 내면 어떡해요”, “수술실에서도 간호사가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간호사가 나한테 한 얘기가 아니라 바로 수술하는 풋내기 의사한테 했단 말이오. 그래서 도망 나온 거란 말이오” 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 풋내기 의사처럼 어설픈 치료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해주실 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처를 주님에게 넘겨드릴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딤후 4장에 보면 자기를 괴롭히고 상처를 주었던 알렉산더에 대해 “주께서 갚으시리라”고 말하며 주님께 상대의 처리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주님이 자기 곁에서 자신을 강건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18절에 보면 주님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신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사람 붙잡고 하소연 하지 마십시오. 심장병에 감기약 먹는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셔서 속상한 것, 억울한 것, 아프고 괴로운 것 다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치유를 기다리십시오. 주의 치유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2)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만약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 속에 있는 복수심이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 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나를 상처 준 사람을 통해서 내게 들어오는 저주를 끊는 방법입니다.

이중표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교회 집사님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전혀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내를 괴롭히는 못된 남편이었습니다. 부인은 미모도 아름답고, 교양 있고, 살림 잘하고,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였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아내는 나무랄 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에만 가면 아내에게 성질내고, 못되게 굴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목사님에게 상담 요청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어린시절 성장배경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성장배경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때리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것을 보고 ‘왜 저렇게 어머니를 구박할까 나는 결혼하면 절대로 아버지처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시절에 봤던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사람은 두 가지를 닮는데 하나는 좋은 면에서 닮고 하나는 나쁜 면에서 닮습니다. 좋은 면에서 닮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닮는 것이고 나쁜 면에서 닮는 것은 미워하기 때문에 닮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과 동일시됩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 아버지와 같이 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면 좋은 것을 닮지만 미워하면 나쁜 것을 닮습니다. 그래서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집사님은 목사님의 말씀대로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안에서 태어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그분 안에서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도 밉던 아버지가 밉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난 후에 아내를 보니 옛날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교양 있고, 살림 잘하는 훌륭한 아내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게되었다고 합니다.

  3) 상처를 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사람의 입안에 있는 침으로도 건강검사를 할 수 있답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침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자세를 자져도 침이 달라집니다. 웃어도 달라지고, 기뻐도 달라집니다. 은혜를 받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거나 은혜 받은 사람들의 침은 살균력이 있어 어떤 세균도 침입하지 못하더랍니다. 그러나 절망과 좌절감에 빠져 불안하고 초조하며 걱정 속에 있는 사람들의 침에는 세균을 넣으면 2시간도 안돼서 30배 40배로 증식하더랍니다. 주 안에서 기쁨,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육체의 상처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디 육체뿐이겠습니까?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 때문에 종살이에 옥살이라는 말로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했습니다. 창45:5에 보면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치유사역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치유사역자와 마음의 상처 치유자입니다. 그런데 유명한 치유 사역자들을 보면 자신들이 큰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주님의 은혜 속에서 치유 받고 그 은혜로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치유사역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교회사에서 등장하는 지도자 가운데 치유의 역사와 관련된 목사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워치만 리]라고 알려진 예탁성 목사님입니다. 워치만 리는 거의 한평생을 협심증과 결핵으로 투병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용사였고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체험을 아주 많이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어느 날부터인가 폐결핵을 앓게 되었습니다. 폐결핵을 앓아서 피를 쏟아낼 때에는 정말로 하루하루가 참으로 괴로운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좋다는 약은 모두 다 써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전혀 차도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계속되는 통증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을 나아가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저를 빨리 데려가시려 합니까?” 이 한마디의 기도를 드리고 그는 계속해서 아직까지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 같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으로 행하리라. 믿음으로 서리라”고 하는 말씀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워치만 리는 응답을 받은 후에 놀랍게도 침대생활을 하던 176일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함께 목사님을 위해서 밤낮없이 기도하던 7-8명의 자매들이 이를 보고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워치만 리 목사님의 결핵을 치유해 주셨지만 그에게는 협심증이라는 가시를 남겨 두셨습니다. 워치만 리는 협심증 때문에 육신은 늘 약해서 고통을 많이 당했지만 결국 이 병으로 인해서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됨으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워치만 리에게 육체의 질병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게 했던 은혜의 수단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받은 마음의 상처들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마음의 상처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오늘 말씀을 들은 모든 분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헨리 나우웬의「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치유 목회에서 거장으로 불려지는 큰 인물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님을 상처받은 치유자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뭇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제자들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았으며 마지막 십자가의 상처를 받고 그는 거기에서 살이 찢겨지고 피흘리면서 죽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상처받는 생애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자기 백성들로부터 상처받고, 제자들로부터 상처받고, 마지막 하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못박히는 상처를 온 몸에 지니고 죽는 상처의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상처를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모든 상처를 홀로 체험하신 예수님은 결국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위대한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상처를 받으면 받은 만큼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결론으로 맺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픔을 겪는 분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것이 사명이 되어 배고픈 이웃들을 치유하고 도와주는 사명임을 느껴야 합니다.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경험한 쓰라린 상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을 가슴에 품고 원망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질병 가운데서 건짐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내 주변에서 그런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좋은 치유자가 되라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내 과거가 상처로 얼룩져 있을 때 생각하면 아프고 쓰라린 나날을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삶이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운명을 비관하거나 원망하고 상처 입힌 사람들을 증오하고 원수 맺지 말고 자기 자신이 그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어서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상처로 두지 말고 그 상처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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