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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에 대한 바울의 소원(1) (살전 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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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바울의 소원(1) (살전 3:11~13)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소원은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욕심에서 나온 소원인데, 이런 소원은 이기적이고 세속적입니다. 또 하나의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입니다.

빌립보서 2:13절을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 일류대학에 다니는 것입니까?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까? 세상에 나가서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이런 소원들은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욕심에서 나온 소원들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바라는 소원이 다릅니다. 오직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꾼이 되길 바라는 소원뿐입니다. 그래서 내 자녀가 축복의 근원이 되어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공헌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결혼을 앞두고 결혼 상대를 구할 때도 소원이 있습니다. 욕심에서 나오는 소원을 가진 사람들은 기도할 때마다 인물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가문 좋은 사람, 직장 좋은 사람, 재산 많은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건강한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을 배필로 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믿음의 사람이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감동시키는 믿음의 기도입니까? 이런 사람은 학벌도 재산도 가문도 보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배필을 주실 거라 믿고 오직 하나님께만 맡깁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성전을 지어 바치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얼마나 다윗을 축복하셨는지 일류역사상 다윗만큼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소원이 다른 것입니다. 또 믿음의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본문 11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아버지께만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께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께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8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도 모두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도 있고, 예수님께 기도할 수도 있고, 성령께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소원은?

1.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11절)』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주야로 심히 간구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달려가고 싶어 하는 바울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절대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는 강권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어떠한 삶을 살았던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부르셨고,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려운 가정 형편과 세상의 타락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금식하면서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사흘 만에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살아 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서 살아 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서 살아 줄 수 없겠니?” 이렇게 애원하듯 세 번이나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저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쓰려고 하시는 구나. 주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필요로 하시는구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쓰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강도사 고시를 앞두고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꼭 목사가 되어야합니까? 저보다 훌륭한 목사님도 허물과 실수가 많은데, 도저히 저는 감당 못하겠습니다. 평신도로 주님의 일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식하면서 기도하는데 목요일 낮에 주님께서 “목사가 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저는 곧바로 “네,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강도사 고시를 쳐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인도하시는데로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내 과거도 미래도 내 소원도 다 없어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명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 말씀해 주세요,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게 제 소원이니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게 해 주세요.” 저의 소원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개척 무렵, 서울에서 저를 오라고 하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소원이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서울로 보내지 않고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제가 전도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 왔습니다. 저는 제가 설교를 잘해서 그렇게 교인들이 몰려오는 줄 알고 교만한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그 주간의 수요일 날 아내와 반주자 아이들 몇 명만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죄가 무엇입니까? 저의 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해? 내가 하지.”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교회를 세운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나다. 내가 세운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네가 설교를 잘해서도 네가 훌륭해서도 아니다. 내가 내 양떼들을 모아 주었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 醍? 것을 책임지고 다 해주셨습니다.

2.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12절)』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곧 생명과 같습니다. 사랑이 있는 교회는 생명이 있는 교회이고 사랑이 없는 교회는 생명이 없는 교회입니다. 사랑이 있는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지만, 사랑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됩니다. 그만큼 사랑은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교인은 신자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구원받은 자녀도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닌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 !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3:10~16을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믿음도 없고 거듭나지도 못한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참 교회가 되고, 성도는 사랑이 있어야 참 신자가 됩니다.

요한복음 13:34절을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본을 보여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본을 보여 주시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쳐 나기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사랑이 충만해 집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교회는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충만한 성도는 사랑이 충만하게 됩니다.

경남 마산의 애리원 주경순 원장님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그 분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전쟁고아, 불우한 아동들을 보살펴 왔습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주남선 목사님의 따님입니다. 주원장님은 산모를 돕는 조산소를 운영하다가, 광복 직후 불우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며 사재를 털어서 애리원을 세웠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버림받은 어린이들과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 분의 어린이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별세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다칠까봐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붙이고 다닐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지금까지 2,500여 명의 불우 아동들을 사회 각 분야로 배출했고, 640명을 부모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주원장님은 개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법인에 맡기면서 사회에 환원하고, 평소 유언에 따라 시신도 부산 고신의료원에 기증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고 빈손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사랑을 베풀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고 감동을 받으시겠습니까?

마태복음 25:31~46을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40절을 보면,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은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21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가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밤 누군가가 프란체스코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초라한 거지 한 사람이 비에 온몸이 젖은 채 벌벌 떨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흔쾌히 그 거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거지는 얼굴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지고 코가 문드러져 나간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갈아입을 옷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지는 프란체스코의 침대에 다가오더니 추워 죽겠으니 함께 잘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환자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고름과 진물, 썩은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지만 프란체스코는 오히려 그 거지를 자신의 두 팔로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거지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프란체스코가 눈을 떠보니 거지는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잠자리를 살펴보니 거지와 같이 잔 흔적조차 없고 오히려 방안은 깨끗하고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프란체스코는 간밤에 주님이 찾아왔음을 깨닫고 감격의 눈?! 걋? 흘렸다고 합니다.

골로새서 2:23절을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되 주님을 사랑하듯이 사랑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기도 중에 가장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는 미워하는 사람을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런 기도야 말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예배도 사랑으로 해야 하고, 찬양도 기도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봉사를 할 때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봉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녀를 교육시킬 때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목회를 할 때에도, 설교를 할 때에도, 선교를 할 때에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정치를 할 때에도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피차간에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랑이 더욱 넘치게 해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면 그 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사랑이 넘치는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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