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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후 승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수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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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승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수 11:1-9)

우리는 주일 예배 시 계속해서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을 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1단계는 가나안 전국 주요 거점 정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파가 힘을 합하여 총력전을 하여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미 살고 있는 각 족속을 고립시키고 군사적 우위권을 확보하여 정복 정착의 교두보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2단계는 완전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후 가나안 땅의 영토를 12지파에게 분할하는 것입니다. 3단계는 각 지파별로 자신들이 받은 영토 내에서 남아 있는 이방 족속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1장은 1단계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전쟁이 마쳐지는 장면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수 11:23)”
중부, 남부, 북부의 중요한 거점을 완전히 점령한 것입니다.
먼저 가나안 중부 지역의 요충지인 여리고 성과 아이성을 쳤습니다. 그리고 길갈에(수5:10) 본부를 두었습니다. 가나안 남부와 북부가 연합 세력을 형성하는 것 방지하기 위해 중심부터 쳐 분할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남부를 공략하여 다섯 아모리 왕과 그 군사를 기브온에서 대파하였고 주요 성읍들 단계적 정복하였습니다.

그러자 가나안 북부 나라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하솔와 야빈이 중심이 되어 강력한 북부 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1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들의 군대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모든 군대를 총동원하였는데 그 수가 해변의 수다한 모래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가 가지고 있지 않는 신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차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메롬 물가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가 총동원한 총력전을 펼치는 이 마지막 전투를 통쾌하게 승리하고 그 땅에 전쟁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하였는가를 살펴 봄으로 “최후 승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교훈받으려고 합니다. 최후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1차 가나안 중요 거점 점령의 최후 승리를 위해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간단 명료한 작전 지시를 통하여 승리의 비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전 명령은 무엇입니까? 6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수 11:6)” 단순하고 늘 하시는 말씀이고 익숙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1차 점령 전쟁에서 최후 승리를 이루게 하는 비책의 작전지입니다.

1. 우리가 최후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사명(과업)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을 한 번하고 그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전쟁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전쟁 한 번하고 그치는 것 아닙니다. 삶의 전쟁 한 번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어떤 전쟁도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익숙해도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하여 또 다시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명을 주실 때, 인생의 과업을 주실 때 늘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은 우리는 식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승리를 위해서는 이 말씀 붙들어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쟁의 경험이 많아도 모든 전쟁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을 가지면 어떤 전쟁도 시작할 수도 없고 시작했다하여도 실패할 확률이 많습니다. 백전노장이지만 여호수아는 1차 정복 사업의 마지막 이 전쟁 앞에서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사역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적을 맞은 것입니다. 그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대단합니다. 신무기로 중무장하였습니다. 보병과 기병, 전차병으로 무장한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적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최후 사활을 건 전쟁입니다. 지금까지 중부, 남부를 모두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한 가나안 족속들로서는 이 전쟁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으므로 북부의 모든 잔존 세력들이 총규합한 전투였습니다. 만일 가나안 북부 연합군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가나안 땅 전체는 이제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이 이 메롬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그동안 다져놓은 모든 기반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치명타가 될 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전이 가나안 땅의 주인을 결정짓는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던 것입니다. 이 전면전에서 승리하는 자가 최후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작전 지시를 하시면서 첫 번째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 곧 연합군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점령해야 할 대상이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신 과업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패배의 원인 중의 하나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업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미, 요단 강을 건널 때도(1:6, 9),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 정복이 실패한 후 다시 정복하기 위해 출전할 때도(8:1), 그리고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국을 정복하러 가기 직전에도(10:8), 동일하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사명을 이루실 때 늘 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네 왕의 연합군에게 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은 318명의 군인을 이끌고 그들을 쳐들어가 롯을 구출했습니다. 연합군이 보복하기 위해 다시 쳐들어오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 민족을 이루어야 할텐데 애굽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 46:3)”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땅까지 이르게 하는 사명을 맡겼을 때 바산 왕 옥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민 21:34)”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 앞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삿 6:23)”
미래에 일어날 민족의 위기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로마에까지 가서 사명을 이루어야 할 바울이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기 앞에 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 27:24)”

우리가 최후 승리를 위해서 인생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진리는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되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업 주신 사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선물을 풀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일을 이루는데 두려움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수많은 사업의 번성을 저해하고, 수많은 예술과 문학의 탄생을 가로막아 온 것은 자금 부족, 낮은 교육 수준, 정부의 검열이 아니라 바로 공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에서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한 치도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 이론가인 나폴레옹 힐은 공포의 실체에 대해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린다 새퍼딘은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라는 책에서 두려움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하고, 늘 경계심을 품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자신이 없게 만들고, 매사에 비판적이게 하여 자신을 망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 같은 두려움은 대단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재능을 개발하는데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그 재능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무능의 두려움(만약 실패한다면?), 거부에 대한 두려움(핵심에 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핍의 두려움(내 성과를 훔쳐 가면 어쩌나?), 현실의 두려움(어디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가?), 미지의 두려움(저기 뭐가 숨어있지?), 권위의 두려움(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나이의 두려움(퇴물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은 재능의 숨통을 죄는 것이고 어떤 일을 시작도 못하게 합니다. 사탄은 이 두려움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작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갖지 못하게 하고 사명에 대하여 과업에 대하여 두렵게 하여 결국 실패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두려움을 너무 자주, 너무 강하게, 또는 너무 오랫동안 느끼는 사람은 두려움이 단순히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 버린 경우입니다. 두려움이 하나의 사고방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두려움이 병적인 상태가 되면 두려움은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과 같은 공포증, 공황 반응, 불안 반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정신병의 한 유형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회피합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왜곡된 대인관계를 가지게 합니다.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는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점령해야 할 대상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과업은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여호수아는 어떻게 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담대하게 기습전능 벌여 승리합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메론 물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기습 공격을 하였습니다. 북부 동맹군은 여러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사 분란한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허점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북부 동맹군이 체제를 정비하기 전에 기습공격을 하였습니다. 이들을 아직 이스라엘 군인들이 멀리 떨어져 공격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방심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동맹군들에 비해 분명 전력은 약세였지만, '내일 이맘 때에'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6절)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기습 공격을 수행하여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입니다. '졸지에'라는 눈 깜빡할 사이에입니다. 상대방이 전혀 예측치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들이닥쳤다는 말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고 더욱이 말과 병거로 무장한 북부의 연합군을 보고 겁을 집어 먹고 망설였다면 결국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데스 바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겁을 먹었다면 결코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은 경외함으로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여 나아가 최후 승리를 하여야 합니다.


2. 우리는 최후 승리를 위해 하나님이 붙여 주었다는 믿음(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내일 이 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붙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연합군이 한꺼번에 오고 있는데 바로 그렇게 한 것을 단 번에 가나안 북부를 점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붙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맡겨 준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명감입니다. 두려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여 주었으니 사명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명감으로 할 때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익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사명감으로 할 때 마침내 그 일을 이루어 최후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다음은 너희들이 싸우긴 싸우지만 이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확실하게 보장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궁극적으로 승리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사실 이 가나안 땅의 정복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니나 하나님께서 43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예언해 주시고(창15:13-21) 그 예언이 성취되는 내용입니다. 노예 생활과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 땅에서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안식의 땅으로 이끄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이 약속했으니 하나님이 친히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무너뜨리시고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군을 패배케 하셨던 하나님께서는(10:8-10), 이제 가나안 북부의 전체 동맹군들과 전쟁 역시 승리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사명 붙들고 나아가니까 어떻게 됩니까?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여 주시니까 그들을 격파합니다.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서 계속적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10:8, 12, 19, 30, 32; 11:6, 8; 21:44; 24:11).
하솔 왕을 진멸합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 진멸하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하였습니다(16-23).
사람이 어떤 일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홀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싸워 이기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큰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네 능력이 아니라 내 능력으로 싸워 승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하여 확실하게 승리로 보장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전쟁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무거운 과업일지라도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반드시 우리 하나님께서 성취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두려움의 늪에서 쓰러지도록 방치하시겠습니까?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오늘도 이 시간 각양 좋은 은사를 주시기 위해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은사를 주실 줄 믿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인류의 역사를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학자들이 두려움을 분석해 보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 92%가 쓸데없는 두려움과 불안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경험해 보았습니다. 가나안 정벌을 놓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그의 앞길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다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미래를 두려워할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미래는 다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리아 산에 올라갔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이레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창 22:7-8).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아가는 모세의 앞길에 하나님은 갖가지 필요한 것으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아가는 바울의 앞에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와 후원자들을 준비해놓았습니다.

광야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말씀합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신 1:33)"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바로 왕에게서 나왔을 때 바로가 마음 바꾸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애굽의 모든 전차를 동원하고 군인들을 거느리고 추격합니다. 앞에는 홍해가 놓여 있습니다. 백성들을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의 입술을 통해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 14:13) 다윗의 앞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모세의 앞길을, 여호수아의 앞길을, 야곱의 앞길을, 요셉의 앞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우리 교회의 앞길을, 우리 기업의 앞길을, 우리 민족의 앞길을 최후 승리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3. 우리는 최후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신 말씀 붙들고 온전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붙여 너희들 앞에서 승리하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여호수아가 이 전쟁에서 최후 승리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까? 여호수아의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6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상한 작전 명령입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여호수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승리하면 전략 무기인 말과 병거는 당연히 다음 전쟁을 위해서 다시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없는 신무기를 빼앗았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다 불살라 버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작전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에 있는 것도 사람의 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여호와께 있으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전투의 방법이 말이나 병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획한 말의 뒷발 힘줄을 끊음으로써 말을 전투용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병거를 불사름으로써 병거를 의지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기병대와 병거로 무장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이 기병대와 병거를 더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그들의 능력으로 승리했다고 자랑하고 교만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치 않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교만하면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 17:16에서는 이스라엘 왕 될 자는 말과 병거를 많이 갖추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시 20:7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적군과의 생사를 건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의 방법도 오직 능력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적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성에 이해되지 않은 명령일지라도, 이익에 맞지 않은 명령일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명령일지라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듯한 명령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바보처럼 보이는 명령일지라도 사람을 통해 들려 주는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목회자를 통하여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일지라고 그 말씀을 철저히 붙들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9절에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성실히 순종하였습니다(9)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획한 말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여호수아 장군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병거를 불사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이익이 되지 않아도, 미련하게 보여도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듣지 않고 모세를 통하여 명한 것도 순종하였습니다.(15절)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에게 출 34:11-16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 인들과 언약하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며, 그들과 혼인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민 33:51-56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재차 반복하며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신 7:1, 2에서와 20:16, 17에서 여호수아에게 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말씀이지만 그대로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들은 말씀이든 모세로 부터 간접적으로 들은 말씀이든 하나님의 명령이면 그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철저히 순종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예수님 말씀듣고 흠만 잡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을 죽이는 유대인들처럼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씀을 듣고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행 7:54)”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순종이 조롱받는 시대입니다. 자기 중심의 시대, 자존의 시대, 간섭받기를 죽음보다 싫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가 비판적이어야 교양있는 것같고 지성인 같다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명령이 무시되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순종이 미덕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합니다. 신앙인도 자기 잘난 맛으로 신앙생활한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신앙인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 “내가 복음”을 가지고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1차 가나안 정복의 최후 전쟁의 승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메롬 전투'의 대승리는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철저히 순종하는데서 주어진 축복이었습니다.

순종하기는 순종하되 철저히, 온전히 순종하여 화근을 제거해야 최후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1차 거점 점령의 전쟁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성경은 여호수아의 순종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6-23에서 1차 정복 전쟁의 종결부분을 설명하시면서 21-22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을 약간 남겨 놓았습니다. 여호수아의 순종의 흠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강력히 대항할 만한 세력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도 있습니다. 일시에 멸족시키면 전국토가 황폐화 되니까 잠시 종으로 부렸다가 점진적으로 쫓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출23:29,30).

그들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후일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삼손을 쓰러뜨리게 된 것이 가사입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삿 16:1)" 가사는 블레셋의 여러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삼손이 그곳에서 이방 여인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머리가 깎이고 눈이 뽑히고 감옥에 갇히고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당시 그 성만 취했다면 후대에 그렇게 비참하게 몰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작은 힘으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명령한 마디면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연전연승을 하고 있을 때이고 적들은 쳐들어온다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고 있을 때입니다. 경쟁력이 있고 힘이 있을 때이고 넉넉히 승리할 만한 환경이 되어 있을 때입니다. 작은 힘으로 물리칠 수 있는 기회를 잃으니까 큰 힘으로도 물리칠 수 없는 무시 무시한 세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리앗이 가드 사람입니다(삼상 17:4-7). 가드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 골리앗과의 싸움입니다. 남겨 놓아 얼마나 지독하게 블레셋에게 시달려야만 했습니까?
아스돗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대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삼만이 죽었습니다(삼상 4:10). 법궤까지 빼앗겼습니다. 그 법궤가 어디로 옮겨갔습니까? 결국 여호수아가 정복하지 않았던 땅 아스돗으로 옮겨갔습니다(삼상 5:1-2). 성실히 순종하되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사울 왕은 철저히 순종하지 못하여 최후 승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양과 소가 너무나 기름지고 좋았습니다. 그것 진멸하기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삼상 15:9)”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와보니 소 소리와 양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물어 봅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그 때 사울이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삼상 15:15)”라고 말합니다. 이 때 사무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최후 승리는 얻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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