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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아내 미갈이 주는 교훈 (삼상 18: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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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아내 미갈이 주는 교훈 (삼상 18:22~30)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1절에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이유 때문에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을 구한 다윗은 구국의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백성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 만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호성은 다윗에 대한 사울의 질투가 극에 달하도록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백성들 사이에서 높아질 때 참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될 사람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다윗에 대하여 자신의 호의를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심지어는 신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의복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기까지 했습니다. 사무엘상 18장 4절에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신이 사울을 떠나고 악신이 사울을 지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울은 악신의 조종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18:10).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울의 질투와 경쟁 대상이 된 다윗은 좌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18:13). 사울의 이와 같은 정책은 다윗의 인품과 지도력이 대신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되도록이면 위험한 전쟁터에 보내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명성은 더욱 더 높아만 갔습니다. 마침내 사울은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다윗을 전쟁터에 보내어 죽게 하려는 계책을 꾸몄습니다(18:17-21).
이미 사울은 큰 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메랍을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냈습니다(18:19). 사울은 맏사위가 될 다윗과의 약속을 파기시켰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다윗을 좋아하는 미갈을 큰 딸 대신 다윗에게 주기로 한 것입니다.

Ⅰ. 미갈은 다윗과의 결혼의 동기가 나빴습니다.

1) 불신앙의 아비가 주장하는 보상(補償)적인 결혼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25절에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은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한 말입니다. 다윗은 그 당시 이 사실을 거듭 확인을 하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믿음으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악신에 들린 사울왕은 다윗에게 약속을 지키지 아니했습니다. 다윗과 그 가족에게 아무 재물도 주지 아니했습니다. 주겠다고 약속한 딸도 주지 않았습니다. 자기 딸을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시키므로 다윗은 사울왕의 사위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의 입에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 만이라는 정직한 노래가 다윗에게 천부장의 벼슬 하나를 얻도록 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큰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18:19).

악신이 들려 있는 사울은 딸을 주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파기시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자신의 맏사위가 될 경우에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쏠리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신하를 시켜 다윗에게 미갈을 주겠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같은 결혼의 약속은 사울이 다윗을 다시 한번 궁지에 몰아넣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18:21).
다윗은 맏딸 메랍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사울에 대하여 크게 기대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딸을 데려올 때 왕에게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폐백금을 지불할 능력도 다윗에게는 없었습니다(18:23-25).

2) 불신앙의 아비가 주장하는 모해(謀害)적이며 피 흘리는 결혼이었습니다.
본문 18장 25절에 『사울이 가로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폐백(幣帛)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대 중동 지방의 폐백은 대부분 장인의 요구액만큼 사위될 자가 현금이나 현물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장인될 사람이 사위될 자에게 다른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미갈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양피 일 백을 요구했습니다(18:25). 여기 양피(陽皮)는 남자 생식기의 포피(包皮)를 말하는 것입니다(창 17:11-14).

다윗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골리앗을 칠 때 이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양피 일백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하게 되면 블레셋에서 볼 때는 할례를 미끼로 우리가 모욕을 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블레셋 족속들로 하여금 민족적 분노를 사게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양피를 베는 일은 특공대를 조직해서 엄밀히 행해야 되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보다는 그 위험도가 훨씬 더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대 모험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계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계략을 조금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울이 요구한 것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18:26).

다윗은 그 즉시로 일어나서 블레셋 사람 이 백명을 죽이고 양피 일 백을 가져다가 왕에게 드렸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사울은 자기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18:27). 미갈의 결혼은 피 흘리는 결혼이었습니다. 악신에 들려 있는 그녀의 아비된 사울은 사탄의 분신이 되어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Ⅱ. 미갈은 불신앙의 옛 모습을 소유한 아내였습니다.

사무엘하 6장 16절에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고 했습니다.
법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다윗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웃사가 즉사하고 법궤는 곧 바로 다윗성으로 운반되지 못했습니다. 역대상 13장 9-11절에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드 사람 오벧에돔 집에 석 달을 두었습니다(대상 13:12-14). 석달이 지난 후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날이었습니다. 다윗은 너무 감격하여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긴 이유에 대하여 그녀가 아직도 전 남편인 발디엘(삼하3:15-16)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이유는 미갈은 좋아서 춤추는 다윗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왕을 업신여긴 것은 여호와의 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했던 자신의 아버지 사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대상 13:3).
델리취(Delitzsch)는 말하기를 "이런 이유에서 성경은 아직도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기록하지 않고 사울의 딸로 소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법궤가 얼마나 귀한 것인 줄 미갈은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성으로 법궤를 메고 갈때 좋아서 춤을 추는 다윗을 보고 같이 춤을 추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다윗을 업신여기지는 아니했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딸 미갈과는 다르게 법궤를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법궤 안에는 ①모세가 받은 두 돌판 ②만나를 담은 항아리 ③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다윗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요 1:14). 우리의 산 떡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요 6:35). 부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요 11:25).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갈은 남편의 생각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중심은 자신의 아버지 사울의 영적 암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이 그녀의 태를 막아 무자했습니다.
사무엘하 6장 23절에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 교만했고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요 가견적(可見的) 보좌인 법궤에 대하여 알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적절한 징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은 성도의 가정에 자식이 없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징계라고 간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들의 가정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자녀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비록 육신의 자녀가 없을지라도 영적인 자녀를 많이 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4장 1절에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아버지 한상동 목사님은 일생 동안 육신의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영적인 자녀들이 신앙의 아버지라 부르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는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영적 자손들입니다.
영적으로 무자하다는 말은 신앙의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의 삶 가운데 축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주께로 오는 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결국 자신을 지지해주는 자식 같은 자들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2) 그녀는 다윗의 아내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상 25장 44절에 『사울이 그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분명히 다윗의 아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악신에 들린 사울은 자신의 딸을 물건처럼 돌렸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아버지입니다. 다윗을 시기한 나머지 또 한번의 비극이 빚어지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결혼은 동기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악신이 들린 불신앙의 아버지가 주관하는 결혼이었습니다. 그 결혼은 보상적이었습니다. 그 결혼은 모해적이며 피 흘리는 결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45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과 결혼한 미갈은 아직도 불신앙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녀로 하여금 생산하는 태를 막아버렸습니다.
성경이 다윗과 미갈과 사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행적인 혼인 이야기를 하므로 이 성경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과 증오감을 증폭시켜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고자함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인 동시에 그의 몸된 교회의 상징입니다. 악신에 잡힌 사울은 사탄의 정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신부입니다. 다윗과 미갈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악신에 붙들린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사탄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환경이나 조건들을 생활의 최우선 순위에 두게 합니다. 따라서 사탄의 요구는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조건들이 파괴되면 신앙도 발붙일 곳이 없도록 만듭니다.

사탄은 성도를 유인하여 그로 하여금 주님의 몸된 교회가 피 흘리도록 합니다. 사탄의 앞잡이가 된 사람은 항상 본의든지 본의가 아니든지 성도와 교회를 어지럽게 합니다. 결국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말살시켜 버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탄의 계략에는 축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사탄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이러한 성도(신부)가 되지 맙시다. 남편의 가족을 구원하고 다윗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생산하는 아비가일 같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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