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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에 대한 책임 (룻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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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 대한 책임 (룻 4:13-17)

시작하는 말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월의 첫주일, 교회력으로는 주님 산상 변화주일이며 동시에 감리교회에서 정한 은급주일입니다. 은급이란 단어가 한자어로 조금은 생소합니다. 그 의미는 은퇴하신 목사님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돌보자는 것입니다. 이 주일에 특별히 그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헌금하는 주일입니다. 넓게는 한국 교회를 위하여 평생을 수고하시다가 은퇴하신 목사님들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돌보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고령화란 국가 전체 인구에서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UN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을 고령 인구라고 합니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7%를 넘는 연령구조를 갖으면 고령화 사회라고 합니다. 65세 이상인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라고 하고, 고령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사회는 초고령 사회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고령화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 중입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7.2%로 이미 유엔이 규정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고령사회로,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전망입니다. 그럼 이렇게 고령 사회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본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는 저출산 사회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또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사망률이 감소한 것이 사회가 고령화되는 또 하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식생활 및 영양의 개선, 공중위생 및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각종 보건복지제도의 혜택 등등으로 삶이 안정되며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고령사회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는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부담해야 할 책임이 크기에 그 대책을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국가적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구스러운 질문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감리교회 교역자의 구조에서 고령 인구비율은 어느 정도나 될 것 같습니까? 현재 전체 감리교 목사님 중에서 65세를 넘는 분들이 17%입니다. 이를 사회구조로 말한다면 이미 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2021년에 가면 그 비율이 21%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어 일반 사회보다 5년 정도 앞서 초고령 사회가 될 것입니다. 고령 사회니 초고령 사회니 하니 심각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교역자들이 일반인들보다 오래 사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역자들이 일반인들보다 평균수명이 짧다고 한다면 그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원로 교역자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게 된 것은 분명히 감사하여야 할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감사하여야 할 일에는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 과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대책이 필요한 것처럼 감리교회 안에서도 대책이 필요합니다.

감리교회는 은급이란 자랑스러운 제도가 있습니다. 은급이란 은퇴하신 교역자들의 노후 생활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우리교회도 매년 예산의 1.5%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지원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현재 목회하신 시무년수에 기준금액을 곱한 금액을 은급금으로 지원하는데 현재 40년 목회하신 분에게 월 100만원, 30년 목회하신 분들에게 월 75만원, 20년 목회하신 분에게 월 50만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은급제도 하에서는 2017년 이후에는 이미 은퇴하신 교역자 뿐 아니라 새로이 은퇴하게 될 교역자들에게 현재 정도의 은급금 지급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땅에서 더 많은 수를 누리게 됨은 분명히 감사하여야 할 일이지만 교회적인 관심과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래 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난 입법 총회에서는 신 은급법을 제정하였지만 서로 이해가 달라 매우 시끄럽습니다. 오늘은 은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은급을 위하여 기도하기 위하여 감리교회적으로 제정한 은급주일에 우리가 잘 아는 룻기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은퇴 교역자들에게 감사드리며, 교회가 기쁘게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계대자(繼代者)

먼저 13절 말씀에 보시면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중에서 친숙한 본문인 룻기에서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아내였던 나오미는, 후사가 없이 죽은 아들의 아내인 룻에게 새로운 남편을 맞아들이도록 주선하여 줍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와 룻이 만나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14절에 있는 말씀처럼 보아스는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기업을 무를 자’란 표현이 룻기에서 많이 나옵니다. 3:12,13. 4:3,6,7,8 절에서 거듭 나오는데 표준번역에서는 ‘집안간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 공동번역에서는 ‘친척’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주전 12세기로 사사기 시대로써 가나안 정복 후 지파들이 땅을 분배 받고난 후 얼마되지 않은 때입니다. 이 땅의 배분이 잘 존속 되고 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속자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생긴 고엘(Goel) 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엘 제도란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습니다. 보아스는 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代)를 이어주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고엘이 되었던 것입니다(신25:5-6). 보아스는 룻을 통하여 자신의 아들을 낳았지만 이는 동시에 룻의 본 남편의 대를 이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룻이 낳은 오벳은 보아스의 아들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지만(마 1:5) 나오미의 손자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 가문을 이어나갈 자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대(代)를 잇는 역할의 보아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는 물려받는 사람인 동시에 물려주는 사람 즉, 계대(繼代)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감리교회의 역사를 이어받은 사람인 동시에 감리교회의 역사를 이어갈 감리교회의 계대자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신앙을 물려줄 많은 사람들을 품어야 합니다. 신앙의 세대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령화 사회는 근본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는 저출산 사회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통하여 아이를 낳은 것처럼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교역자의 구조가 고령 사회로 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성장하여야 합니다. 은급금의 고갈은 은급부담금의 증가가 은급 수혜자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데도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가 더 많은 부담금을 낼 수 있다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물론 부담금을 더 많이 낼 수 있게 되기 위해서 교회가 성장하여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영혼구원은 교회의 순수한 목적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이 교회의 유지나 재원 마련의 방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은급주일을 맞으면서 우리가 영혼구원을 위하여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복음의 물결이 우리에게서 단절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기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신앙의 대(代)가 자신에게서 끊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도하여 복음을 들려주신 은퇴 교역자에 대하여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봉양자

15절입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룻이 낳아 나오미의 품안에 안긴 아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봉양자는 히브리어에서 ‘유지하다’. ‘지속하다’는 말에서 온 단어로 존재할 수 있도록 유지해주는 것으로 ‘부양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노후를 공양해 줄 것’이라고, 표준새번역은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룻이 낳은 아들이 나오미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다 줄 것이며 나이 많은 그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웃의 여인들이 룻이 낳은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그 이름이 오벳입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오벳이라는 이름의 뜻이 재미있습니다. 오벳은 히브리어로 ‘섬기다’ 에 해당하는 ‘아바드’ 의 분사형으로서 곧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오벳’은 늙은 나오미를 봉양하고 섬기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봉양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회는 감리교 은퇴 교역자들의 오벳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분들의 노후를 보살펴 드리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지난 제18회 경기연회(최승일감독)에서는 감리회 최초의 ‘연회 실버타운’ 건립을 결의하고 은퇴 교역자들을 위한 실버타운을 짓고 있습니다. 2007년 연회에서 연회의 전 교회들이 결산의 1%의 실버타운 건립을 위한 부담금을 내기로 결의 하였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에 땅을 매입하고 건축하는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열 네 세대의 은퇴 교역자들이 보금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회적으로 큰일을 한 것입니다. 모든 연회와 모든 교회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똑 같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은퇴 교역자들의 노후를 살펴드리는 일에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들이 감리교회의 교역자들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교회가 예우해야 합니다. 은퇴 교역자를 위한 최소한 생활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은급금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부담금을 제대로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은급사업에 전 감리교회가 협력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은퇴 교역자들의 봉양자가 되는 것은 자녀들이 그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진정으로 교회의 부흥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은퇴 교역자들을 잘 봉양해야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엡6:2) 교회가 은퇴 교역자의 봉양자가 되기를 결심하고 섬기십시오. 교회마다 은퇴하는 교역자와 교회가 얼굴을 붉히며 아름답게 끝맺음을 하지 못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일입니다. 물론 교역자도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며 교회는 당연한 책임감을 갖고 봉양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양육자

마지막으로 이제 16절을 보겠습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룻이 낳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그의 양육자가 되었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따라가서 살고, 룻이 낳은 아들은 나오미가 양육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공동번역은 ‘자기 자식으로 길렀다’고 표준새번역은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오미가 단순히 이 아이의 보모 이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미는 룻이 낳은 아이의 성장에 직접 간여하였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룻이 나은 아들을 나오미가 품고 양육 한 것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에 참여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의피 값으로 사신 사람들입니다. 우리 각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낳으시고 우리를 키우시기 위하여 양육자로 사용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은퇴 교역자들은 성도들의 양육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실 때 미련하게도(고전1:21) 사람을 통하여 부르는 것처럼, 부르신 사람들을 양육하실 때에도 사람을 세우셔서 양육하셨습니다.(딤전4:6). 우리 감리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세우실 때 사용하신 분들이 감리교회의 은퇴 교역자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분들을 감리교회의 양육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 분들은 아주 열악한 조건에서 부르심을 받아 말없이 양육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은퇴한 노목사님 한 분이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걷다가 길 가에서 속이 텅비어 죽어가는 한 고목나무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물끄러미 고목나무를 바라보시던 목사님께서 나무를 향하여 이렇게 호통을 치셨답니다. “이놈아, 너는 목회도 안 한 놈이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속이 썩어 문드러졌느냐?” 그러면서 혀를 끌끌 차시더랍니다. 도대체 어떻게 목회를 하셨기에 그렇게 속이 썩은 고목나무와 같은 상처를 안고 은퇴를 하였을까요? 하늘에 속한 사람이지만 땅을 딛고 살아가면서 육체적인 고난을 온 몸에 짊어진 분들이 바로 은퇴 교역자들입니다. 오늘의 감리교회를 있게 한 양육자로 쓰임을 받았던 그 분들을 교회가 무거운 짐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들보다 덜 배우고 세상에 드러날 만한 일을 하지 아니하였어도 부모는 그들을 낳아 준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은퇴 교역자들은 교회의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은퇴 교역자를 교회의 양육자로 존경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서울 남연회에 은퇴하신 목사님들이 50여명 되시는데 이달 28일(목) 우리교회에 초청하여 따뜻한 점심을 한 끼 대접하고 봉투에 차비라도 넣어 드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도 여러분 관심을 갖고 도울 일이 있으면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감리교회는 일반 사회보다도 훨씬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전체 교역자 중 고령 교역자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성장이 멈추고 감소될 위기를 맞고 있다는 쓴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우리감리교회는 대책으로 신은급 제도를 마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적 장치일 뿐입니다. 교회가 지속적으로 부흥하지 않으면 자칫 미봉적 대책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은퇴 교역자에 대한 대책을 어떤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교회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영혼구원에 힘을 쏟아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동안 부흥을 위하여 교회의 양육자로 일하게 하신 분들에게 봉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책임질 때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감리교회의 부흥을 이룬 분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감리교회의 부흥을 이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감리교회를 이룬 분들에게 존경을 드리며, 감리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오미가 보아스와 룻을 만나게 하여서 오벳을 낳게되고 그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 것, 그리고 그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여 구세주가 되게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 속에서 보아스와 룻의 계대자 역할, 오벳의 봉양자 역할, 나오미의 양육자 역할이 모두 필요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대를 이어 가는 자로, 봉양자로 양육자로 부르실 때에 우리가 그 역할을 강담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를 위하여 지난 세월 고생하시다 은퇴하신 목사님들 앞에서 계대자의 역할, 봉양자의 역할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양육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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