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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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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2~9)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던 군의관들이 명명한 새로운 질병이 있습니다. '철조망병' (Barbed Wire Sickness)으로, 증세는 극도의 우울증, 식욕도 없고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나중에는 쇠약해져서 누워있기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병은 원인도 잘 밝혀지지 않았고, 당연히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가시철조망, 즉 수용소 안에 갇혀 있을 때 생긴 일종의 '절망병' 이었습니다. 나중에 여러 사람들을 통해 입증된 자료를 보면, 그 때 같은 수용소 안에 있었지만 가시철조망을 보고 한탄하는 대신에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고향을 그리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까지 철조망에 갇혀 구속되었던 사람들은 병에 걸렸지만, 마음이 구속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 철조망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철조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넘어갈 수 없는 현실의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철조망이 있고, 실패라는 철조망이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라는 철조망도 있습니다. 혹시 '철조망 병' 의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한 채 살아가십니까?

본문은 예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축제분위기로 가득 찬 성전에 계신 예수가 아니라, 베데스다 못가에 오신 예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아름다운 성전, 멋있는 축제,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의 아름다움, 감격과 기쁨으로 가득한 군중보다 베데스다 못 가의 병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한숨과 고통으로 가득한 고난의 사람을 찾으시며 그들에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는 질병과 가난과 눌림을 당한 사람을 찾아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성전으로 가시지 않고 고난 속에서 허덕이는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들을 찾으셨습니다.

베데스다의 못은 간헐적으로 온천수가 솟아 나오던 곳이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을 때 먼저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색 병을 앓는 사람들은 못 주위에서 물이 움직이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이 솟구쳐 올라오면 병자들은 뛰어듭니다. 그러나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에 본문의 38년된 병자에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쓰지 못해 기어가다 보면 다른 병자들이 먼저 들어가고 못의 소용돌이도 가라앉고 맙니다. 그런 이유로 38년째 못가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절망의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에게 오신 예수는 병이 오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38년된 병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께서 물으시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는 질문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자각을 하느냐

교육학자인 팀한셀 (Tim Hansel)이 오랫만에 만난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10년 전에도 성실한 교인이었는데 그때보다 더 기쁨과 확신의 삶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 로마서를 읽다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전에도 그 사실을 알지 않았습니까?" "그럼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크리스천이 되었으니 더 이상 죄를 지어서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면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를 읽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죄인이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자아로 인해 결국 죄를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음도 깨달았습니다. 그 후부터는 죄를 범해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으로 자학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께 나아와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자신의 죄를 자각하니, 병든 심령임을 자각하였더니 치료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회복과 기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거기 삼십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께서는 병자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못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탓으로 돌리는 38년된 병자에게 초점을 맞추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병에 걸릴수록 아픈 줄 모릅니다.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합니다. 본문의 38년된 병자도 자신이 어떻게 아픈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옮겨주지 않아서 고침 받지 못했다고 원망합니다. 자신이 어떤 병에 들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병이 든 것을 자각하기 원하십니다. 병든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짓고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진정으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백 개 이상의 건반으로 각각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진 악기입니다. 그런데 인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음을 내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행위 하나 하나가, 우리의 언어 하나 하나가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소리, 경건의 소리로 조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만 고장이 난 것입니다. 병이 든 것입니다. 그것도 오랜 기간이 지났습니다. 38년이나 되었습니다. 38년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배회하던 연한입니다. 불신앙으로 방황하였던 불행한 기간입니다. 우리도 고침 받아야 할 병에 든 것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병든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견딜 수 없는 아픔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침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희망이 있느냐

무디(D. L. Moody)가 미미한 전도의 성과로 낙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찾아온 친구가 묻습니다. "자네, 혹시 노아의 생애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는가?". "아니, 그에 대해 특별히 공부한 일은 없다네". 친구는 노아에 대해서 공부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무디는 친구가 돌아간 뒤 성경을 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느라 여러 해 동안 온갖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견딘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노아의 가족말고는 육축 즉 짐승만이 방주에 오를 수 있었던 부분을 읽으며 크게 깨닫고 외쳤습니다. "아, 나의 조급함이 이리도 어리석은 것임을." 그 순간 그를 눌렀던 침울함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엎드려 하나님께 용기와 희망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8년 동안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못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의 희망을 보시고 치료해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기지 못해도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희망을 보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절망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장애가 있더라도 절망치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절망은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범죄한 것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향해 절망하고, 자신을 향해 절망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절망이 원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만나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어간다 해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는 질문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희망을 가져 고침받는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능력을 믿느냐

심프슨(A. B. Simpson) 목사가 건강이 악화되어 사역을 중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울히 지내던 그가 우연히 흑인영가를 듣게 됩니다. "아무 것도 예수께는 어렵지 않네. 아무도 그분처럼 일할 수 없네." 가사의 내용이 소망과 생명을 싣고 화살처럼 그의 심령에 박혔습니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예수께는 어렵지 않다. 아무도 그분처럼 일할 수 없네". 반추하는 소처럼 이 말씀을 되새겼더니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과 그 계절을 보낸 후 완쾌된 그는 일어나 해외 선교 단체를 창설했습니다. 그 후 35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기며 비범하게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질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결함까지도 고쳐주십니다. 그러므로 병든 것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통해 고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쳐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인뿐 아니라 병든 가정과 공동체도 고쳐 주시리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9절입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는 명령에 병자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갑니다. 그가 걸어갈 때 고쳐진 것이 아니라 고침을 받았기에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믿고 순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문제가 풀립니다. 답답함이 없어집니다. 능력으로 치유됩니다. 회복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시기에 앞서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셨지만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역사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으신 이유도 그의 믿음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곳에 치유의 능력이 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고치시기에 앞서 항상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 앞에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병든 곳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체면과 가식을 버리고 믿음으로 일어나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치료의 역사가 임합니다. 38년 눌림으로부터 자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주님의 음성에 새롭게 결단하는 마음이 되어 부디 모든 질병과 억압에서 고침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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