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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변의 믿음으로 (히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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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믿음으로 (히 13:8)

설 명절을 지내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불변의 믿음”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이 귀합니다. 돈도 귀합니다. 권력이나 명예도 귀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믿음이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믿음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 안에 행복도 있고, 진정한 성공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모든 축복이 믿음을 통해 우리들의 삶속에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믿음의 원어의 의미는“맡긴다.” “신뢰한다.” “진실”“아멘”등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많이 사용하는 아멘의 뜻은“기둥에 기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에 기대고, 권력에 기대고, 지식에 기대고, 사람에게 기댑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다 약하기도 하고, 또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에 기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에 열심히 동참하는 것도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노력입니다. 에베소서 4:13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날 때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참사람의 본을 보이시고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꼭 본 받아야할 그리스도의 성품 가운데 한 가지는 불변성입니다. 오늘 봉독한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 그리스도의 지혜,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권세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젊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권세도 변합니다. 심지어 강(江)도 산(山)도 변합니다. 그래서‘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이처럼 변화무상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한 가지가 불변성이므로,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신앙인을 사랑하시며, 변하지 않는 신앙인에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하셨습니다. 죽을 때 까지 변함없이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겨 충성하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1:12 말씀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하셨습니다. 환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변함없이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약속하신 생명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26:3 말씀에 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심지(心志)즉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평강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변하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一. 비천할 때와 존귀할 때의 신앙이 동일해야 합니다.

사람이 비천할 때는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알기에 기가 죽어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형편과 상황이 바뀌어 존귀한 위치에 놓이게 되면 거만해지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비천할 때는 답답하고 억울한 것이 많아 하나님을 의지하여 호소하며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다가 복을 받아 존귀한 자리에 앉게 되면 그 믿음이 변하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름도 없는 가문,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긴 했지만 성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은 청년 사울을 세워 이스라엘 나라 초대 왕을 삼으셨습니다. 사울은 안타깝게도 왕이 된 후 그만 사람이 변했습니다. 측근의 권유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까지 거역했습니다. 교만과 독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남용하여 정적을 해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사울 왕을 보신 하나님은 “내가 사울 삼은 것을 후회하노라”(사무엘상 15:1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신 사람 사울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떠난 사울은 어두움의 세력인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마치 빛없는 캄캄한 밤, 길 잃고 헤매는 사람처럼 악령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사울왕의 말로는 처참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자살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신만 아니라 그 영향이 자손에게까지 미쳐 후손들이 모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볼 때, 무엇이든지 변한 것은 버립니다. 시장에서 값비싼 재료를 구입해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음식 맛이 상했을 경우 그것은 아낌없이 버립니다. 비싼 가재도구를 구입했습니다. 사용하다보니 제 기능을 못합니다. 고쳐도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쓰레기로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울의 모습이 이와 같았습니다.

사울을 버리신 하나님은 양치기 목동 다윗을 세워 사울 대신 왕을 삼으셨습니다. 다윗의 신앙의 특징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의 일생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양을 칠 때의 신앙이나, 훗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일약 명장이 되었을 때의 신앙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 대왕이 되어 천하를 호령할 때에도 그의 신앙에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겸손하게 살아갔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삶이 있기 까지는 불변한 삶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시편 86:11-13)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더 없이 만족해하시면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하셨습니다. 불변의 삶을 살았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아, 이스라엘 육천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二. 환난 때와 영화로운 때의 신앙이 동일해야 합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환난 날에 낙심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고, 영화로운 날에는 그것이 마치 자기의 힘으로 된 것처럼 자만하기 쉬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말에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요셉이라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삶을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열한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 이복형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먼 타국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온갖 서러움과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나의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겠지. 하는 소망 가운데 열심히 일하며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던 요셉은 주인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처럼 요셉에게는 고난과 억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겹겹이 몰아치는 시험의 때가 끝나고 노예로 팔려간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광의 날이 왔습니다. 바로 왕을 제외한 온 나라가 그에게 복종하며 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영광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요셉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년에 한번 들어볼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n, 1902~1973)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습니다. 58년에는 아이젠하워가 유엔대표로 지명했습니다.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훈장인“대통령 자유상패”를 받았습니다. 그가 40년 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말하기를“나는 보잘 것 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시고 나와 함께하셨으므로 오늘까지 영광을 한 몸에 받으며 지내올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내 모든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했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의 이 말은 미국 모든 시민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三. 가난할 때와 부요할 때의 신앙이 동일해야 합니다.

구약성경 잠언 30:8-9 말씀에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할 때에 신앙 양심을 지키기가 어렵고, 부요할 때에 만능으로 보이는 물질의 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가난은 사회악의 온상이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부요함은 방종의 영양소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은 가난해도 변하기 쉽고, 부요해도 변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가난함과 부요함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긴 신앙 위인의 이야기가 구약성경 욥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7남 3여를 둔 욥이라는 사람은 당대의 최대 거부였습니다. 그의 재산은 양이 7,000, 약대가 3,000, 소가 500, 암나귀가 500이며, 종도 여럿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부인 욥의 신앙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시기를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기 1:1)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했지만 거기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어느 날 강풍이 몰아쳐 집이 무너지므로 다정하게 식사하던 열 자녀 모두를 잃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많던 재산은 외적들에 의해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욥은 건강마저 약해져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녀와 재산과 건강까지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욥의 신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욥은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21-22)라고 했습니다. 물질의 유무를 초월한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러한 믿음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 욥기서를 주셨습니다. 물질 까닭에 양심도, 도덕도, 체면도, 은혜도, 믿음도 헌 신짝처럼 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아닙니까? 그러나 욥은 초월했습니다. 이러한 욥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다시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주시되 이전 것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옛날 다윗 왕이 유명한 보석세공사에게 아주 좋은 보석반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왕은 그 보석 반지 만들 때에 좋은 글도 새겨달라고 했습니다. 세공사가 물었습니다. “어떤 글을 세길까요?” “내가 전쟁을 이기고 큰 기쁨에 도취되어서 나도 모르게 교만하게 될 때에 기쁨을 억제하고 교만하지 않게 하는 그런 글과 동시에 때때로 왕으로서 일이 잘못되어 절망에 빠져 마음이 괴롭고 고통이 될 때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글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세공사는 반지라면 어떤 반지든지 다 만들 수 있겠는데 글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기쁨을 억제하는 것이나 절망할 때에 위로가 되는 것은 서로 상반이 되는 것인데 한 글귀에 그런 두 가지 뜻을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몇날 며칠 아무리 생각해보다도 좋은 글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공사는 지혜가 좋다고 하는 솔로몬 왕자에게 찾아가 물었습니다.

“왕자님! 왕자님은 교만하지 않도록 교훈이 되고 실망하지 않도록 위로가 되는 글귀를 알고 계십니까?”그러자 솔로몬은 금방 “그것 아주 쉬고 간단한 말인데” 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은“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가난함의 고통도 부요함의 영화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겨 나가야 하겠습니다.

 
四. 병들었을 때와 건강할 때의 신앙이 동일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11-19에 열 문둥병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나가시는 예수님 앞에 문둥병자 열 명이 나아와 “긍휼히 여기소서.”하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불쌍히 여기신 주께서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사례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아홉은 어디 있느냐”하시며 서운해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얄팍한 인간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답답할 때만 찾는 하나님,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얕은 믿음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건강할 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나, 병든 후 하나님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은 육신의 건강보다 더 소중합니다. 나아가 생명보다도 소중한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입니다. 믿음은 우리들의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란 육신의 건강 유무에 의해 흔들릴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 간호사의 실수로 뇌성마비 장애자가 된 송명희 시인은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

나 하나만 있더라도
세상을 지으신 주
나 하나가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에 죽으신 주
나 하나가 있더라도
천국을 마련하신 주.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나는 말 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사랑을
그 사랑을 말 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들어가는 문은 세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문은 아름다운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아치를 가로질러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첫째 문 위에는 아름다운 장미의 화환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이러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즐겁게 해주는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문 위에는 십자가가 조각되어 있고 거기에는 이러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 예배실로 통하는 큰 입구에는 “영원한 것만이 중요하다”라고 조각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귀와 영화, 부귀와 건강은 장미꽃처럼 일순간에 지나가고 맙니다.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는 비천함과 환난, 가난함과 질병의 십자가 또한 순간에 지나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은 영원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그리스도를 본받아 변함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앙인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앙인에게 풍성한 은혜와 넘치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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