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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혹시대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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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시대 (마 4:1-11)

무자(戊子)년 새해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긴 연휴였습니다. 최소한 사흘, 나흘 심지어 어떤이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9일이나 휴가를 갖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근데 연휴동안에 체중이 2-3kg 씩 늘어서 속상해 하시는 분들이 여기 많이 계실 것입니다. 먹는것!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시도해 본 사람들은 먹는 것 하나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설에도 설음식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것과 그리고 그 시험을 이기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주님의 공생애 사역은 장엄한 기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심으로 그리고 그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심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아주 거창한 화려한 모습으로 기적적인 모습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기도하시고 기도하시면서 시험받으시고 시험받으시면서 그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는 것으로 공생애를 시작하는 것은 대단히 깊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아침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시험을 당하신 이 사건을 통하여, 시험은 누구에게나 온다는 사실과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우리에게 유혹과 시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과 그 받으신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험을 어떻게 그 유혹을 이기느냐가 관건 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못지않게 시험과 유혹이 많은 유혹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유혹시대’라 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시험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것 같이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도 이 시험을 이기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시험이 있지만 우리도 주님처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간직하고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시험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다시 말하건대, 오늘 우리에게도 날마다 오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한 시험이 아니라 이 시험은 늘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는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하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단이 예수를 향하여 나를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시험은 다시 말하건대 주님만 받으신 시험이 아니라 이미 오늘 모든 사람이 그 시험을 받아서 실패했거나, 시험을 받고 있는 중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세 가지의 시험을 살표보겠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성경에 보시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 시험이며, 경제적인 시험입니다. 사람이 굶어서 배고픈 것이 유혹이 아니며, 시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육체적인 현상입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도 예전에는 며칠씩 금식을 하여도,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일을 하여도 끄덕이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까요. 한끼만 굶어도 손이 후들후들 떨리고 하룻밤만 잘 못자도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자체가 시험이거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육체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현상 앞에서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는 이 유혹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연약함과 욕구, 이 개인의 목적과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육체적인 욕구에서 오는 유혹을 근본적으로 끊어버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우리 개인의 우리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수단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은 우리의 목적이십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욕구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육체적 욕구만이 아니라 대국적으로 생각하면 경제문제라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오는 유혹이라고 저는 오늘 이해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배고픔이란 거의 없거든요. 물론 이땅에는 많이 있지만, 적어도 이 공간에 있는 우리들에게 육체적인 배고픔이 우리들의 시험이 되거나 유혹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경제 문제라고 하는 빗겨갈 수 없는 문제로 우리에게 시험으로 다가 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른 예가 될런지 모르지만, 이렇게 예를 들겠습니다. 물론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만,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어서 온 국민이 걸고 있는 기대가 큽니다. 그 중에 첫 번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 문제입니다. 그는 약속하기를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 그 문제를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방법이 없어서, 이 나라의 모든 교회의 재산을 처분해서 경기 부양에 쓰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겠다 생각하고 그렇게 선포하고 실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단이 예수님께 말하는 논리가 이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려고 오지 않았느냐, 네가 구원하려고 하려는 그 인간들이 흉년과 기근과 부채에 시달리고 있지 않느냐. 네가 해결해야할 당면 과제는 빵이 아니냐,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라, 만일 네가 신적 통찰력과 능력을 동원해서 저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한다면 민생문제가 말끔히 해결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얼핏보면 사단의 시험은 시험이라기보다는 논리정연한 충고인듯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방법이 그럴듯 해도 사단이 제시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사단이 제시한 방법이 처음에는 그럴듯하고 타당성이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나와 우리 모두를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급하고 힘들어도 문제를 순리와 질서로 풀어야 합니다. 사단은 돌을 떡이 되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은 떡이 되면 안됩니다. 떡은 밀이나 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단은 그런 질서를 무시하고 방법이야 어떻든 떡을 만들어 민중에게 제공하고 인기를 얻으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야사에 보면 의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TV에 보면 홍길동이라고 하는 퓨전드라마가 있는데, 홍길동이 대표적인 의적입니다. 의적은 탐관오리나 부자들의 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털어다가 자기들도 나누어먹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의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탐관오리도 도둑놈이지만, 의적 역시 도둑놈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목적도 방법도 결과도 성경적이어야 하고, 선해야 합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방법이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예수님의 답변은 육체적차원과 영적인 차원에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단코 영적차원이 육체적인 차원의 도구가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이런 육체적 경제적 유혹은 우리들에게도 매일 있습니다. 육체적 차원에서의 개인의 목적과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되지 맙시다. 현실에서 경제라는 부인할 수없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그 문제해결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교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예루살렘 성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면 그리고 성경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너를 사뿐히 받아준다면, 그래서 너의 발가락 하나라도 상하지 아니한다면 너의 그 장엄한 장관을 바라본 민중들이 입을 벌리고 너에게 경이와 찬사를 보내지 않겠느냐. 이것은 정신적 시험입니다. 첫 번째 시험이 육체적이고 경제적인 시험이라면 이 시험은 정신적 시험입니다.

사람에게는 먹고 입고 잠자는 1차적인 육체적 욕구가 충족되어지면, 그다음에는 무언가하고 싶고, 무언가 되고 싶은 2차적인 정신적 욕구가 발동하기 마련입니다. 출세도 하고 싶고 이름도 내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은 정신적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사단은 그 욕구의 창문으로 시험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 시험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네 발로 성전을 밟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별거냐, 네 발로 밟고 올라서 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험으로 문제를 풀어보라는 것입니다. 뛰어내려라, 설마 네 하나님이 눈감고 계시겠느냐, 모험해 봐라, 그리고 인기를 잡아라 하는 것이 사단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오신 분이지 백성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정치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은 뛰어내리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험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없었습니다. 신앙의 힘은 모험 이상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모험심 충족에 써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청년이 하나님이 계신가 계시지 않은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을 통해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가 40일 기도를 끝내는 날 고속도로에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달려오는 고속버스에 믿음으로 갑자기 뛰어들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털끝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그 후 40일 기도가 끝난 후 그는 고속도로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시속 120km로 달려오는 고속버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그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비신앙적인 모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모험심으로 덤벼보고싶은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유혹은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끊임없이 일어나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도전하다, 도발하다는 의미가 강한 단어입니다. 곧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께 도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유혹은 생명을 담보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이루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 자살, 분신자살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 2위로 자살을 권하는 사회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 주변에 14초에 한명씩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잘 믿겨지지 않습니다. 자살이 죄인것은 생명이 완전히 주님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합니다. 돈 몇 백만원에 어린아이를 유괴하고 심지어는 살해하고 하는 사회입니다. 그런 것을 고상하게 말하면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생명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인체 장기 생산을 위해서 그것은 불치병 치료를 위해서라면 생명의 자리이기도 한 배아를 함부로 다루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체의 장기를 아주 튼튼하게 생산하게 되면, 마치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타이어문제라면 타이어만 바꾸고, 엔진이 이상이면 엔진만 바꾸듯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되면 좋겠지요. 불치의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하여 생명의 근본인 배아를 함부로 하여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을 시험코자, 하나님께 도전하고자 하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한 생명을 천하보다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시험입니다.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보십시오. 물질적인 시험과 정신적인 시험에 실패하자 이제는 영적인 시험으로 집중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빵 문제가 해결되면 그 후에는 정신적으로 욕심과 명예욕 허영이 뛰따라 옵니다. 그리고 그런 후에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될 것같은 시험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우리가 먹고 살 것이 없으면 하나님께 매달리다가, 먹고 살만 하면 정신적으로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휴가를 누리고, 명예를 갖기를 원하는데, 그것도 충족되면 그 다음에는 이제는 예배당에 안가도, 하나님을 안 믿어도 될 것같은 자리에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사단을 섬길 것인가 하는 유혹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에게 경배하고 그의 종이 되느냐,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의 백성이 되느냐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 우리의 인생의 어느때인가는 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사단이 9절에 ‘경배하면’이라는 경배의 의미는 단순한 인사,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숭배와 예배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은 예수님께 자신을 예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사단이 지금까지 장악하고 통치했던 세상을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사단은 최고 지배자가 되고, 예수님은 그의 왕국을 다스리는 분봉왕 정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 당시에 세상의 나라들은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이 지방의 분봉왕 들은 로마 신전에 찾아가서 사단에게 경배한 후에 정권과 통치권을 부여 받아 돌아왔던 그런 때입니다. 마귀는 자주 세상 영광을 담보로 우상 숭배하는 자리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오늘 날 이런 현상은 얼마 든지 있습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을 떠나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에게로부터 등을 돌리라는 유혹입니다. 이런 유혹에 대하여 예수님은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시며, 사단아 물러가라 외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어떠한 유혹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사역은 강력한 유혹을 물리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겪으신 유혹의 본질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험의 본질을 보면 오늘도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시험임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유혹의 본질을 분명하게 깨닫고 유혹에 대하여 NO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아니요 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아니요 라고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라틴어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보다, 요즘으로 말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게 되는 것보다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것처럼 우리들도 언제나 닥쳐오는 시험을 이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느냐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그는 기도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시험 전에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습니다만, 영적으로는 최상의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때로 시험이 아닌 것처럼, 복인 것처럼 위장한 채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주님께 다가왔던 세가지 시험도 어떻게 보면 가까운 친구의 조언이나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왜 시험일까 하는 착각 마저 들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40일 간의 기도를 통해 그것을 사단의 시험인 것을 간파하고 분별하였습니다. 자칫잘못하면 넘어갈 수 있지만, 그는 그것이 시험인 것을 그는 분별하였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사단의 시험은 기도로 무장한 영력으로만 분별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로 언제나 무장하는 성도들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시험을 분별하고 이길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하나 그는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재밌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성경구절을 인용합니다. 무서운 말, 험악한 말로가 아니라 잘 알고 있는 성경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성경 구절로 응답합니다.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여러분 같은 성경말씀의 대결인데, 왜 예수님이 이기셨는지 아십니까. 사단은 성경말씀을 악용했기 때문이고, 예수님은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졌을 뿐이고, 예수님은 그 말씀을 믿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도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말씀을 읽고 순종하여 말씀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우리에게도 시험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맞설 힘만 있으면 걱정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시험에 이기려면, 첫째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품 곧 교회의 틀을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모두 주님처럼 사단아 물러가라 외치며, 이 한해에도 어떤 시험 앞에서도 신앙으로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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