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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자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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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자 (마 4:1-11)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에는 전통적으로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30년의 사적인 생애를 뒤로 하고 3년간 공생애에 돌입하셨습니다. 공생애의 출발은 세례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으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셔서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세사건은 예수라는 분은 과연 누구시냐 하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사건은 메시아 선포식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생애에 돌입하셨는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사실 엄청난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으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으신 이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은 은혜 받은 후에 큰 시험이 찾아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40일간 하나님과 교제하며 십계명의 돌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엘리야 선지가 로뎀 나무 아래에 죽기를 바라고 한탄한 것은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우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물리친 직후였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큰 은혜를 받고, 초자연적인 체험을 하고 난 후에 시험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믿음을 굳게 하고, 경성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광야에 나가서 40일 간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놓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거나 의혹의 눈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으로 이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었기에 허락하신 것이라고 보십시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 꼭 필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허락하였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 같은 것이야 능히 물리치시고 이기실 수 있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못 믿어 하시어 시험해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실 때에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대로 반드시 이기고,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며, 단번에 이길 자신이 있기에 시험에 응하시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 아담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고 범죄하므로 죄와 사망이 인간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마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시험에 넘어가므로 하나님의 낙원,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면서 나라를 회복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습니다.

요일3:8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는데, 마귀의 시험같은 것은 당연히 이기시고 남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아들은 사망 권세까지 이시기고 승리하시는 분이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승리를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생애 초기에 마귀를 이기시는 것으로 이미 승리를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겨놓고 싸우시고 있습니다. 승리를 선포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마12:28에는 놀라운 선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고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하여 마귀의 시험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간교한 시험과 유혹도 실패로 돌아가고, 마귀의 권세란 아무 것도 아님을 알릴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시면서 육신적으로 가장 연약할 때라도 하여도 마귀의 권세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에 들어가 금식하시면서 40일을 기도하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그 머리에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아니하셨는데, 무엇하려고 광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공생애는 이렇게 힘들게 시작하셨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사해 골짜기의 광야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시고 메시아로서의 외로운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사막과 같았습니다. 풀이나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민둥산이요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낮에는 내리 쬐는 태양이 대지를 불덩이로 달구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두움과 냉기가 온 광야를 둘러 덮었습니다. 사람이 광야에 거한다는 것은 살인적인 더위와 얼어 죽는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함께 해주지 않는 고독과의 싸움이요, 아무 것도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없는 굶주림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습니다. 광야에서는 40일을 산다는 것은 100% 하나님과의 의존관계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면 사는 것이요,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가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은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살려주시면 나올 것이요, 생명을 받으시면 드리겠다는 각오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심으로 신앙생활하여야 합니다. 내 힘을 의지하고, 내 마음대로 고집하면서 내 방법, 내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번 살려주시면 살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한번 점검하면서 한 단계 올라서려고 하면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힘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그런 결단이 한 사람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길을 가시면서 호의호식하면서 멋지게 살아가는 그런 대로를 선택하지 않고 힘들지마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시고 있습니다. 장차 메시아로서 어떤 자세로,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자기 고민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이제 메시아로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을 보면 옛날 아담과 하와가 받은 시험의 복사판이라고 생각됩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쓰러뜨린 방법을 사용하면 예수님도 넘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광야에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시험하는 자 마귀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먹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다가와 시험하였습니다. 먹는 문제는 사실 오늘에서 있어서는 결국, 돈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사역에 주역으로 활동하신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험하는 자, 비방하는 자, 대적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마귀 디아볼로스는 예수님에게 달콤한 말로 속삭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룬다고 나섰는데, 저 굶주린 백성들에게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여 먹을 것을 주거라. 그리하면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주님이 하실 수 없는 분야도 아니요, 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보내신 뜻에 불순종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따 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게 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시험은 먹는 문제입니다. 사람이 먹는 문제를 가지고 범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마귀의 간계를 알아야 합니다. 먹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예수님께 도전해 왔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먹는 문제를 가지고 말하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식후경”, “수염이 석자라도”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도 넘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배고픔 앞에서는 체면이고 양심이고 쉽게 팽개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큰 아들 에서를 닮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들에서 돌아오는데 몹시 배가 고프고 피곤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동생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말합니다.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죽을 먹게 하라.”고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야곱이 하는 말 “형의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형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죽 한 그릇이 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장자가 누리는 축복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에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첫 번째 시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시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독자적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지 않느냐고 유혹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는 그 대답을 가지고 시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들어보면 동문서답 같이 들리지만 예수님은 지금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도를 알고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길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다시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귀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인용합니다. 시91:11-12에 보면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말씀을 인용하지만 적당히 인용합니다. 결정적인 부분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네 모든 길에서”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험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놀라운 일을 과시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성전 꼭대기에서 수십 길 낭떠러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로 받아줄 것이었습니다.

이번 시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한번 시험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실성에 대하여 예수님의 믿음을 흔들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속삭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를 물리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그렇게도 신뢰하느냐?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놓고 혹시 나 모른다고 하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말씀을 한번 시험해보라고 합니다.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 신뢰하는 것을 흔들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검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마치 자기가 소유한 것처럼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는 지지 말고,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마귀는 예수가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면 십자가 없이도 그 일을 이루라고 속삭입니다. “왜 고통스런 십자가를 질 것이 무엇이냐? 나에게 절 한번만 하면 될 것인데”라고 속삭입니다. 마귀는 교활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거절당하였으면 물러갈 것인데, 끝까지 도전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자기에게 경배하기만 하면 다 준다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은 남은 자 7000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분을 섬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불신과 교만과 불순종은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11절 말씀에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이 우리에게 시험을 이기라고 하시면서 경계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려는 욕망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요소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를 이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려는데 두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 그 명령은 들리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너 잘 살기 바라지, 멋지게 살아야 해, 출세해, 네 친구 잘 사는 것 보라.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잘 살고 있어. 너도 잘 살아야지. 잘 살려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라. 하나님의 말씀은 못들은 척 하라”고 속삭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인생의 가장 큰 성공으로 알고, 자랑으로 고백하십시오. 말씀으로 무장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성령에 이끌려서 살아가야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을 앞세우면서 승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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