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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있는 영성 개발의 원리 (왕하 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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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는 영성 개발의 원리 (왕하 2:12~14)

30세에 목사가 된 카메론 페리 박사는 60세가 되기까지 3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그의 아내가 병들자 신유의 은사를 받기 위해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기도하면 예수께서 고쳐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카메론 페리 박사는 남들이 자는 시간에 하나님과 한 시간씩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4년 동안 잠들기 전 만큼은 철저히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그는 갑자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 그는 기쁨이 충만하여 간증하기를 성령의 능력을 받고 두 달 동안 전도한 것이, 능력 없이 30년 동안 전도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올렸다고 하였다. 이 땅에서 영적인 지도자로 살려면 그 무엇보다도 능력받는 것이 중요하다. 30년 허송 세월의 목회가 되지 않고 30년 허송 세월의 신앙 생활이 되지 않으려면 능력 주시는 하나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늘 우리는 엘리사가 능력의 사람이 되는 그 첫 출발의 자리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능력있는 성도를 꿈꾸면서도 그 능력있는 영성 개발이 어떻게 개발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영성 개발의 원리는 무엇일까?

첫째, 영성있는 지도자를 만나야 한다. (왕상19:19~21)

왕상19:19~21을 보면 엘리야는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에게 자기 겉옷을 던진다. 그래서 엘리사는 당대 최고의 지도자를 만났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 숭배자와 싸워 이긴 선지자를 만났다. 겉옷을 던져 주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로 나아간다. 엘리사가 만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보좌를 움직이는 하나님과 통하는 영성의 소유자였다. 하늘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말씀과 기도와 순종의 영성을 지닌 예언자였다. 엘리사가 능력 있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를 제대로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바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지도자로 만나야 한다. 그런데 만난다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니다.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하심이다. 따라서 만남의 축복을 위해 세 가지를 하자.

① 먼저 기도해야 하며 영성 있는 교회의 만남, 영성 있는 목회자의 만남, 영성 있는 성도와의 만남을 간구해야 한다.

② 집에서나 교회 안에서도 영성 향상에 관심을 가져라. 그래야 관심 있는 것이 눈에 띄 듯 영성 있는 만남이 주어진다.

③ 영성가들의 책을 읽으라. 거기서 영성 있는 지도자를 만나고 그들이 소개하는 최고의 지도자, 예수를 만난다.

 
둘째, 영성있는 지도자를 배우고 존경해야 한다. (왕하2:1~11)

엘리사는 새로운 장소로 옮겨가시는 선생님을 놓칠세라 한 걸음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따른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요단 강가를 건너서 육지로 가시는 엘리야를 쫓아간다. 마침내 그 선생님이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할 때 엘리사는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왕하2:12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아버지로 부른다. 그것도 “내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의 존경심은 이 “내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호칭 속에 담겨있다. 이 호칭은 스승을 넘어 가장 친밀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다. 영성이 개발되려면 존경하는 영성 지도자를 따라야 한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인기 있는 탤런트에게 줄을 서서 사인을 요구하며 따르지만 정작 영성있는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다. 또한 영성을 추구하더라도 자기 독단으로 영성을 개발하고 성숙시킬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 나보다 수준 높은 이에게 겸손히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이다. 배워야 한다. 엎드려야 한다. 기도, QT, 묵상, 전도, 헌금, 섬김을 배우라.

세계적인 예언 사역자인 릭 조이너 (Rick Joyner)는 영적 선배를 두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한국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부흥 운동에 대해 많은 덫을 설치해 놓았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안전한 해결책은 믿음의 선진들, 즉 신앙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메시지처럼 교회의 역사 속에서 부흥을 원한다면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미친 선배들, 지도자들을 배우며 존경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존경하는 것을 통해 영성의 모델들을 배워가기 때문이다.

감리교회 안에는 존경받을 영적 지도자들이 많다. 민족 운동가 전덕기, 부흥 운동가 이용도, 신학자 최병헌, 순교자 유관순 등 우리는 그들을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여기지 못해도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의 영적 유산을 이어 받으려고 해야 한다. 디모데와 디도는 바울을 아버지로 여겼다. 존경과 사랑을 담아 배우는 자세를 취하였다.

 
셋째, 영적인 유산을 내 것으로 삼으라. (왕하2:13)

엘리사는 자기의 옷을 찢었다. 능력의 사역을 갈망하는 엘리사는 무능력한 자기의 삶을 내 던졌다. 그리고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왔다.(왕하2:13)

그렇다. 엘리사는 선생님의 남겨놓고 간 유산을 붙잡았다. 선생님의 겉옷은 선지자란 신분의 옷이었다. 선지자로 살아온 능력의 옷이었다. 원수를 물리치고 우상을 몰아낸 거룩한 옷이었다. 바로 그 옷을 물려받아 내 것으로 삼았다. 옷은 신분이다.

이제 엘리사는 배운 만큼 일한다. 선생님의 선지자 사역을 이어가는 계승자다. 이제 선지자의 능력은 엘리사의 것으로 옮겨갔다. 엘리사에게로 이어지고 전이되었다. 이것이 Importation이다. 거룩한 유산의 전이다. 우리는 죄악된 유산을 물려받았다. 좋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본성적으로 배우지 않고도 죄성을 물려 받았다. 아, 우리의 삶이 그래서 피폐해진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들은 주님을 닮아가는 유산을 붙잡으라. 그 중에서 주님의 사역에서 보여주신 능력의 유산을 붙잡으라.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유산을 붙잡으라. 이는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받는 것이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거기서 주님의 목회가 재현되고 사도행전의 능력이 내 것으로 재현되어 나타난다. 영적인 유산을 내 것으로 삼고자 할 때 그 능력의 영성이 Importation되어 예언자로, 전도자로, 교회의 일군으로 설 수 있다. 능력은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본대로, 배운대로 시도하라. (왕하2:14)

요단강 언덕에 서 있는 엘리사는 왕하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라고 하였다. 이 모습은 엘리사가 선생님의 하시는 일을 본대로, 배운대로 해보는 시도이다. 그리고 위로부터 내려온 것을 받은 후의 시도이다. 능력을 구하였지만 과연 그가 물을 가를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것인지를 시도해 보는 것은 용기 중의 용기이다.

왕하2:8을 보라. 엘리사와 함께 엘리야가 요단 강가에 섰을 때의 이야기이다.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이 말씀의 장면과 똑같이 엘리사는 왕하2:14에서 건너온 요단강을 다시 돌아 건너가려고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본대로, 배운대로 시도하는 것이다.

영성이 개발되는 것은 영성의 대가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큰 사람, 큰 영성, 큰 나무의 살아가는 모습을 본보기로 삼으면 그도 그렇게 된다. 작은 사람, 작은 영성, 작은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본보기로 삼으면 그도 그렇게 된다.

알버트 슈바이처, 본보기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전부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를 보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를 흉내내느냐가 그의 성장의 사이즈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비록 내 하는 일이 남을 모방하는 것일지라도 본대로, 배운대로 시도하는 이가 될 때 영성이 나타나게 된다. 그 시도가 믿음이고 그 시도가 진정한 용기이다.

엘리사는 본대로, 배운대로 시도하였다. 능력을 구하고 능력을 가진 선생님을 존경하고 그 선생님의 유산을 내 것으로 붙잡은 엘리사는 과감하게 요단 강물을 내리쳤다. 그때 물이 갈라지고 확신과 기대의 몸부림대로 능력이 나타났다. 엘리사는 강을 건넜다. 승천하신 선생님이 건너시던 그 모습 그대로 요단강을 건넜다. 능력 목회, 능력있는 신앙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영적 대가와 만나고 그 말에서 배웠어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겉옷을 받았어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익두, 그는 사도행전을 읽다가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의 이야기와 만났다. 그는 그때부터 베드로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역사하실 하나님이라 믿고 길을 걸어가다가 앉은뱅이를 만났을 때 그는 달려가서 앉은뱅이를 향해 외친다. 손을 잡아 끌면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네게 주노니 일어나라.” 그는 자리에서 외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그러나 김익두는 그 담대한 믿음의 시도를 중단하지 않는다. 집회에 초대 받아 간 첫날부터 목이 비뚤어진 아주머니를 고치려고 시도하다 실패하고 도망을 치고 만다. 그러나 그 길로 산에 들어가 부르짖고 능력을 받아 내려온 김익두는 집회가 끝나는 금요일 저녁에 다시 내려와 그 아주머니에게 다시 치유의 선포를 한다. 그때 그 아주머니의 목이 회복되어 새 사람이 되었고 김익두의 목회 속에는 능력이 동반되었다. 그의 책 『이적명증』속에는 능력의 이야기가 가득하고 그가 부산진교회에서 1920년 5월 17일, 8개월만에 앉은뱅이가 되어 8년 동안 서지 못한 김두수를 일어나게 하여 이 이야기가 동아일보 58호에까지 실렸다. 능력을 구했으면 믿음으로 받은 줄 믿고 선포하며 시도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나의 실패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시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능력 있는 일군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자. 엘리사가 보여준 그 과정을 바라보며 영성을 개발하려는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하자. 집중력과 태도를 영성에 둔다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부어주기 원하는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역자, 능력 있는 성도로 사는 새로운 겉옷을 입혀주실 것이다.

더러운 귀신을 쫓겨 가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능력의 그 현장이 바로 오목천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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