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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향하여!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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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향하여! (행 8:26-40)

시작하는 말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소수의 성도들까지도 잔멸하려고 날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유대인들의 핍박은 성도들로 하여금 각처에서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박해로 말미암아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빌립이 광야로 부르심을 받아 준비된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자신을 특별한 방법으로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아프리카는 신음하고 있습니다. 기아와 질병으로, 살상과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동물같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땅들은 점점 더 사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민족 간의 갈등으로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과격파 이슬람이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과격파 이슬람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가나 “아크라(Accra)”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떤 선교보다, 어떤 성전건축보다 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영육 간에 깨어나서 인간다운, 하나님의 자녀다운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선교사는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특정한 지역을 위한 사명감이 투철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견디지 못합니다.

모래 한 알이 모여 큰 빌딩을 이룹니다. 물 한 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룹니다. 주일마다 드리는 선교 헌금이 모여서 가나의 “아크라”에 또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드디어 그 성전을 누구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헌당식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출발합니다.

또 헌당식을 위해 성도들이 정성껏 헌금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형편과 사정에 넘치는 헌금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반드시 선교의 열매를 크게 맺으리라 믿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대표하여 몇 사람이 다녀오려고 합니다. 단기 선교 대원들이 돈이 많아서 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관광이 주된 목적은 더 더욱 아닙니다. 여럿이 가서 현지인들을 만나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잔치를 베풀고, 헌당식 예배를 드리고, 메시지를 선포하고, 선물을 전달하여 영육 간에 위로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선교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뜻을 모아야 합니다.

1. 선교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고 명령하셨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갔습니다. 광야에 이르렀을 때 빌립은 한 사람을 보았고,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는 두 번째 지시를 받았습니다.

바로 이 순간 빌립은 성령이 지시하신 일이 무엇인지, 자기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빌립은 머뭇거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이 세대는 말세지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왔고, 복음이 더욱 힘 있게 전파되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욱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때입니다.

말세를 알리는 나팔들이 녹슬어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4:8).


2. 선교는 성령의 지시대로 해야합니다. 

사도행전은 선교의 역사인 동시에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은 사도 바울 전도대의 움직임을 일일이 간섭하셨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16:6)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유럽의 마케도니아”에서 복음을 기다리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께서 빌립에게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는 이상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선교와 전도는 사람이 많은 곳을 찾는 것이 대체적인 원리인데 성령께서는 광야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때로 성령의 지시를 좇는 사람들이 세인들의 조소거리가 되곤 합니다. 이러한 세인들의 조롱은 그들이 갈 바를 모르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알지 못하며, 더 크게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히 11:8 ; 시 37:23).

놀라운 기적의 역사와 하늘의 축복은 자신의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데서 나옵니다.
 

3. 선교는 영혼구원이 목적입니다. 

빌립이 광야에서 만난 사람은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였습니다. 내시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권세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경우처럼 자신의 부와 권세 때문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구약의 율법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율법이 요구하는 예배의 행위를 위해 먼 예루살렘까지 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복음의 전모를 밝히 알면서도 하나의 형식에 그치는 무미건조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헛된 예물에 격노하셨고 가증한 예배를 싫어하셨습니다(호 9:4 ; 말 8-10).

하나님께서는 간다게 여왕의 내시가 드린 정성스러운 예배를 살펴보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예배가 드려지고 있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소수의 성도만이 하나님께 발견될 것입니다.

간다게 여왕의 내시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말씀의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랍비들이나, 율법사들은 오신 메시야에 대해서 소경 된 인도자들이었으므로 내시가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복음을 깨닫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시는 지도하는 자가 없는 외로운 가운데서도 말씀을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계시하며 성도를 지도하는 최고의 랍비입니다. 복음은 형식이나 철학, 변론이 아닙니다. 오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 식인종들에게 선교하기 위하여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식인종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선교사의 손에는 장총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선교의 대상자들을 향해 총을 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총을 쏜다면 다시는 그들에게 선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선교사는 죽음을 택했습니다. 식인종들은 선교사의 총에 자기들을 죽일 수 있는 총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일개 부족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는 선교일화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인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간다게 여왕의 내시는 권세와 부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결코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빌립을 청하여” 기꺼이 도움받기를 원했습니다.  빌립은 병거로 올라가서 내시에게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 구원을 받았습니다.


4. 선교는 어디든지 가야합니다. 

에티오피아의 내시는 빌립에게 복음을 받았습니다. 흐르는 물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기쁨으로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아프리카의 왕궁에서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끝내는 기독교가 에티오피아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나는 남대서양의 중부 기니아 만에 위치한 가난한 나라입니다. 서쪽에 위치한  가나는 면적 238,537㎢이며 인구는 약 21,500,000명입니다.  그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날입니다. 언어는  영어(공용어, 70%), 튀어(부족어), 판티어(부족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통화는 세디(cedi, ¢)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끝맺는 말

어떤 인도 선교사가 인도선교를 하고 귀국하여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선교 보고를 듣고 난 후 한 사람이 일어나 “내가 인도에서 오래 살았지만 기독교인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선교 보고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당신 인도에서 호랑이를 보았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나는 인도에서 호랑이를 만나 보았을 뿐 아니라 호랑이를 여러 마리 잡아서 가죽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인도 선교사는 “나는 인도에서 호랑이를 한 마리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대상자들은 수없이 만나 보았고 선교의 열매도 많이 맺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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