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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증인의 삶(골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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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삶(골 4:2-6)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위한 기준과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생활에 대한 문제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삶 가운데서 예수님은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 22:1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5-4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들이 진실되고, 십자가에 달리심을 증거하는 증인들입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대로 진실만을 진술하는 것이 증인입니다.
법정 증인선서에 보면 법정에 출두한 증인들은 아래와 같이 선서를 합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것이 적발될 시에는 5년이하의 징역과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또한 그 위증이 형사상 다른 사람을 모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됩니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잠 14:5]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잠 21:28]
거짓말을 할 때는 웬지 얼굴이 벌개지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하게 됩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가끔씩은 거짓말을 하지만요.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 처음에는 ‘너 이거 했지’라고 물어보면 약간 망설이면서 ‘아니’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한 번더 ‘니가 이거 했잖아’라고 묻게 되면 ‘응’이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었다면 우리는 힘이 있습니다.
증인의 삶이라는 것은 힘이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복음에 대한 진실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힘 있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인은 해방당시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955년 60만, 1965년 120만, 1975년 350만, 1985년 800만, 1995년 1000만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는 한국 땅에 많은 사회적 기여를 했습니다.
일제 시대 수난 시대 때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민족 지도자가 되어 신사참배 거부하고,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워 민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정신적 근대화와 윤리 가치 고양하고 인권과 민주적 가치 고양하였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장로였던 이승만, 승동교회 전도사였던 여운영, 김구 등 당시 이름 있는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인이었고 건국 준비위원 지방 위원장들이 대부분이 목사 아니면 장로였습니다.

비록 적은 기독교인의 숫자였지만, 증인으로서 힘이 있었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갖고 진실한 증언을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고, 기독교의 큰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독교는 매일 같이 신세 타령입니다. 기독교 신문을 보면 언제나 줄어드는 기독교인에 대한 걱정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국민일보를 보니까 유럽에는 지금 이슬람교가 엄청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들인 유럽에서도 앞으로 20년 후면 국민의 10%가 무슬림이 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무슬림들이 성장하고 있는가? 그들은 철저합니다. 이런 얘기하면 청년들이 별로 안 좋아 하던데요. 제가 성지순례를 갔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터키를 갔었는데요 터키는 원래 무슬림이고, 이스라엘에도 무슬림들이 반 정도가 됩니다.버스타고 지나가다가 혹은 길가를 걷다가 보면 이슬람교인들은 하루에 5번 기도시간만 되면 자신들의 성전을 찾아갑니다. 혹 성전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갈 경우에는 그 자리에 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기도시간이 끝날 때 까지 기도합니다. 지금이 이슬람교의 라마단 기간입니다. 해가 뜨고 나서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하는 기간입니다. 그들은 비록 형식적이라고 주변에서는 욕할지 몰라도 철저하게 지킵니다. 일례로 해질녘에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이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음식을 먹었는데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가니까 해가 다시 보이는 것입니다. 먹던 것을 다 오바이트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형식적이라고 욕할지는 모르지만 그정도로 철저하게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지키려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의 숫자가 정점에 이르렀다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전도를 강조하고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전도 프로그램 하나도 없던 시절에도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진돗개, 고구마, 모유 등등 수 많은 전도집회와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줄어드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지 않으며, 우리의 삶이 진실된 제자의 삶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증인으로서 힘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힘을 우리의 이웃들이 믿지않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힘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십자가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그 힘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증인의 삶에 걸 맞지 않은 힘 없는 삶, 즉 확신 없는 삶은 우리를 바라보는 불신자들에게도 확신이라는 것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1. 기도
여러분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아니면 가장 힘이 세신 분은 그 손으로 얼마만큼의 힘을 내실 수 있습니까? 쌀 한가마니 정도 들으실까요? 한 가마니를 들 수 있는 힘 좋은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두 손으로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는 그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두손이 모이고 기도하는 손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손이 될 수 있고, 큰 능력을 발휘하는 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일은 바로 기도하는 일임을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2-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 일에 앞서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전도 부흥 성회를 앞두고 목사님께서 하루 한끼 금식하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의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기도로 준비되어 있지 아니하면 전도의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전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구원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감사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세요? 똑같이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일정한 시간에 노동을 하고 일정한 시간에 밥을 먹고,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눕습니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감사하면서 생활하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수도원으로 만들고 계십니까? 아니면 감옥으로 만들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 2절에 보시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말씀하십니다. 오늘 새벽에 목사님께서 기도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 때는 성령이 함께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삶은 잠들어 있는 삶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삶은 감옥과도 같은 삶입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이 무슨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감옥에 사는 사람이 감옥으로 누구를 전도하겠습니까?
감사함으로 깨어 있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천국을 만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지혜
한 광고에 보면 이런 광고가 있더라구요. 결혼 전에는 ‘섹쉬한 여자가 좋아’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에는 ‘지혜로운 여자가 좋아’입니다.
성경에서는 인생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를 뜻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지혜로운 삶은 우리의 삶에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마지막일 것처럼 흥청망청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지막에는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대하여 그 기회를 헛되이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 속에서 똑같이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 기회를 선용하여 ‘그리스도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지혜로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4. 고른 말
6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하라는 것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이 고르게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금을 넣지 않으면 싱거워서 못 먹고, 많이 넣으면 짜서 못 먹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복음에 대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어도 안 되고, 은혜롭지 못한 말들을 너무 많이 쏟아놓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5. 자신을 다스리고 베풀라.
자신을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엊그제 텔레비전을 보는데 성형수술에 1억원을 쓴 여자가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얼굴을 봤으면 좋겠는데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몸매를 보니까 완전히 장작때기 하나를 가져다 놓은 것 처럼 삐쩍 말랐습니다. 그런데도 살이 찐 것 같다고 다이어트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직도 고치고 싶은 부분이 좀 더 있어요’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성형을 통해서 자신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를 자신을 가꾸기를 원합니다. 물론 외형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외형보다는 우리의 내면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할지니”
여기에서 절제하다라는 단어를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exercise self-control 즉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기기를 원하는 자마다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올림픽 경기를 보면 마라톤 같은 경우는 2시간 이상을 달려야 승부가 나기도 하지만, 100미터 달리기 같은 경우는 10초도 안되어서 승부가 결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 10초의 승부를 위해서 보통의 선수들은 10년 이상의 자기 절제가 필요합니다. 저희 형도 중학교때 태권도 선수 였습니다. 지금은 4단만 따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합에 참여하기 전이면 늘 계체랑을 위해서 물도 안 마십니다. 어느 날 저녁에 제가 귤을 먹고 있는데 형이 제가 먹는 귤을 먹고 싶은 듯 쳐다보더라구요. 그래서 ‘먹고 싶은먹 먹으면 되지 왜 쳐다만 봐’라고 했더니 ‘내일 시합니라 안되’라고 말하더군요. 중학생들의 단순한 도대회 일 뿐인데도 이렇게 철저하게 절제합니다.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은 10년 이상을 자신을 다스림으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인생이 승리의 인생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평생을 통해 절제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게 다스려진 모습, 가꿔진 모습을 보일 때 전도는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성공적으로 다스린 후 나눠 주십시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베풀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 6:38]

미국에 가면 필립스 아카데미라는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미국 최대의 명문 고등학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고등학교나 민사고 정도 되는 학교 일 것 같습니다. 이 학교 출신 학생들 중에 미국의 유명한 인사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35명 중에 한 명꼴로 미국 명인 사전에 등록이 될 정도랍니다. 그런데 이학교가 이렇게 명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의 건학 이념에 있습니다.
이 학교의 건학이념은 ‘Not for self'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이라는 뜻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이웃들을 위해서이고, 나라를 위해서이고, 교회를 위해서입니다.
초대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 수 있었던 원인도 바로 이 베품에 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그 이후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사용되지 않아도 전혀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베품이 초대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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