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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의 의 (롬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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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과 그의 의 (롬 4:1~3)

  평소에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채소 농사를 짓는 분들이 애써 경작한 채소를 수확하지 않고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최근 농촌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에게 설명을 듣고 나서 비로소 그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은 씨를 뿌리고 싹이 난 후 좋은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갈아엎고 새로 씨를 뿌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뿌린 씨가 아까워서 쳐다보고만 있으면 그 해 농사는 아주 망쳐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진짜 문제라는 말입니다. 비록 과거의 실수가 쓰라린 아픔을 안겨 줬을지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무엇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그는 그 어떤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잘못도 많았습니다.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얼마든지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 때문에 찔리셨고 우리 때문에 상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히 나을 수 있습니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극히 제한적인 생각 속에 하나님의 큰 뜻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은 얼마든지 넣을 수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주님이 당하신 그 고통 속에 우리의 작은 고통쯤은 얼마든지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까? 해결되지 않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혹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죽음이라는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고통 속에 우리의 아픔 따위는 다 녹여 버릴 수 있습니다. 지난 과거의 아픈 상처가 현재의 삶을 망치도록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고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를 마음껏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자리를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주소로 삶의 자리를 옮길 때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과거는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거기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삶의 주소는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입니까? 우리도 그 옛날 사도 바울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현주소를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서 한밤중에 이십 년 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면 그 집에서 문을 열어 주겠습니까? 그 집은 과거입니다. 옛 집에 가면 환영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주소로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집으로 가야 환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은 아주 유명한 학교입니다. 그 대학은 철도 사업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번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낸 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가 세운 학교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자 그는 모든 의욕을 잃을 정도로 상심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내 아들은 갔지만 대신 캘리포니아의 많은 젊은이들을 내 아들처럼 잘 키워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그는 스탠퍼드 대학을 세웠습니다.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많은 젊은이들을 새 아들들로 키우는 자리로 옮겼기 때문에 그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가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육체로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그의 믿음을 따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후손,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다는 것은 눈을 뜨는 수술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불신의 눈, 부정의 눈, 미움의 눈을 버리고 믿음의 눈, 긍정의 눈, 사랑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은혜의 복음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도 은혜의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율법적인 고집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적인 생각을 복음적인 생각으로 바꾸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난 후에도 참으로 엉뚱하게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요한복음 21장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다른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러나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 그 바닷가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없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무려 백쉰세 마리나 잡혔습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오르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한 마디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게 제자들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조반을 먹은 후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실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주어진 기회를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지금도 부르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만 진정한 의미의 회개와 그에 다른 온전한 믿음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계절을 좋아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봄을 좋아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봄을 좋아합니까? 왜냐 하면 봄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봄은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 즉 희망의 계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이 힘들고 어려웠습니까? 더 이상 참고 견디기 어렵습니까? 믿음의 눈을 뜨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 옛날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세상을 이겼노라고 선포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지금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마침내 영광의 승리를 쟁취하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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