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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덕적 사회, 아름다운 국민 (신 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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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사회, 아름다운 국민 (신8:1-10)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고 살며 거기서 번성하고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미래에 약속의 땅에서 누릴 복된 삶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들이 사십 년간 광야에서 겪은 고된 삶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사십 년간 계속해서 광야 길을 걸어야 했던 그들의 삶은 의식주의 여건이 지극히 열악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떡도 포도주도 마실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신29:6).

그런데 사십 년간 광야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굶어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셔서 온 백성이 필요한 만큼 먹을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들은 사십 년간 광야의 길을 걸었지만 그들의 의복이 해지는 일도 없었습니다(본문 4절). 발이 부르트는 백성도 없었습니다(본문 4절).

신29:5에서는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셔서 신발이 해지지 않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광야 길을 행할 수 있는 체력도 공급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온전한 돌보심으로 그 열악한 삶의 여건을 기적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시며 앞으로의 가나안에서의 복된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고(본문 3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가 명하신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본문 1, 6절).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요점은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복된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씀이 바로 3절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사십 일간 금식하시고는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 그 시험을 물리치시며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꼭 떡을 먹어야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만나 같은 것을 먹고도 사는 수가 있다. 이 만나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진 특별한 양식이다.”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또 “먹을 것이 있다고 사람이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었지만 각자가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그 만나로 양식을 삼는 규칙 몇 가지를 정해주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규칙의 첫째는 각 사람이 하루하루 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출16:16).
둘째는 누구든지 그날 거둔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것입니다(출16:19).
셋째는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말고 그 전날 이틀분의 만나를 거두었다가 그것으로 안식일에 먹으라는 것입니다(출16:29). 이 명령을 어기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둔 만나에는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출16:20). 그러나 여섯째 날에 안식일을 위해 미리 거둔 만나는 그 다음날까지 두었어도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출16:24). 또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간 사람들은 그것을 얻지 못했습니다(출16:27).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서는 만나를 얻을 수도 그것으로 양식을 삼을 수도 없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깨워준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은 그 역사적 교훈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사람이 떡을 먹고 살지만 떡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없던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떡을 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라”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또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특별한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 그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마귀가 원한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참 사람으로서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살게 하셨음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저 육신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참 인간의 삶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그가 말씀하신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또 우리에게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의 명령을 잘 지키는 데 관심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이 말씀은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영적 존재임을 깨닫고 영적 존재답게 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취해야 할 양식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의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영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육의 양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의 양식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질적으로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되 영적 삶을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영적인 삶은 날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말씀 가운데 “모든 말씀으로”라고 한 것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좋은 대로 취사선택함이 없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 모든 계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삶을 판단하고 지시하게 해야지 우리의 사고와 판단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취사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신 말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 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셨는데, 그것은 그런 시련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길이고 번성하는 길이며(본문 1절) 아무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본문 9-10절).

광야 길은 힘든 길이고 거기서 사람이 스스로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남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다 해결하여주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기를 배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광야 길의 시련을 맛보게 하신 것은 그들을 위한 교육적 배려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과정에도 광야 길의 시련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교육적 배려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광야 길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다 보살피시며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의 문제를 책임지시며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적인 삶을 살기에 골몰하지 말고 영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비록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사람이 단순히 육신의 떡을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할 존재가 아님을 알고 어떤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모든 말씀의 핵심요점이 들어 있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두 돌판에 씌어졌는데 하나님을 향해 지켜야 할 계명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로 나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인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주로 “~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으로서의 도덕적 계명들입니다. 그러나 그 계명들을 주신 하나님의 참 뜻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도덕적 계명들이 차갑고 엄한 계명으로 굳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지만 계명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을 도덕적인 사람 되게 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오늘은 나라와 민족을 또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삼일절 기념주일이며, 내일은 이 나라의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입니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신조어가 MB노믹스입니다. MB는 다 아는 대로 새 대통령의 이름의 첫 글자를 영문으로 표기한 약칭입니다. 약칭이 DJ인 대통령의 시절에는 그의 경제이론과 정책을 가리키는 DJ노믹스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 것을 기억합니다.

MB노믹스는 새 대통령의 경제이론과 정책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이제는 MB노믹스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MB노믹스의 시대가 열리는 요즈음 주로 들리는 것이 “경제살리기”와 “실용성”이라는 말입니다.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든 아니든 국민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이 온통 “경제살리기”인 것 같습니다. 또 새 대통령과 그 진영의 사람들이 국민에게 강조하는 것이 오직 “실용성”인 것 같습니다. “경제살리기”는 필요하고 “실용성”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MB노믹스가 그저 물질적 성장밖에 모르고 실용성만을 찾는 경제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거운동기간 새 대통령 진영에서 내건 슬로건이 있습니다. 747이라는 것입니다. 즉 연 7% 경제성장과 4만불 국민개인소득달성과 7대 경제대국에 합류하는 것을 공약하는 구호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그저 돈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MB노믹스가 Money밖에 모르고 Business나 building밖에 모르는 경제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는 MB노믹스의 M은 Money에 앞서 Morailty를, B는 Business나 Building보다 Beauty를 추구하는 경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국민을 닦달하면 국민개인소득 2만불까지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국민이 먹고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국민으로 머물 수는 없습니다.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개인소득이 4만불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4만불 이상의 나라가 되려면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도덕적 사회, Moral society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회가 이룩한 부가 아름답게 보이고 그 부를 이룩한 국민이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새 대통령으로 하여금 우리 사회를 Moral society로 만들고 우리 국민을 Beautiful people 되게 하는 MB노믹스를 주창하고 추구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가 살아나고 나라가 부강하게 되더라도 우리 국민이 경제동물이나 Ugly Korean으로 불리지 않고 Beautiful Korean이라 일컬어지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그런 대통령이 되기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몫입니다. 유치한 국민이 유치한 대통령 좋아하고 어리석은 국민이 어리석은 대통령 만듭니다. 부패한 국민이 부패한 대통령 낳으며, 불의한 국민이 불의한 대통령 뽑습니다. 반면 정의로운 국민이 정의로운 대통령 세우고 지혜로운 국민이 지혜로운 대통령 빚어냅니다. 대통령이 품위 없는 대통령이었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국민이 품위 없는 국민이었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도덕성이고 뭐고 경제만 살려놓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국민은 여전히 품위 없는 국민입니다. 국민이 그렇다면 새 대통령도 또 하나의 품위 없는 대통령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품위도 되찾고 지혜로운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기 이전에 정직하고 도덕적인 사회 만들 것을 주문하며 부자 국민 되게 해주기를 바라기에 앞서 아름다운 국민 되게 해줄 것을 당부할 줄 아는 성숙한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과 온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도덕적인 사회를 이루고 아름다운 국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저 Money와 Business 또는 Building밖에 모르는 MB노믹스는 더 이상 우리나라와 국민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Moral society를 이루며 Beautiful people 되기를 추구하는 MB노믹스만이 이 새 시대에 우리의 대안입니다. 도덕적 사회를 만들고 아름다운 국민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새롭게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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