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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 한 알의 꿈 (막 4: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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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의 꿈 (막 4:30∼32)

어느 목사님 댁에는 '할렐루야!' 하고 인사를 하면 상대방은 '아멘'하는 식으로 대답을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이 목사님 댁에서 앵무새를 길렀는데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였습니다.  누가 목사님 댁 현관에 들어서면서 '할렐루야' 하고 인사를 하면 앵무새는 쉴 새 없이 '할렐루야'와 '아멘'을 반복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칭찬을 하고 감탄하면서 그 앵무새를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을 몹시 부러워하던 장로님이 하루는 자기가 기르던 앵무새와 목사님 앵무새를 함께 두면 그 말을 배울 것 같아서 앵무새를 일주일만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이 앵무새가 목사님 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사모님이 일주일 정도 외박하고 돌아온 앵무새를 아주 반갑게 맞으면서 '할렐루야' 하고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앵무새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야! 이 새끼야!  뭐하고 이제 오는 거야?  꺼져 버려!"

사랑하는 여러분,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내가 한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 들으신 그대로를 나에게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As surel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확실히', '틀림없이', '반드시'.  그러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반드시, 틀림없이 내가 너희에게 행한다."  두렵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평소에 말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온유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하라고 할 때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한 말을 하나님께서 낱낱이 다 듣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 느끼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금년 들어서 저는 계속해서 꿈과 비전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꿈과 비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합니다.  꿈을 꾸십시오.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그 꿈과 비전을 세상에 선포하십시오.  기왕이면 믿음으로 허풍을 크게 떨고 다니십시오.  허풍을 떨다 보면 허풍쟁이가 되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하게 되기 때문에 무엇인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허풍을 잘 떨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꿈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창세기 37장 5절에 보면,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라고 했고, 9절에 보면,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나깨나 꿈 이야기 밖에 없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나는 존귀한 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가 나에게 절하게 될 것이다.'  이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허풍으로 들었습니다.  그의 부모도 허풍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선포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꿈대로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진실하고 정직해야 됩니다.  그러나 꿈을 선포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허풍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선포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는 입으로 선포해야 됩니다.
"여리고야, 무너져라!  홍해야, 갈라져라!  산아, 무너져라!"

선포하고 눈으로 보며 행동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허풍이라도 쳐 놓으십시오.  쳐 놓으면 기도가 나옵니다.  쳐 놓으면 힘씀과 애씀이 나옵니다.  아무 것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속에 나타나는 믿음의 역사를 선포하거나 시인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꿈을 꾸십시오.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꿈과 비전은 우리 신앙의 내용이고 핵심입니다.  꿈을 공유하게 하는 최종 작업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꿈과 비전을 붙잡아야 합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통하는 비밀 통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길에서 받은 모든 복은 믿음의 비전이 남긴 자국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음의 길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을 향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그렇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귀한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됩니다.  상급 받는 믿음을 얻는 일에 삶의 우선 순위를 두고 피 터지게 싸워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복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일어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됩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재해 있는 자기 비전과의 피나는 싸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이 없는 생명은 통제가 불가능해집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방자해져서 스스로 통제 능력을 잃고 맙니다.  우리는 자신을 관리하는 슬기도 필요합니다.  가정을 관리하는 슬기도 필요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관리하는 슬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꿈과 비전입니다.  결국은 그 속에 생동하는 꿈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욕심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거룩한 꿈을 공유하는 일에 덤벼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덤벼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비전에 같이 덤벼들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찬양을 하면서, 기도를 드리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서 성령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이 보다 분명하게 그려지고 보여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서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 시대가 어두울수록, 시대가 고통스러울수록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명의 제자를 부르셨을 때 예수님은 단순히 이들을 제자로 써먹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꿈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서 그 시대를 바꾸었으면 좋겠다.  주님은 열 두 명에게 인류 역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제일 먼저 하신 이야기가 꿈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 중의 한 토막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소위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작은 겨자씨 하나를 심었습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하나.  그런데 그 겨자씨는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나물이 됩니다.  드디어 나물 보다 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가지를 펼치게 되고, 펼쳐진 가지를 가진 울창한 나무가 되었을 때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짖고, 그래서 이 나무는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겨자씨 한 알 속에 들어있는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대하고 싶었던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이 그 시대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될 것을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오늘 이 시대에 제자로 부르셨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실까요?
우리 주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어떤 꿈을 기대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이 어둠의 시대에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위대한 교훈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쓰시는 그런 꿈을 펼치는 사람이 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작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인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작다는 현실, 고통스럽다는 오늘의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것은 반드시 시련이라는 과정을 겪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는 굉장히 큰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최고의 슈퍼스타가 있었습니다.  그 슈퍼스타가 누구였겠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 그는 그 시대의 슈퍼스타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치고 이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각처에서, 각 지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사람의 설교를 듣고,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두려워했던 헤롯왕이었습니다.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례 요한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내 뒤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도대체 이 위대한 슈퍼스타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다니, 이 위대한 슈퍼스타가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 못할 사람이 있다니, 그가 누구란 말인가?

드디어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역사의 무대 뒤로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까지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들은 무언가 굉장히 큰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봐야 별로 큰 사건이 발생하지를 않습니다.  몇 건의 작은 기적을 행하기는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때문에 오히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해 보았지만 별로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똑같은 겨자씨 한 알의 비유 사건을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이 사건 직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적은 숫자 밖에는 따라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 일단의 무리들,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왜소했습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와 핍박 앞에 부딪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슨 큰 사건이 있겠느냐?
내가 이 분에게서 무슨 기대를 걸어볼 것이 있겠느냐?

제자들은 패배주의와 비관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입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겨자씨는 자라난다.  그런데 그 겨자씨는 아주 작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작다는 현실을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어려움의 시대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이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고 이 작은 것 속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명의 제자들을 모아 놓고, 비관주의와 절망 속에 빠져 있는 한줌의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의 꿈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과정을 거친다.  한꺼번에 어느 날 갑자기 커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예수님은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봉독한 본문 앞에 있는 26절부터 29절까지를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 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보십시오.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선행하는 비유 속에서 씨가 자라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처음에는 싹이다.  그 다음에는 이삭이다.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우리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27절에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그 동안에 자라나는 것이다.  과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인정하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순간에 선진국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한 순간에 우리 나라가, 그러다가 깨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세월 속에서 우리는 IMF라는 뼈아픈 고난의 역사를 감내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의 젊은 세대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우선 그들은 똑똑합니다.  유능합니다.  유망합니다.  개성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실망스러운 것은 너무 쉽게 포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근성이 없습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쓰러지고 맙니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와 같습니다.

그러나 기성세대, 우리의 부모님들은 좀 많이 알지 못하지만 6·25를 겪는 가운데 고난을 알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개성이 약해도 인내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이 결코 나쁜 것이라고 만은 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고난 그 자체를 바라보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고난 뒤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고난을 잘 견딜 수만 있다면 소중한 것을 배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 힘, 진정 우리가 이 고난을 능동적으로 잘 처리하고 이긴다면 우리는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작은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늘 일시적으로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고난의 과정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작고 고난에 찬 현실, 이것은 위대한 일의 시작일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쓰시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이 작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단순히 작은 것의 중요성만을 가르치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단순히 작은 것을 대표하려는 의도에서였다면 겨자씨 말고도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다른 작은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령, 모래알도 작습니다.  먼지는 더더욱 작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굳이 작은 겨자씨를 비유로 선택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겨자씨가 모래하고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라납니다.  자라난다고 하는 것, 그것은 생명 때문입니다.  생명력,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겨자씨가 자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비밀은 바로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자라납니다.  처음에 아주 작은 겨자씨, 그것도 겨우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아주 작은 것입니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겨자씨는 그 크기가 직경 1mm, 무게가 1mg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씨입니다.  이렇게 작은 겨자씨, 눈에 뛸까 말까 한 작은 겨자씨, 그러나 그렇게 작은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종자에 따라서는 3m 이상도 자라납니다.  거기에 가지를 펼치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안식처를 만드는 이 거대한 나무에로의 성장….  눈에 뛸까 말까 한 이 작은 겨자씨,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대체 주님께서는 이 작은 겨자씨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시려는 것입니까?  겨자씨의 생명력, 주님께서는 그것을 복음의 생명력에 비유하고 싶어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복음의 생명력.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가 복음이십니다.  예수가 생명이십니다.  예수가 능력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런 불평을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따라 다녀 봤자, 예수 밖에 없구나'  뭐 별로 다른 것이 생기는 것도 없지 않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생각은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어 봤자 별 수 있나?'
'교회에 나와봤자 수지 맞는 게 있느냐?'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과소 평가하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골로새서를 보면, 골로새서에서 한결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모든 것이다"  "예수가 충만이시다.  예수가 모든 것이 되신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내 인생에 최대의 자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내 인생의 꿈이십니다.  소망이십니다.  반석이요, 능력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나의 전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붙들고 있으면 그는 세상 전부를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놓아버리면 그는 세상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늘 함께 하십시오.  주님만 함께 계시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은 우리를 통해서 벌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석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세계 경제가 적신호가 켜졌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실물 경제도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전부가 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함께 외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오늘 비록 현실이 고독하지만,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현실 저 건너편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내일을 준비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내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좌절할까요?  문제는 주를 믿는 이 믿음이 부족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간질병에 걸린 어린 아이 하나를 고치려고 하다가 고치지를 못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님, 우리가 어찌하여 이 어린아이를 도울 수가 없었습니까?  고칠 수가 없었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너희의 믿음이 적다"
믿음이 아주 없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어떤 믿음이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그래도 예수님을 붙잡고, 그래도 예수님을 찬송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믿음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겨라 해도 옮길 것이요"  문제는 이 믿음이 부족합니다.  주를 향한 믿음이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은 불투명하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그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은 나의 주님, 그 주님을 신뢰합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이 주님을 통하여 미래를 보는 눈을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열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위대한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의 꿈을 꾸는 사람들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에 주님이 쓰실 만한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우리의 성장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성장이, 우리의 변화가 지금은 작지만 그러나 우리는 자라날 것입니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다시 재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날 내 삶은 우리의 이웃들에게 반드시 축복이 되리라.  이것을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난의 시기를 넘어설 때 나는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는 이웃들에게 축복을 나누어주는 그런 민족, 그리고 그런 가정, 그런 교회가 될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환상이 있어야 됩니다.

저에게도 우리 교회를 향한 환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장하여 이 지역 사회를 아름답게 섬길 수 있는 교회, 개척교회를 섬기느라 힘들고 지친 이 땅의 목회자들을 한 번 제대로 섬길 수 있는 교회.  우리에게는 이런 기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의 꿈입니다.

작은 겨자씨의 꿈, 내가 자라나 울창한 나무가 될 때, 가지를 펼칠 때 새들은 날아오리라.  그들에게 나는 안식처를 제공하리라.  새들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리라.  내 인생들에게,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노래를 주고, 꿈을 주고, 그리고 축복을 나누는 인생, 나는 그런 인생을 기어이 살고야 말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기대를 바라보십시다.  이 기대를 가지십시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의 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자씨 한 알의 꿈!  이 꿈 속에서 우리들의 가정의 꿈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꿈 속에서 우리 교회의 꿈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꿈 속에서 우리 민족의 꿈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 작은 겨자씨 한 알의 꿈을 꾸고 있다면, 주님 안에서 비전을 붙들고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견디겠습니다.
주님, 붙들겠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면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꿈을 꿀 것입니다.
그리고 기어이 가지를 펼치고 새들에게 노래를 제공하는 위대한 인생의 꿈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 나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우리와 함께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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