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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든 일도 가볍게 하는 사람 (고전 1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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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도 가볍게 하는 사람 (고린도전서 15:10~11)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은 소화제 먹고 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버스를 탔는데 그만 졸다가 한코스 더 가는 바람에 버스가 사고나서 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늘 교회 왔다가 은혜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은혜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억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인사 합시다. 은혜를 받읍시다. 억울한 일 당하지 맙시다. 다 잘 될 것입니다. )

  가벼운 일도 무척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힘든 일도 아주 가볍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쉬운 일도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주 어려운 일도 쉽게 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하면서 많이 수고하고서도 전혀 수고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 학기를 앞두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이나 모두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대한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좋은 환경이 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진학을 한 사람도 있겠으나 또 다시 공부를 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을 지원하고 지켜보야할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처음부터 내가 더 수고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야하고 남보다 한 발자욱만이라도 더 앞서 걷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더 수고할 때 힘에 겹도록 수고하면 안됩니다. 힘들지 않게 수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힘든 일을 가볍게 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결국 그 일을 감당하고 난 후에는 남는게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지치고 병들고 인간관계는 더 복잡하게 꼬이고 갈등은 더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힘든 일도 가볍게 하는 사람, 어려운 일도 쉽게 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는 가벼운 일은 더 가볍게 하고 힘들 힘든 일도 가볍게 하는 비결입니다. 쉬운 일은 더 쉽게 하고, 어려운 일도 쉽게 하는 비결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인생을 이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가벼운 일은 더 가볍게 하고,힘든 일도 아주 가볍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쉬운 일은 더 쉽게 하고 어려운 일도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1. 은혜로 하면 힘든 일도 가볍고 어려운 일도 쉽습니다.

  은혜로 해야 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이 은혜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인데 그 뜻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쁨이란 뜻입니다. 구원의 기쁨이 바로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샘솟으며 충만해집니다. 둘째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은혜로 한다는 것은 내가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나에게도 일할 기회가 주어져서 일한다고 여기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매력이란 뜻이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여기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은근하게 매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잃어버리면 신나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같이 일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51:12을 통하여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은혜가 사라지니, 자원하는 심령도 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셔서 자원하는 심령이 발동되도록 해 달라고 울면서 간구한 것입니다.
  내가 불안한 이유, 내가 떨리는 이유, 내가 겁나는 이유, 괴로운 이유, 초조한 이유 무두가 다 이 구원의 기쁨인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잃고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가벼운 일도 아무리 쉬운 일도 결코 가볍거나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힘듭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물붓듯이 하시고 기름붓듯이 하셔서 어려운 일도, 힘든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쉽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가볍고 쉽게 하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이 은혜의 파도를 타는 것입니다.

  사냥개는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과 영리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커다란 멧돼지나 곰이나 사자와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힘든일이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냥개가 어렵지 않게 멧돼지나 곰을 몰아붙입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자신의 뒤에서 옆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따라오고 있는 주인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2. 은혜는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사모하는 영혼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약 4: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여기 '시기'한다는 말은 '뜨겁다'는 말로 불 붙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성령의 소원을 품고 하나님을 사모하되 견딜 수 없을 만큼 불붙는 마음을 갖길 바랍니다.

  불붙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성경을 읽는데도 간절합니다. 설교를 듣는데도 간절합니다. 기도할 때도 간절합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열정이 있으면 은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일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시편 42:1을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했고, 시107:9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라" 했습니다. 또 대하16:9에도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더 겸손해졌습니다. 공로가 많아지고 의가 높아질수록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습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는 주후 56년경에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고전 15:8)라고 했고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지로다"(고전 15:9)라고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고전 15:10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이만하면 으시댈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으시대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영적으로 이룬 일이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철저히 알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6년 후인 주후 62년에 쓴 에베소서 3:8에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몇해전에는 "지극히 작은 사도"라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은 기독교 신앙과 리더십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주님을 오래 섬길수록 자신을 더 작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겸손은 점점 자랐습니다.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인 주후 64년경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두통 보냅니다. 그 편지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했습니다. 여기서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다"라고 하지도 않았고,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다"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한 것입니다.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연륜이 쌓일수록,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더욱 더 자신에 대해서 작아지고 낮아지고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돋보이고 높여지고 빛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약 4:6~7에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하셨고 벧전 5:5~6절에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나 베드로 사도 역시 언제나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아직도 철이 없는 애와 같습니다. 한참 모자랍니다."라는 생각을 늘 갖고 겸손해야 합니다. 소금은 녹아야 간이 베고 맛을 냅니다. 땅은 갈아엎어야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은 겸손하게 낮아져야 은혜를 받습니다. 

  자기는 이처럼 낮추고 동역자 자랑, 형제자매 자랑, 교회자랑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가 입혀지는 것입니다.

사29:19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하셨습니다. 먼저 내가 부셔지고 깨어지고 낮아질 때 주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밭과 같습니다. 밭은 가만 놓아두면 어떻게 됩니까? 금방 잡초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무관심하면 교만이라는 잡초가 자랍니다. 모든 잡초가 그러하듯, 잡초는 좋은 씨앗들을 쉽게 해쳐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삽니다. 그런데 대개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먼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 내가 거짓을 가까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 내가 교만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 옆으로 가보십시오. 섬김만 보입니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보십시오.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너무 누추한 것이 자꾸 보이면, 세상을 탓하기에 앞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인격의 변화는 발걸음에 있습니다. 좋은 것에 더 가까이 가십시오. 좋은 변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불평하는 자는 결코 좋은 것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는 자에게 바꾸어 주십니다. 

  지금 내 인생의 무게 너무 무겁게 생각되고 내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분들은 내가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힘든일도 가볍게 하고 어려운 일도 쉽게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가볍고 쉽게 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 안되지만 주의 신으로 성령으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은행에서 경비 모집광고를 냈는데 응시를 한 그는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지지리 못나게 복도 없어 글도 못 배우고 경비 시험에도 떨어져야 합니까? 라고 신세타령을 하며 기도하다가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다. 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어찌 어찌 하여 미국 뉴옥으로 이민가서 처음에는 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식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못 먹은 가난보다 못 배운 무식을 더 통탄해 하면서 자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 쏟았습니다. 옆도 보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행해 줄곧 달려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중년이 넘어 섰을 때, 그는 세계 긍육가인 뉴욕 월가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60회 회갑연은 저명한 사람들로 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기자가 "선생님, 자서전을 한 권 내지 그러세요." "저는 제 이름 석 자외에는 아무 글도 모릅니다." "참 애석하군요. 회장님이 글을 조금만 알았더라면 아주 위대하게 되었을 텐데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내가 만약 글을 알았다러면 지금 은행 경비원쯤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은혜로 살아야 힘든 일들도 가볍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들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은혜를 유지하는 일에 무엇보다 도 더욱 힘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받으면 삶이 가벼워집니다. 은혜받으면 삶이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힘들고 어려운 일도 가볍고 쉽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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