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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 67 : 1 - 7
제 목 :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인생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제 인생을 생각해 볼 때 마른 막대기와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 마른 막대기인가? 
나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잖습니까?  이 세상을 어디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이미 경험으로 아시겠지만,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른 막대기와 같은 제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게만 되면 어떻습니까?  능력의 지팡이가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모세에게 지팡이가 하나 있었지요?  그 지팡이는, 자신이 치는 양떼들을 모는 지팡이였습니다.  또 자신의 양떼를 지키고, 때로는 덤벼드는 들짐승들을 물리치지는 무기로도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목자들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는, 이 지팡이가 별로 큰 쓰임새가 없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장비로서는 자기 지키기에도 급급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 모세의 지팡이가, 그런 보잘 것 없는 지팡이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되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기적의 지팡이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비록 마른 막대기와 같이  보잘 것 없고, 볼품없는 인생을 살아가지만, 저를 붙잡아 주셔서 장차 모세의 지팡이와 같이, 능력의 지팡이, 기적의 지팡이와 같은 인생이, 되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반드시 제 마음의 소원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은 소원, 여러분도 가지시고, 그 소원을 따라 장차 이런 능력의 인생,  여러분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살펴볼 때에, 이런 축복에 대한 소원을 가진다고 해서 다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만약에 소원만 가지고서, 다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축복받지 못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 복을 받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질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리가 성경에 나타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내용들을, 실제적으로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또 필요한 것일까? 
축복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 조건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전제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가 먼저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과 우리 성도들과의 관계를,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언약의 관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언약이 무엇입니까?
쌍방간의 약속인 것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했습니까? 
순종에 대한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축복이, 내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그저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저절로 축복이 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거지요. 
그런데 보세요.  교회에 다니는 것은,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증표일  뿐이지, 그것이 축복의 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볼까요?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이, 잘 한 것입니까? 
학생이 학교 가는 것이 칭찬받을 만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기본이지요. 
기본 중에 기본인 것입니다.  학생이 선생님께 칭찬을 듣고, 부모님께도 칭찬을 듣고, 또 그에 합당한 선물을 받을 수 있으려면, 학교에 다니는 것 말고,  그 외에,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생님께 인정을 받고, 부모님에게도 칭찬을 듣고, 또 그에 합당한 선물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장래도, 그만큼 더 밝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도,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우리의 축복에 대한 생각은, 허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 시간에,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신앙생활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학교에 다니는 것 말고, 학생의 본분인 공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신앙인의 본분인,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먼저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긍휼” 이란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다.” 는 뜻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과연 어떤 성도들이, 이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부족한 가운데서도, 연약한 현실 가운데서도, 항상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이런 긍휼하심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떤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밥 한 그릇 사먹을 돈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그저 방에만 들어 앉아 있으면서 먹을 걸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창피하지만,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면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사람들의 긍휼함을 입겠습니까?  구걸이라도 하며, 자신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긍휼함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은혜를  입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신앙적 노력을,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보이게 될 때, 그 때에 비로소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질 않습니다.
충분히 예배드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배에 빠진다든지, 충분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든지, 충분히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봉사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의 신앙생활로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들에게는, 그 은혜의 얼굴을 비춰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뭐 이쁜 짓을 해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 대단할 걸 요구하시겠습니까? 
우리의 형편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저 우리에게 있는 역량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헌신이요, 보잘것없는 봉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헌신과 봉사를 너무나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과부의 두 렙돈과 같습니다.  그저 동전 두 닢이지만, 그 과부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넣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의 넉넉한 헌금보다, 주님이 그 헌금을 더 인정을 해 주시고, 더 귀하게 여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의 현재의 형편과 처지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바로 성실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부지런함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나온 신앙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배함에 있어 최선을 다했습니까?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셨습니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림에 있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셨습니까? 

또한 기도함에 있어, 정말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아니면, 바쁜 삶을 핑계로, 기도 시간을 줄여가고, 아니면 아예 기도 시간이 없이 지내셨습니까?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생명 줄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서점에 가보니, 이런 책 제목이 있습디다.
“하나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삶에 바쁘기 때문에, 더욱 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을 아는 사람의 태도인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자기 노력으로 안 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이런 귀한 신앙의 고백이, 여러분의 입술에서도 흘려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아니면, 내가 안 해도, 남이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미루셨습니까?  남에게 맡기셨습니까? 
기본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로마함대 사령관 아리우스가, 벤허가 타고 있는 갤리선에 부임을 해서, 그 배의 노를 젓고 있던 벤허를 위시한 모든 노예를 향해 일장  연설을 합니다.  “너희들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지만, 오직 이 배  때문에 살려둔다.  그러니 열심히 노를 젓고 오래 오래 살아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위치가 역전이 됩니다.
적 함대에 받혀 배가 크게 파손되면서 좌초하자, 벤허가 아리우스 장군을 구출해 뗏목 위에 태우게 되지요.  그 때 아리우스가 왜 자기를 살려주느냐고 물으니 벤허도 역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도 배 때문에 너를 살려둔다.” 

하나님께서도 지금 우리를 살려두고 계십니다.  왜요?  교회에서 직분을 따라 봉사하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인 것입니다.  엡 4 : 12절에 보세요.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온전한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하는 성도이고, 그런 성도들만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세워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저나 여러분이나, 지나온 한 해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지게 됩니다.  이런 부끄러움이 없는 분이라면, 그 분은 정말 양심에 털 난  분들일 것입니다.  그 털은 결코 여러분을 따뜻하게 보호해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심령을 찌르는 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올해는 이제 이렇게 저물어 가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2008년도는, 이런 최선을 다하는 신앙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충만하게 입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번째로는, 전도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 3절 말씀을 보세요.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도가 무엇입니까?  복음인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복음, 구원에 대한 복음, 그 복음을 만방 중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을 누가 만방에 알려야 하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겁니다.  아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 복음 전할 사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였습니다. 
막 1 : 38절에 보세요.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막 16 : 15절에 말씀하지요?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여기서 너희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택하신 제자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 구원으로 먼저 부름을 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너희” 에게는, 저와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뭐라고 명령하십니까?  온 천하에 다니며, 누구에게?  만민에게,  무엇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파하라...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전도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가 없는 인생, 전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물 없는 오아  시스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인생의 목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이 전도가 빠져 있다면, 그런 신앙생활로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겠으며, 어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 모세의 지팡이를 예로 들었는데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모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쥐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폼 잡으라고요?  그 지팡이로 자기 양떼를 치라구요?  또 그 지팡이로  자기 자신을 지키라구요?  아닙니다.  왜 지팡이를 주셨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도 아닌, 양떼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학대와 압제에서 벗어나게 만들라는, 사명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 지팡이를 내어 밀 때에, 그의 앞에 가로막힌 홍해가 갈라지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메마른 광야에서도,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하는 기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신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좀 더 쉽게 질문할까요?  신약 성경에서 가장 많은 능력을 나타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드로입니까?  베드로는 주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수제자지요?  그러나 실제 성경을 보면 신약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능력을 많이 행했던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제치고 가장 유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을까?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것도 다른 이유 없습니다.
그가 다른 제자들이나 사도들보다, 훨씬 더 전도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그야말로 땅 끝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전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전도의 현장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행적을 기록한 성경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날도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성도들 가운데 누구를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이쁜 짓 중에, 가장 이쁜 짓이 무엇이겠습니까?  전도인 것입니다.

그냥 우리의 삶에 필요한 정도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충만한 축복입니다.  삶에 축복이 흘러넘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경영하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단 12 : 3절에 보세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별이 뭡니까?  영어로 스타!!!  스타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언제까지요?  영원토록...  믿습니까? 
그래서 전도하는 분들 보세요.  누가 축복을 받습니까? 
자신도 축복을 받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자신보다 더 큰 축복을, 그 자녀들이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 잘 되요!!!  (유명 대학교)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백배의 축복, 그 축복을 우리가 소원하는데요, 이러한  축복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바로 전도하는 성도들의 삶에, 실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이토록 넘치게 주시는 것입니까?  전도하는데 쓰라고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명 살리는 일에 물질 아끼지 않고 쓰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계속해서  쓰고 나누어줘도, 오히려 더 풍성하게 되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을 우리가 무엇이라 부릅니까?  “축복장”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 3절을 보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쉽게 이해를 합니다.  성읍이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까? 
그러한 곳에서는, 무엇을 해도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사업을 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많은 곳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들에서도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들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그러한 들판이 아닙니다.
사막과 같은 광야입니다.  인적은 고사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는 황량한 땅입니다.  어찌 이러한 곳에서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없는 곳에 사업을 한들 잘 될리 있겠습니까?  망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전도하는 성도들의 삶에는, 이런 들과 같은 상황에서도 복을 받게 만드신다는 겁니다. 

신 28 : 8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도, 오늘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 전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약속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도 보니까,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하는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 잘 한다고 자부해도, 전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그 점수가 50점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까 벤허 이야기를 했는데, 전도도 마찬가집니다.

왜 우리를 아직까지 살려 두십니까?  그야말로 틀림없이 죽을 죄인으로 지옥행이라는 사형선고 받은 몸들이었는데, 왜 지금까지 살려두고 있는 것일까?
또 영생을 약속해 주시는 것일까?  아직도 불신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을 살릴, 이 구원의 배를 열심히 저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1부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 모두는, 꼭 전도하는 인생 되셔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넘치는 축복 받으시고,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 능력이 되어서,  여러분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 번째로는, 구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5절 말씀을 보세요.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 위에 열방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지금 이 시편의 저자가, 궁극적으로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속한 민족을 넘어 열방에 이르기까지, 다시 말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에게 나타난 공통된 특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박국 선지자, 그가 간절하게 기도했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민족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해 달라고 기도였습니다.  영적 부흥과 성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민족의 복음화만 아니었습니다.  더 크고 위대했습니다.
여러분 합 2 : 14절 말씀을 보세요.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할렐루야!!!!
이것이 최종적으로 하박국 선지자가 꿈꾸는, 위대한 비전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비전이, 자신이 속한 민족을 넘어 열방에 이르기까지, 다시 말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이 놀라운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매개체가 무엇이냐?  바로 구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주님의 전도사역을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결코 복음을 먼저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먼저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헤아리시는 가운데, 먼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사건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건이 잘 나타나 있는 마 1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 14 : 14절에 보세요.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그 때 모인 수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듣기 전에, 무엇을 먼저 체험했습니까? 
주님의 치유의 사역을, 먼저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복음을 먼저 전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요.  그러나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맬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순서를 잘 이행하셨습니다.  아니, 복음전도의 올바른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먼저 복음전할 사람들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돕는 것이 전도이지만, 그 이전에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를 먼저 헤아리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전도 사역 방법은, 복음을 전하는 도중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왜 생겨나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배고픔을 인해서인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들,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했으니까, 그 수를 다 합하면 자그마치 2만 명이 됩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다가 배가 고파, 육신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결코 이런 모습을 간과하지, 모른 채 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역사를 일으켜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아니, 예수님이시니까, 그렇게 기적도 일으키고 먹여 주셨지.” 
병 고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단편적이고,  편협한 생각인 것입니다.  이런 말하는 사람은, 성경을 몰라도 한 참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무지의 소치인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그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주님의 능력 있는 기도로 시작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군중들과 함께 있던 사람에게서 시작되어졌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도시락 하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 한 아이가 겨우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락을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께 드렸다는 겁니다.

무슨 목적으로 드렸습니까?  주님께 잘 보이기 위해?  아닙니다.
자신과 함께 있는 그 수많은 군중들을 위해, 비록 보잘것없는 분량의 도시락  이었지만, 기꺼이, 아낌없이 주님께 내어 드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이 그 오병이어를 축사하시고, 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니,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 그 떡을 먹은 수많은 군중들의, 주님을 향한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뜨겁지 않았겠습니까?  주님이 전한 복음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전 보다 더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시고, 주님은 이런 치유와 구제의 사역을 먼저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도 보세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선교하는 나라가 복음부터 전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잖습니까?  처음부터 복음이 들어오지 않고, 병원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구제 물품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쉽게 찾아올 수 있었고, 또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나라들을 보세요.  다 하나님의 복을 받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유럽이, 미국이 왜 강대국이 되어져 있습니까?  바로 이런 식으로 선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나라만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교회도 보세요.  어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합니까?  이렇게 지역 주민들을 향해 구제하고, 치료하는 사역을 하는 교회가, 결국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집니다.  이웃을 위해 구제하는 개인도,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성도들을 축복하십니까? 
잠 19 : 17절에 보세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누가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고 했을 때, 쩨쩨하게 갚아주시겠습니까? 
30배로 갚아주십니다.  몇 배로요?  아니 60배로 갚아 주십니다.
몇 배로요?  그렇지요?  100배로 갚아 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6절과 7절 말씀을 보세요.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우리에게 나타난 축복으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교회 주변에 있는 모든 주민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행 2 : 44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냥 여유 있는 것을 가지고 나눈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라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초대교회가 복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 교회가 부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온 백성이 칭송을 했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날마다 성전이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천 교회는, 이제 구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구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복을 받습니다.  연말연시라, 어느 때 보다도 따스한 온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이 나가시다 보면, 교역자실 창문에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그림에 보면, 이런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WE SEE WHAT MOST DON’T”  그 뜻을 해석하면,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아야 한다.” 는 뜻입니다.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습들, 가난하고 소외당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을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모든 사람들이 들 떠 보낼 수 있는 시간들입니다.
예전에 뉴그 앵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축제는 있지만, 구제는 없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누구를 향한 목소리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목소리인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면서, 기도의 제목을 삼아 새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시다.  오늘 주신 교훈대로, 항상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시고, 특별히 전도하고, 구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귀한 은혜, 귀한 축복, 귀한 능력,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애 가운데 충만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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