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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를 본 받으라 (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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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엡 5 : 15 - 21
제 목 : 지혜를 본 받으라

오늘 우리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지혜를 소유하느냐?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는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지혜를 소유하게 될 때엔, 성공은 고사하고 오히려 인생에 낭패를 보게 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의 실체를 보게 되면 어떻습니까?  다 자기 생각과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세상을 자기 주장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그 인생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잘 되겠습니까? 십중팔구는, 잘못된 인생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속한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얄팍한 자신의 주장과 생각만 고집한다면, 어찌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는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이런 사람들과는 달리, 시대를 앞서간  현자의 지혜를 빌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사람들보다 인생에서 실패할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어느 정도 인생에 성공을 거둔 경력이 있기에, 사람들이 현인들을 본받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현인들의 지혜는, 오늘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전달할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한 지혜를 본받는다고 해도, 실제 그들과 같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도 안 되고, 현인들의 지혜를 본받아도 세상을 이기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지혜가 어디 있는가?  자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지혜를 추구해 보지만, 인생에서 더 이상의 지혜를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어차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그냥 내 방식대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하고, 다시금 자기 소견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의 인생은, 세상 사람들의 인생과는 분명 다른 것을 발견  하게 됩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 성도들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지혜를 따르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신앙의 주체되신 하나님의 지혜만을 따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가, 하나님께는 있기 때문이지요. 

현인들의 지혜는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실제적인 능력으로 우리의 삶에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이런 분명한 지혜의  차이가,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인생을,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지혜는 무엇입니까?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성도라 할지라도,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이런 신령한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떤 지혜를 소유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에 아직까지도 세상의 지혜를 붙들고 살아간다면, 이 시간을 통해 세상의 지혜는 다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지혜가 여러분의 인생을 바로 서게 만들며, 바른 길로 이끌고, 여러분을  결국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15절과 16절 말씀을 보게 되면,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인사를 우리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 않습니까? 
말세에는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성도들이 복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까?  말복 신앙을 가져야 한다.  믿습니까?
우리 한번 더 서로를 향해 인사합시다.  “말복 신앙을 가집시다.”

흔히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을 향해, 말세지말의 성도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세 때에는 정말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세상이 너무나도 악하기 때문에, 지혜가 없으면 세상에 삼키움 바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이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이 시간에 깊이 생각해 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첫째는, 세월을 아끼면서 사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6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세월을 아끼라.” 라고 했는데, 세월을 아낀다는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의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시간을 찾으라.” “시간을 살리라.” 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간을 찾아내고, 시간을 살리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가 안 됩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쓰든지 안 쓰든지,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내가 안 쓴다고 해서, 그 시간이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시간이라는 것이, 쓰든지 안 쓰든지 그냥 지나가 버리기에, 그냥 허송  세월로 보내는 사람은, 소중한 시간을 죽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살리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죽입니다.  “어제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안 해도 돼.”  여러분 오늘은 죽은 것입니다. “이 것 좀 해!”  “내일 할 게요” 여러분 내일이라는 시간으로 오늘을 죽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셋으로 나누지 않습니까?  과거, 현재, 미래.
그런데 우리의 시간은 무엇만 우리의 시간입니까?  현재만 우리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과거는 다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러면, 내일이라는 시간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시간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내일을 내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 주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나는 내일 관 속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예요.

하루살이에게 배짱이가 내일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살이가 내일이  뭐냐고 물었다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내일이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루살이 인생인 것입니다. 
어느 시를 보니까,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루살이입니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하루살이  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언제나 우리에게 살아있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지금 현재,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이 보내고 있는 이 시간 밖에는 없다는 것이예요.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이 현재의 시간을 살리는 사람,  이 현재의 시간을 바르게 쓰는 사람.
이런 사람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지난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지난 간 일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이미 지난 일들이 바뀌어 집니까?  그 고민 때문에, 오늘도 그 일을 해결 할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내일 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일도 힘든 상황 속에서, 왜 내일 일까지 미리 가불해서 걱정을 합니까?  이런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오늘 근심, 오늘에 족하니라.”  믿습니까?
내일 근심 내일 해도 괜찮습니다.  EX : 근심 상자

마 6 : 34절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했습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오늘 먹을 것, 쓸 것 있으면,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시고, 미래에 대한 염려도 하지 마시고, 오직 오늘 주어진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며, 시간을 살리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신앙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지혜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니까,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의 뜻은 생각해 보지를 못하고,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자기 뜻대로만 살아가는 인생, 그런 인생을 성경은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더 따라 하실까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헛수고 한 것이다.”  여러분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했습니다.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자기 뜻을 꺾고,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했다는 겁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어떤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에 가득 채워도 남을 만큼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요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셨던 장면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주님이 포도주를 능히 만드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 앞에 순종이 있어야 함을 또한 알았기에, 마리아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라고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신앙생활 하는데, 그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 이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주님 뜻대로 살아드릴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주님이 원하신다고 하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고, 뭐든지 버릴 수 있는 삶, 이게 신앙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 돌아서지 않겠네.  “노 리터닝 백”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왕 앞에 나아갔을 때에, 왕으로부터 더욱 더 큰 은총을 받고, 그래서 에스더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하고, 신앙을 지켜나갔을 때에, 비록 그들이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들어갔을 지라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라고 하는 굳건한 신앙으로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 옷 끝 하나 그을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온 도에 더 높은 지위를 얻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지혜입니까?  내 뜻대로 살다가 결국 망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아니면, 처음에는 좀 힘이 들지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까?  현명한 여러분의 선택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지혜가 무엇입니까?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충만하게 사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세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했습니다.

여러분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정말 술에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술이라고 하는 것은, 방탕한 생활, 세상 향락에 취한  생활을 모두 합해서, “술 취하지 말라”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취해서 살지 말고, 성령에 충만해서 살아가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을 비교해서 나타내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 반응이 비슷하기 때문이예요.
술이 취하면, 무감각해 집니다. 아파도 아픈 줄 모릅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하면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주변의 반응에 대해 무감각해 진다는 것입니다.  왠만한 상처가 생겨도 아프게 느끼지질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시험에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쉽게 상처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술에 취하면, 용감해 집니다.  그런데 성령에 충만해도 용감해 진다는  겁니다.  술 취하면 아무나 보고 시비 걸지요. 한 판 붙자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에 충만해지면 아무나에게 복음 전합니다.  부끄러운 게 어디 있습니까?  아무나보고 예수 믿으라고 합니다.  사탄과 한 판 붙자는 겁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현상은 비슷하게 타나내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인 줄 믿습니다.  술 취함은 인생에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성령 충만은 인생에 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무엇이 지혜입니까? 
세상에 취해 사는 것이, 그래서 세상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까?  하나님의 품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정말 지혜로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게에서 장사할 때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골프를 치고 테니스를 치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여행 할 때에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아니면, 연인들끼리 데이트할 때에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기도할 때에, 말씀을 묵상할 때에, 찬송할 때에, 성령 충만이 임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배시간에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예배 시간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사람이, 등불에 기름을 채워 놓는 지혜로운 신앙인입니다.
여러분 주일은 꼭 지키시길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공 예배에 빠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디 주일 예배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했습니까?  어디 주일 예배만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했습니까?  성경 아무데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편리에 의해 만들어 놓은, 인간의 유전입니다.
주님은 이런 인간의 유전을, 장로의 유전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기도회에 자꾸만 나오시라고 하는 겁니까?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스스로 새벽기도에 힘쓰시고요, 특별히 금요 기도회에 많이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나이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의 나이테는 기도시간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 중에 기도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여기에 따라 여러분의 신앙성숙도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연륜 자랑하십니까?  자랑할 것 하나 없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신앙생활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단 석 달을 믿어도, 이런 신앙으로 바르게 예수 믿으면 그 사람이 성숙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이 진리입니다.  여러분 변화된 모습이 지금도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은 세상에 취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늦었다고 하는 그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이제부터라도, 확실하게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해서 변화되어 신앙생활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인 줄 믿습니다.
네 번째로, 지혜가 무엇입니까?  항상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 - 20절 말씀을 보세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내 맘에”  항상 감사하다는 것이예요.
여러분 감사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매사에 감사하게 살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이 건강해 집니다.  몸이 건강해지면,  매사에 의욕이 생깁니다.  의욕이 생기면 모든 일이 잘 됩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하게 되면, 불평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도 나빠지고, 주위사람도 불행해 진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너무나도 큽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것을 미처 깨닫지를 못하고, 미처 발견하지를 못했을 뿐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시는 분들이, 뭐 남들보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서  늘 기쁨이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을 그들은 깨달았기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그들은 발견하였기에, 그 깨달음으로 인하여, 그 발견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송명희 시인이라고 있습니다.  많은 찬양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불구자입니다. 지체 부자유자입니다.  누워서 입으로 글을 씁니다.
그런 그녀가 하나님을 향해 무엇이라 찬양하고 있습니까?  공평하신 하나님  이시라고 찬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찬양 가사를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할렐루야!!!
이러한 감사의 찬양이,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늘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무엇이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피차 복종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종노릇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지라는 겁니다.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삶,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도무지 세상적인 관념으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 말이지요.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자기 피알 시대가 아닙니까?  좀 과장되게 자신을 들어내고 나타나내는 것이 요즘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기가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숨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왜 지혜입니까?  주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 보아도 주님이 회복시켜 주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형편은 안 되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먼저 베풀면, 손해 보지 않고 주님이 더 넘치도록 채워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눅 14 : 11절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능력 이상 높아지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사람은, 자기 능력 이상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피자 복종하며,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로움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늘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본받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에서 손해 보지 않고, 오히려 넉넉하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을 이제 우리가 살아갑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본 이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셔서,  주어진 오늘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며, 무시로 예배와 기도와 찬송으로 성령 충만을 이루어서, 늘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서로를 돌아보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그리스도를 대하듯 사랑하고 섬기는, 이와 같은 삶으로 한 주간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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