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의의 병기로 (롬 6:12~14)

  • 잡초 잡초
  • 1049
  • 0

첨부 1


의의 병기로 (롬 6:12~14)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Atlanta)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은 장교를 쳐다보고 죽었다며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젊은 장교는 누운 채 의식을 회복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만일에 살게 해주신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그곳을 지나다가 아직 살아있는 장교를 발견하고는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살아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후에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3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20여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 천명의 영혼을 구원시켰습니다. 그는 미국이 배출한 기적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인 러셀 콘웰(Russell H. Conwel)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병기가 된 것입니다.

일생동안 죄만 짓다가 마지막에 사형수로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한 일을 하면서 인류와 사회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장서서 모범적으로 복음을 확장시키며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자리만 지키다가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다 오히려 복음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어느 쪽을 택할 것입니까? 의의 병기로 쓰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겠습니까?

본문 13절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기서 '의의 병기' 는 성도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은 의의 병기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의의 병기로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만이 의의 병기가 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디 남은 인생동안 불의의 병기가 아니라 의의 병기로 사용되시기 바랍니다.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지려면,


첫째로 죄가 왕노릇 하지 말아야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금식하고 기도를 해보아도 잘 되지가 않습니다. 어느 날 철야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을 듣던 중 그 말씀이 비수같이 마음에 꽂힙니다. 마지막 부분에 간증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양말 속에 숨겨 두었던 담배를 꺼내면서,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지 못하고 살았다고 고백하며 담배가 끊어지도록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다음날부터 40도가 넘는 고열로 일주일을 앓아 누웠습니다. 처음에는 그 원인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40도의 고열로 앓고 난 후, 담배를 입에 대니 너무나도 씁니다." 그때부터 그는 담배를 전혀 못 피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12절 상반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죄가 주관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은혜로 구원받은 몸입니다. 죄의 법에서 해방 받았기에 더 이상 죄가 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이기려면 죄가 드러나야 합니다. 죄는 감추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는 숨어 있는 동안 능력이 있습니다. 드러나면 그 힘이 떨어집니다.

우리의 왕은 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죄가 왕노릇 하려면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은 후 고민이 더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사실 예수 믿기 전에는 죄에 대해 굴복하며 살았기에 갈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 되신 예수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죄와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그리스도가 왕이심을 확인하고 죄에 대하여 승리할 때 의의 병기로 계속 쓰임 받게 됩니다.


둘째로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아야

어떤 사람이 말안장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고통스러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심리학자를 불렀더니 "아프신 이유는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심리치료가 필요합니다". 사회학자를 불렀더니 "선생님의 문제는 자랄 때의 환경 때문에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고통은 부적절한 환경에서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를 불렀더니 "상처의 뿌리는 돈에 있습니다. 유가증권을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을 불렀더니 "모든 환경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우시면 고통이 줄어들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는 모든 조언을 받았지만 여전히 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어린 소녀가 다가왔습니다. "아저씨, 왜 안장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세요?" 안장에 계속 앉아 있었기에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고 속히 내려와야 합니다.

본문 12절 하반절입니다.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거듭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육의 본능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몸의 탐욕이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 물질과 성에 대한 욕심입니다. 정원의 풀을 멋대로 자라게 두면 쓸모 없는 잡초 밭이 되고 맙니다. 몸도 정욕이 일어나는 대로 방치해 두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본문은 그러한 욕구의 충동인 사욕에 절대로 순종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그런 욕구에 순종하면 죄로 왕 노릇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고통스러워도, 소리를 지르며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옛사람을 죽이려, 우리로 병들게도 하고 어떤 때는 인간 관계로, 어떤 때에는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님은 몸의 사욕을 깨뜨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왜 괴롭히시나 오해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타락한 본성이 죽지 않으면 의의 병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의 사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며 산다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돼지를 도축장까지 운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축장까지 돼지를 몰고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돼지들을 죽음의 도축장까지 쉽게 몰고 가는 사람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콩 한 줌을 꺼내 보이며 말합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내가 앞서 가며 콩을 뿌리면 돼지는 그 콩을 주워 먹으면서 도축장까지 따라 옵니다".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몸의 소욕대로 콩을 먹으며 따라가다 죽는 돼지처럼, 사람도 몸의 사욕대로 따라가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필히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은혜 아래 있어야

라브리(L'Abri)라는 신앙공동체가 있습니다. '라브리' 는 불어로 '피난처' 라는 뜻으로, 인생의 온갖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누구나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영적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개혁장로교 목사이자 사상가인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가 시작한 공동체운동입니다. 2차 대전 이후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침체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꿈을 잃고 섹스와 마약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현상에 무력하게 대처하자, 일어선 사람이 프란시스 쉐퍼입니다.

그는 스위스 알프스 산기슭에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불어넣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회복시켰습니다. 1984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쉐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제 저의 일을 마쳤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본향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전기에 전해지는 일화입니다. 말년에 암 치료를 위해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병들어 있음을 알고 유언과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불신자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크리스천들의 삶의 목표는 행복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거룩함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십시오". 쉐퍼는 하나님의 은혜아래 거하며 의의 병기로 살아가는 삶을 증거하였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우리의 존재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율법아래 매여 살았지만 지금은 은혜 아래 있습니다. 은혜 아래 사는 백성은 절대로 움츠리지 않습니다. 은혜 아래 사는 사람은 죄와 싸워 이겼기에 절대로 패배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은혜 아래 사는 사람은 죄를 지배하고 살기에 절대로 죄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의의 병기로 사용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의의 병기로 쓰임 받는 것이 영광된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중국의 80세 노인이 예수를 믿고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말도 잘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고심을 하다 손녀의 도움으로 이동하는 광고판이 되기로 했습니다. 가슴과 등에 판자를 이어 어깨에 매는 광고판을 만들어 신앙 간증을 썼습니다. 그것을 메고 하루 종일 다니며 광고판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몇 년 후 노인이 하나님께 가던 날,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슬퍼합니다. 노인을 통해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식하고 단순한 노인을 의의 도구로 사용하여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의의 병기로 사용되는 것이 답답한 것같고, 손해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야 거룩한 삶이 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불의의 병기가 되기 원하십니까? 의의 병기가 되기 원하십니까? 의의 병기는 경건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내일부터 사순절 세이레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됩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열매를 맺는 의의 병기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