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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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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1-11)

베드로 전후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격려의 서신으로서
    당시 큰 환난을 당하고 있는 소아시아 여러 지역 교회들에게
    하늘나라의 영원한 유업을 제시함으로
    이단의 유혹과 배교에서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는 말씀으로서
본문에서 그 해답이 영적성숙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월 신앙성숙의 달을 맞이하여 (영적성숙의 최고봉인)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는 인사 말씀에서 성도들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1. 베드로 사도는 인사 말씀에서 성도들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1-2절)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베드로는 성도를 가리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가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예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꺼이 주고 싶어 하시는 선물입니다
왜 성도의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는 믿음이요
    세상에서 승리하는 믿음이요
    나아가 하늘나라의 유업을 이을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보배로운 믿음의 가치를 다 모릅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도
    자신이 가진 믿음이 얼마나 귀중한 믿음인 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이 믿음은
    찬450장 3절 금 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내가 가진 믿음 금보다 귀한 믿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번은 외환은행에 환전하러 갔더니
외환 창구에 여직원과 한 아줌마가 외국돈을 보고는 의아해 합니다.
    붉은 지폐인데 무려 0 이 6개나 붙어 있습니다.
사연인즉 어떤 위국인이 물건을 사가면서 100만원을 내어 놓았는데
100달러 물건을 팔고는 받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전에 유고슬라비아를 여행한 적이 있어서
    제가 알아보고 이 돈은 유고 돈인데 0 네 개를 떼고 계산 하라고 하니
    이 아줌마가 혀를 차고 돌아습니다. 속은 거지요.
0 많이 달렸다고 다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가면 이런 것이 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영적 성숙과 세상에서의 승리를 안겨다 주는
      보배로운 믿음을 붙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2. 우리가 어떻게 보배로운 믿음 즉 신성한 성품을 가지게 되었습니까?(3-4절) 

1) 3절 “그의 신기한(divine) 능력으로 주셨으니”
신기한(divine)으로 번역된 이 말은
“신의 성품(divine nature)”이란 구절에 사용된 용어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는데
그 믿음 안에는 생명 - 즉 구원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 하나님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생명이듯이
성도의 삶에 가장 귀중한 것은 영원한 생명과 경건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경건 즉 하나님 닮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즉 신앙의 성숙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을 말합니다.

2) 3절 하반절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3:8절에서
    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까?
    예수를 아는 고상한 지식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에 눈이 뜨여지면 세상의 것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이 보배로운 믿음이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4절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 약속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즉시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그 약속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특권을 동반한다.

참으로 놀라우신 말씀의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이것은 놀랍게도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됨을 말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divine power)을 통해
매일의 경험 가운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닮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합니다.
<럭 워렌> 목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세계적인(World-Class) 크리스천이 될 것인지,
                세상적인(worldly) 크리스천이 될 것인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위하여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3. 특히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예하기 위해 피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4절)

4절 하반절 [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문법의 구조를 보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세상의 썩어질 것에서 피하는 일에 뒤따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과 부르심과 약속으로 말미암아
    내게 보배로운 믿음이 생기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때 피해야 할 것이 세상에 썩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세상 것을 피해야 하는가?
요1서2:16절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

1988년 46세의 폴란드의 철도회사 직원이 차량을 연결하려다가
      머리를 다쳐 코마 상태에 빠졌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19년이 지나 65세가 된 <얀 그르제부스키>씨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눈을 떠보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자유의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코마 상태로 들어갔을 때는 가게에 홍차와 식초뿐이었습니다.
고기는 조금씩 배급해 주었고 휘발유를 사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금 깨어나 보니 길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를 하며 걸어다니고,
        상점에는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래요 세상이 문명화 되면 사람들도 문명화 될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세속화 되어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동화되어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더욱 힘써야할 성숙의 신앙의 단계는 무엇입니까?


4. 우리가 더욱 힘써야할 성숙의 신앙의 단계는 무엇입니까?(5-7절)

베드로가 60세 즈음에 본문을 기록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자기의 삶을 정리하면서 이 기록을 남기고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때에 이 말씀을 남긴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젊었을 때는 천방지축으로
    자기 뜻과 욕심과 썩어져가는 정욕을 좇아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삶의 목적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5절과 10절에서 “더욱 힘써” 하라고 합니다.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한 우리의 삶의 마지막은 ‘사랑’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다음 시간에 줌 업(zoom up) 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를 부르시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비밀을 알게 하시고
그 안에 있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너희에게 주신 것은
너희로 하여금 정욕을 인하여 썩어질 세상의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심이라 하셨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더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덕 - 사전에  [존경심을 일으키는 힘] 이라고 합니다.

덕에 지식을 더하라
이 지식은 세상의 썩어질 관원의 지식이 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니라.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
    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

인내에 경건을 더하라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이 없으면 결단코 아무도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느니라.

왜 우리가 신앙성숙을 이룩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 왜 우리가 신앙성숙을 이룩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8-11절)

1) 8절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 바로 변화의 삶입니다.
죽음을 맞이하여 깨달은 한 가지 진실
나 자신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좁혀
내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내 가족을 변화시키기로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일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 변화되었을지......

이것은 영국 웨스트민스터 묘지에 있는 성공회 주교의 기도문입니다.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교회나 가족이 아니라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작년 실적을 발표했는데 순이익이 100억 달러라고 합니다.
전세계 제조업체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삼성이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가는 방법이 무엇인가?
삼성의 회장이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것에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삼성이 내일이라도 당장 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몸부림쳐라.”라고         
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경영학에서는 기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오늘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문화 사조에 따라 기업이 수시로 변화하지 않으면
    내일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는 참 중요합니다.
우리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변화’와 우리의 ‘변화’의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변화해야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는 목적이 있는 변화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변화는 ‘진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변화의 목적은 영원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을 가져서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신앙을 굳게 붙들어 주기 위해
영적성숙 즉 신성한 성품이 바로 신앙의 삶에 벨러스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10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한의사 크리스천의 말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힘이 나오는 신체적 부위의 변화도 생기고 또 사는 태도도 변한다고 합니다.
먼저 10대이하는 다리등 하체에 힘이 있어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도 무릎에 탄력이 있어 안전합니다.
    피곤하다고 하여도 하룻밤만 잘 자고 나면 다 풀립니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힘의 중심이 다리와 배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결혼하여 2세를 생산하여야
        튼튼하고 건실한 후손을 낳을 수가 있습니다.
힘의 중심이 점점 위로 올라와서
    30대중반부터 50대까지는 힘의 중심이 배에 있습니다.
    배가 나오고 히프가 나오고
    몸의 중심에 힘이 모여 안 팍으로 튀어 나옵니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하체가 허 해져서 상체를 지탱하지 못해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모든 병은 이때 다 걸리게 됩니다.
60대가 되면 힘의 중심이 입에 모여
    소위 양기가 입에 모여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늙었다는 증거입니다.
    움직이기 싫으니 입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젊은 사람이 잔소리를 많이 하면 걷 늙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70대 이상이 되면 모든 곳의 힘이 떨어지고 말하기도 귀찮아지고
  눈만 꺼뻑꺼뻑하게 됩니다.
그렇게 잔소리하던 양반이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눈으로만 의사표시를 하고 TV만 보기 시작합니다.

결국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은 힘의 중심이
    몸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는 것이요,
젊어진다는 것은 그 반대로 힘의 중심이 몸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벨러스트가 뭡니까?
    바로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품이 얼마나 신성한 성품으로 변화되느냐에 있습니다.
세월 따라 변화는 중심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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