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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예수님을 닮으라 (롬 8: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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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으라 (롬 8:26-30) 

요즘 목적이 이끄는 40일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으로 감동스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택시를 운전하는 어떤 권사님은 평소에 새벽기도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왜냐하면 낮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고, 밤늦게야 있는데
밤2시쯤 끝나고 돌아오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가 어렵죠.
그런데 해보니까 되더라고 합니다. “어떻게 되느냐?”고 하니까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일찍 들어온답니다.
그래서 수입은 반으로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좋답니다.
새벽기도회를 해서 수입이 늘어나야 좋은 것인데, 반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오는 분들이 모두
형편 좋은 분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에서 돈 많이 벌고, 퇴근시간도 일찍 보장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 내막을 잘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말 무리하지만 인생의 목적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루에 2시간을 자고 왔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사고날까봐 걱정이 됩니다.

어떤 집사님은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정말 쉬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이 거룩한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그냥 매일 새벽에 나오라고 한다면
그 일을 하기가 쉽겠습니까?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새벽을 깨우는 이유는 거기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찾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고,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특히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인생의 목적을 살피고자 합니다.

본문 로마서8:29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즉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에베소서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구원은 일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순간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서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볼 때, 좋은 일만 아니라, 나쁘게 보이는 일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실패나 가난, 고통, 질병과 같은 것들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에는 3가지 도구가 사용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 자신이 당하신 것들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시험이라는 것입니다.(Test)

이것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더 강하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신뢰하게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특히 우리의 성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상황이 편하고 좋은 상황에서는, 더 강해지거나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킬 목적으로 어떤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목적은 우리를 넘어지거나 고통 가운데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훈련시켜 더 자라게 하고 예수님을 더 닮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느냐 보다는 성품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때 이 땅에서 하던 어떤 직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성품을 가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성품입니다.
진짜 편안함을 누리는 곳은 천국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에서 살 사람의 성품을 개발하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는 고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결국 우리는 소망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난, 시험, 질병 앞에서
“하나님,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만 그런 고난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른 고난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시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가장 씨름하셨던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이 고통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일까?
정말 하나님은 나를 최선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

이 고통의 순간에 주님은 함께 그 고통 가운데 있어줄 친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3제자에게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막14:32)
이것이 바로 소그룹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교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십자가를 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함께 있어 달라고 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고통을 혼자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4)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계획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결국 현재의 고난은 지나가는 것이고
나중에는 크고 영원한 영광과 상급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사탄에 의해서 고안된 유혹입니다.(Temptation)

이것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상하게 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사탄의 시험까지도
우리 인생에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이 아닌 하나님 쪽을 선택하면
사탄의 계획은 실패하고 우리는 인생에서 더욱 자라나게 됩니다.
이 선택들은 우리 인생에서 성품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결코 죄를 범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세례를 받으시고 40일간 금식하셨습니다.
금식이 끝난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유혹을 받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마귀의 유혹 자체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마저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유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나만 시험을 당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나만 재수가 없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이 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사탄의 유혹을 받습니다.
이것은 나이도 상관없고, 영적으로 아주 거룩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시험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아닌지에 테스트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우리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쪽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유혹에 집중하지 말고 좋은 생각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은 항상 우리가 그 시험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시험에 집중하면 시험은 우리를 이리 저리 흔듭니다.

빌4:8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시험을 받을 때 저항하지 마십시오. 저항하면 단지 시험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험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십시오. 선하고, 옳고, 참된 것만을 생각하십시오.
 

두 번째 해결책은 좋은 영적인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그것을 빛 가운데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공개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영적인 파트너입니다.

전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여러분의 인생을 삼킬 것 같은 시험을 당할 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으세요.
그 사람은 바로 여러분의 옆에 있는 바로 그 소그룹의 일원들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많은 영적 파트너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디모데, 디도,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믿음의 업적을 남겼던 것은 바로 이런 영적인 파트너들 때문입니다.
 

3.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모욕과 상처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기 위해서 죄, 모욕당함을 사용하십니다.
시험은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도록 하기 위한 상황이라면,
유혹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사탄이 만든 상황입니다.
그러면 모욕은 우리를 상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는 여러분을 의도적으로 상처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상처들을 참아내고 더 적극적으로는 그 사람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 단계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 중에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억울하게 오해를 받거나 비판의 대상이 되고, 학대를 당합니다.
분명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이 부분에서 그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오해를 받고, 상처를 받고, 학대를 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벧전2:23)

“아버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그분은 참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닮고 싶다면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습니다. 이곳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여러분 역시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에게 상처를 줍니다.
우리는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를 서로 주고받습니다.
이 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싶다면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고는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 준 사람의 반응에 상관없이 여러분이 용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용서는 조건적인 것이 아니고 나의 선택인 것입니다.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우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용서하기 바랍니다.
에베소서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그것은 물론 나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여러분 삶에서 선하게 쓰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고백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가서 온갖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형들을 만났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여러분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통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 때가 바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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