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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것이 문제다 (삿 1: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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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문제다 (삿 1:28-36)
 
아주 작은 것 때문에 큰 곤란을 겪어 본 적이 있나요? 분명히 큰 일이 아닌 것 같았고, 그것 때문에 크게 곤란을 당할 것 같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것 때문에 큰 곤란을 겪는 우 , 그런 경우가 없었나요? 성경에 보면 작은 거짓말 때문에 큰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작은 거짓말을 했다가 큰 곤란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쓰고, 그 일로 인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자신들의 재산을 팝니다. 그리고 그중에 일부는 자신들이 갖고 있고,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그 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것이 너희가 판 재산의 전부이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는 일부를 숨겼지만, 재산 전부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결과는 그들의 죽음이었습니다. 그 거짓말로 인해 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남들에 인정받고 싶은 작은 욕심 하나 인정한 것, 그래서 재산중에 일부만 내어놓고 다 낸 것 처럼 하기로 한것, 그것 작은 것 하나 때문에 그들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별 것 아닌 것, 작은 것 하나가 우리의 삶을 크게 곤란하게 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여러분이 그런 작은 것, 작은 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지 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처음엔, 도무지 물리칠 수 없어서 용납하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는 사사시대를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사라는 말이 참 생소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주변국가들에게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정국가들인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에 이스라엘은 왕정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할 때까지는 모세와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있었지만, 이들 역시 왕은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최고지도자였던 것이죠.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이런 최고지도자가 여호수아 다음에 바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땅은 있는데, 이스라엘 전체의 최고지도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왕도 없고, 최고지도자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민족들의 압제에서 구해내고, 그들을 지도했던 지도자를 사사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사는 한 사사가 죽고 나면 바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마다, 이들을 통해 다른 민족들을 물리치고, 그리고 나서 그들이 사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 사울이 왕이 되기까지의 시기를 사사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기록한 성경책을 사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사사기의 첫부분이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입니다. 사실을 이 말씀,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이 사사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 사사기의 주제가 무엇인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사는 가나안 백성들을 정복하는데,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모햇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7에는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그리고 1:29절에는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1:30절에는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1,33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다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물론 있습니다. 이 당시 가나안 거민들은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청동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무기의 수준이 적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을 압도할 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그들을 따 쫓아내지 못한 일차적인 이유입니다. 그들을 다 몰아내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 좀 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백성들이 거들과 함께 사는 것을 용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물리치기엔 힘이 모자라서 그들을 용납한 것, 그것이 처음에 가나안 백성들을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 시작의 동기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용납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두고 두고 이스라엘의 문제의 근원이 됩니다. 앞으로 몇 백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는 가장 힘든 요소중의 하나가 이 가나안 백성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한 1400년전쯤의 옛날 이야기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늘날 동일한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동일한 일이란 죄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나 행동으로 죄를 지을 때 그것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속에 있는 이 죄적인 생각들, 죄적인 행동들을 다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것을 용납하게 됩니다. 도무지 내가 물리칠 수없으니까, 이번 한번만 용납하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한번은 하나님도 눈감아주시겠지 하면서 그냥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냥 크지 않은 것, 친구를 한번 미워하는 것, 엄마를 속여서 용돈을 받는 것, 지나가는 친구들을 한번 삥치는 것, 친구들에게 허풍 한번 떨고 거짓말을 하는 것, 순간 순간 마다 이것을 다 물리칠 수 없으니까, 이런 것들중에 몇 개는 그냥 이번 한번만 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않은 것처럼, 내 마음속에 내 행동속에 들어온 나쁜 생각과 행동을 다 쫓아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처음엔 그냥 다 물리칠 수가없엇, 할 수 없어서 죄를 우리 마음과 행동속에 용납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그들이 결심하고 거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용납하고, 나쁜 생각과 행동을 따르게 되면 다음엔 어떻게 될까요? 성경을 다시 한번 봅시다. 1:27절에 보면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처음엔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다 물리칠 수 없어서, 그냥 이 번 한번만 이라는 생각에 용납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 죄적인 것들이 우리의 삶속에 한 번 들어오고 나면 그 다음엔 아예 결심하고 우리의 삶속에 눌러 앉는 것입니다. 가나안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결심하고 눌러앉았던 것처럼 이제는 죄가 우리의 삶속에 결심하고 눌러 앉는 것입니다. 그냥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면 그 자리에 그냥 눌러앉아서 도무지 떠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이번 한 번 하고 짓는 그 죄가 결코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번만 했던 일들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경험을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냥 나가지 않고 눌러 앉아 우리와 함께 살려고 한다는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담엔 내가 그것을 즐기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삶속에 죄가 눌러 앉아있으면, 죄가 굳게 결심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그렇게 눌러앉아 있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그 죄 때문에 갑자기 힘들어질까요?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우리 뒤통수를 탁 치시면서 야 이놈 너 뭐하는 거야 이렇게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떡하니 자리를 잡으면 처음엔 우리 삶이 너무 편리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성경을 다시 한번 볼까요. 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1:30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1:33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던 가나안 백성들이 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역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종처럼 그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강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입장에서는 이제 가나안 백성들을 물리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때문에 생활이 훨씬 편리해 지고, 훨씬 편안해 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없으면 너무 너무 불편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속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죄도 그러합니다. 처음엔 한번만 하고 인정했던 그 죄가 이제는 그 죄스런 행동 생각이 없으면 너무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죄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이용해야만 우리가 편하고 편리해 지는 것입니다. 처음엔 친구 한번 왕따시키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니까 훨씬 삶이 편안해 지는 것입니다. 처음엔 컨닝 한번 하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요즘 그게 없으면 성적향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엔 엄마 아빠가 아무렇게나 놔둔 돈 가지고 가는 것이 이상했지만, 요즘은 그것 때문에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처음엔 학원가서 한 시간 땡땡이 치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요즘은 그것 때문에 학원가는 보람이 생긴 것입니다. 학원에 안가면 견딜 수없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처음엔 이번 한번만 하던 그 죄가 우리의 마음속에 한 번 들어오고 나면 그 다음에 죄 결심하고 우리마음안에 살기록 작정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는 그 죄 때문에 너무 너무 편안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죄를 즐기게 되고, 내 삶의 핵심적인 즐거움이 그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내가 죽는다

그 일의 결국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하고 난 최종적인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 일의 결국은 2:11-15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그렇게 죄를 한 번 용납하고, 그 죄를 이제는 즐기게 된, 죄와 공생하게 된 그 결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우리속에 죄는 가장 작은 것 하나나 마저도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죄를 용납힞 않는 삶, 죄를 멀리하는 삶, 그것이 조금 불편하다 할지라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삶, 그런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은혜와 자비가운데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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