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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이루시는 하나님 (수 21: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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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시는 하나님 (수 21:43-45)

우리 성도님들은 한 해 동안 계획한 것을 얼마나 성취하십니까? 서울 리서치에서 국내 30개 기업 직장인 3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직장인의 30.7%가 60-80% 미만이라고 응답했고 29.1%는 40-60% 미만, 21.6%는 20-40% 미만이라는 응답하였습니다. 3.3%는 20% 미만이라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성취하는 것은 평균적으로 57.25%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람이 한 해 동안 계획한 것을 반 절 쯤은 이룬다는 조사입니다. 아마 실제로는 이보다 더 못 이룰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누구와 약속을 하면 얼마나 지킵니까? 철도청에 따르면 하루 평균 예약 부도율이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항공기 승객의 예약부도율도 평균 23%나 된다고 합니다. 병원 예배 부도율도 1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예약을 할 때 선납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계획하는 것을 다 이룰 수도 없고 약속한 것을 100% 다 지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약속하신 것을 다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민 23:19)”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호1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계획하시고 언약하신 것을 다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땅을 다 분배하고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까?

1. 우리 하나님은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다 이루어 주셨다는 것입니다(땅).

4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수 21:43)”
약속하신 대로 땅을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약속한 땅입니까? 열조에게 약속한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열조는 누구이겠습니까?

69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이 75세에 이 약속 붙들고 떠난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라고 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어 자기의 상속자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삼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약속해 주면서 분명하게 지시할 땅에 대하여 알려 주었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1)” 그 땅에 대한 규모를 정확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또 이스마엘을 자기의 후손으로 세우려고 할 때도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 땅을 상속받을 자가 이삭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창17:18,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19)”

또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에게도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창 26;2, 3) 이삭이 가뭄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내려갈려고 할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 26:2-4)”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에 대한 약속을 다시 이삭에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도 약속해 주십니다.
야곱이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채고 밧단 아람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무엇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3-14)”

모세에게 이 땅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출 3:8)”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은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출6:8)” 이 약속은 광야 여행 중에도 계속 됩니다(출33:1)

하나님은 그 언약을 여호수아를 통하여 성취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수 1:2-4) “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이제 언약이 더 이상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그 약속대로 그 땅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땅은 우연히 주신 것이 아니라 열조들에게 하나님이 맹세하시며 주마 약속하신 땅인데 이제 그 약속한 온 땅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지시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69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해주셨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나 모세는 약속이 더디 성취되는 것을 보고 힘겨워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갔고 종과 이스마엘을 그 땅을 상속할 후손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해도 하나님은 정확히 약속해주시고 그 약속을 정확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룰 시기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했습니까?

땅이 주는 가장 중요한 점 중의 하나는 이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거듭 약속한 바로 그곳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부터 여호수아까지 우리 하나님게서 이 땅을 선조들의 후손들에게 주기로 맹세하시거나 서약하셨다는 사실을 무려 30회 이상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약속의 땅이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창 15:18-21) 언제 그 땅을 주실지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창15:12-16) 이방의 객이 되고 이방의 객이 되어 4대 만에 돌아 올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받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비전의 땅이 무엇입니까? 가정의 젖과 꿀이 흐는 땅, 사업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교회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민족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꾸어서라도 이루어 주십니다(왕하7:1-30)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 때에 이스라엘의 서울 사마리아가 아람 나라의 포위를 받아 양식이 떨어져 모두 굶주림으로 이성을 잃어 갔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아들을 삶아 먹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왕하5:24-33).

이 때 선지자 엘리사의 마음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은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네 아들을 잡아먹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내일 사마리아성에 곡식이 많아지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왕하7:1).

이 말을 들은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고 믿지 않았다(왕하7:2).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영혼이 있어 영원히 산다고 말씀합니다. 언젠가는 이 땅이 다 끝이 난다고 말씀합니다. 믿지 않습니다. 정신나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이루었습니까?(왕하7:3-20) 성문 밖에 4명의 문둥이가 굶주려 죽을 수 밖에 없으니까 어차피 굶주려 죽을 것 이판 사판으로 아람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 아람 군인들이 이 문둥이들이 오는 소리를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로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황혼에 일어나서 다 도망하여 버렸습니다. 문둥이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먹고 이 소식을 왕궁에 고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어 백성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고 믿지 않았던 장관은 백성들에 의해 성문에서 밟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믿지 않는 그를 보고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왕하 7:19)”라고 했는데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받드시 이루어 집니다. 환경을 바꾸어서라도 이루어 주십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여 다 복을 받는데 홀로 축복에서 제외되는 불행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어서라도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전 606년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끌려갈 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70 년 만에 해방 받아 돌아올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렘25:12,13, 렘29: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렘 25: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렘 29:10)”

하나님은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주십니까? 이스라엘을 포로로 끓고 간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켜 바사 왕 고레스에게 주셨습니다. 바벨론 나라의 멸망원인은 죄악이었습니다(렘25: 12).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 성취되었습니다.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잠21:1)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어서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냥 기계적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해 성취하시길 원하십니다. 사람들의 노력과 기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출애굽사건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4대 만에 있을 것을 약속했지만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성경 출애굽기 2장 23-25을 보십시오.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회복되는 것도 보십시오. 이미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 약속이 유대 민족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렘 29:10-14, 겔36:37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0-1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겔 36:37)”

엘리야 때 3년 반 동안 메말랐던 땅에 비를 주시겠다는 약속도(왕상18:1)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왕상18:41-46).
우리의 삶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되게 하는 것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우리도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가나안의 축복을 약속 믿고 나아가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더디다고 포기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 안식을 다 이루어 주십니다(안식).

4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식언치 않고 이루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주변 가나안 족속들의 위협, 압박 등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상태를 누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젠 노예 생활을 하며 방황하던 삶이 끝이 나고 정착하여 풍족한 삶을 누리는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불안으로부터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안식이란 말은 "쉼"(rest)을 말합니다. 안식은 성취의 결과로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육체적 쉼과 정신적 평과, 사회적 안정, 가정적 평안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에덴동산은 안식의 동산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백이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추방되었습니다. 그 안식의 동산에서 추방되는 역사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안식의 땅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가인이 살인하고 추방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땅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참된 안식의 땅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차지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은혜의 땅, 안식의 땅 입니다.

이 안식의 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신12:9-10을 보십시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애굽과 광야에서는 불가능했던 이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해주셨는데 그것을 다 이루셨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25장 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9)”

하나님께서 그 기적같은 일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수 1:13)”

안식은 대적으로 부터의 해방을 말합니다. 안식은 방황의 끝을 말합니다. 평화와 안전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 광야의 방황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평안과 안전 속에서 그를 기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레위기25:23) 안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속에서 나타나는 안식은 국가적 평안과 안전 속에서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으로 땅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 안식으로 누리는 영원한 영원한 천국에 대한 상징입니다(히4:12)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라는 주님의 말씀에 응답한 사람들이 누리는 영원한 안식의 나라 천국을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아안 땅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새 예루살렘, 새땅의 모형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한숨도 갈등도 질병도 가난도 없는 새 예루살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 중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자들은 참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가데스 바냐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불신앙한 사람들은(민14:11) 다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신1:32;9:32;시106:24).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믿음이나 신뢰의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거부'를 뜻합니다. 믿지 않는 결과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완전 분리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미 안식의 땅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안식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안식의 땅에서 삶을 오늘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44절을 다시 보십시오.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아직 다 점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안식을 주셨다는 것은 그들이 순종하면 어떤 대적도 그들을 넘어뜨릴 수 없도록 하나님이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대적이 강력하다 할지라도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안식을 누리는 한 가지 조건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약적인 용어로 바꾸면 믿음입니다. 믿는 자는 이미 참 안식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천국 백서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대적이 없습니까? 수많은 어려움과 안식을 파괴하는 대적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대로 안식을 이루어 주십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3.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 없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선한 일).

여호수아는 다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45절을 보십시오. 땅과 안식에 대하여는 열조에게 맹세하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무엇을 하나님이 하나도 남음 없이 다 응하게 하여 주었습니까?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좁게는 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참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일입니다. 넓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모든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과 야곱, 요셉, 모세에게 약속하시고 이 땅을 점령하게 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선하신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모두 선한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모두 선한 것입니다. 비난을 받는다고 포기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를 통하여 다 이루실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이 다 하나도 남음 없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축복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선한 일일지라도 쉽게 포기하고 어려워지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어떤 경우에도 선한 일을 꼭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친히 가나안 족속의 멸절 명령을 지시하시면서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신 7:9).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이 더디게 성취되는 것 같아 보이는 때라도 우리는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로써 기다려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선하신 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 3:13)”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면서 낙심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시작하였으니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산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마지막 유언적인 설교를 하시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수 23:14)”

세상의 불의가 득세하고 악이 이기고 선이 굴복하는 것같다고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은 반드시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1-28에 귀신들린 딸을 두 어머니가 나옵니다. 딸을 났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많은 재산도 허비했을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자기 동네 두로와 시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딸을 낳게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누구 눈치 볼 일이 아닙니다. 체면 불구하고 주님께 나아가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처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들은 채도 하지 않습니다. 침묵합니다.

23절 보십시오. 한 말씀도 대답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여인의 소리를 듣습니다. 제자들이 그 여인을 보내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 여인의 접근을 방해합니다. 그 때 여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절을 하며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개처럼 취급하며 거절합니다. 그래도 그 여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무시하고, 방해하고, 거절당했지만 끝까지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개처럼 취급받고 자존심 상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집중합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습니다. 끈기 있게 메달립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성취하기 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입니다. 다윗은 17여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고 선포해 주십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가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선한 일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성벽을 건축하는 느헤미야를 보십시오(느헤미야2:10-20)
선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얼마나 장애물이 많았습니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는 평생 권력과 부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자처햇습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고 시작한 일입니다. 왕의 적극적인지지 가운데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비자도 받았고 성벽을 건축하고 집을 지을 건축 자재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첫 삽도 파지 않았는데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난 것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페르시아의 관리가 된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고 하면서 느헤미야를 대적합니다(4:12, 6:10, 14, 18)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왕을 배반하는 일을 한다고 방해합니다. 세력을 너 넓혔습니다. 아라비아 사람 게셈도 느헤미야의 일을 반대하는 무리에 가담하였습니다. 주제 파악 좀 하라고 비웃습니다. 능력에 대한 비웃음과 조롱입니다. 새 사업을 한다고 “자금이 있느냐? 인맥이 있느냐? 경험이 있느냐?” 이런 식으로 조롱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계획적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할 때도 장애물은 있는 법입니다. 장애물이 없이 모든 일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 동안 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이 3년 광야 생활을 하지 않고 곧바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선한 일이고 민족을 위하여 나선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데 첫 번부터 살인자로 쫓겨 광야에 나갔고 무려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뭄이었습니다. 가뭄만 있습니까?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어야 하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재물이 많아지자 조카 롯과 싸움이 있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목동으로 살다가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왕궁에 들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울의 시기였습니다. 17여년 동안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요셉이 목동이 직업을 그만두고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와 가정 총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순탄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중년 여성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에게 갈릴리 바다를 건너 거라사인 지방으로 가자고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니까 폭풍이 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간 길입니다. 기도하고 간 길입니다. 약속받고 간 길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 한 일입니다. 장애물을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성장을 위한 밥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장애물을 주십니까? 각기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을 보십시오.

광야를 걷게 하신 첫 번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를 낮추시겠다는 말입니다. 겸손의 훈련을 시키겠다는 말입니다. 바로 모든 것이 잘 되면 교만해져서 미래 더 긴 축복의 삶을 누리지 못하니까 겸손의 훈련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모든 미덕의 바구니이며 겸손하면 세상이 다 내 편이 됩니다.

둘째는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고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16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런 장애물을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462장 1절)”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갖은 어려움을 당한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주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베드로의 고백을 보십시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 고통을 당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느헤미야는 고백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느헤미야서 6장 15절 이하를 보십시오.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 6:15-16)”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시겠다고 한 땅, 안식, 선한 일 모두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안식과 선한 일을 다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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