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죄인을 만나주신 예수님 (요 7:53 ~ 요 8:11)

  • 잡초 잡초
  • 305
  • 0

첨부 1


죄인을 만나주신 예수님 (요 7:53 ~ 요 8:11)

1.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끌고 온 서기관 바리새인들

그들의 질문 -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돌로 치라고 명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마치 예수님을 굉장히 존경하며 그 판결을 기다리는 듯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6절)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님-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알고 계셨다. 그들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만약 이 순간에 모세율법대로 한다면- 저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어주고, 율법을 지킬 수 있겠지만, 저 여자는 죽을 것이다.

그 여자를 살려주라고 하면- 여자는 살리겠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어긴 사람이 되고, 저들은 더 예수님을 집요하게 괴롭힐 것이고, 고발할 것이다.사람들은 지금 당장이라고 돌을 던져 그 여인을 죽일 기세다. 그들의 분노와 미움을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2. 예수님은 조용히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무엇이라고 쓰셨을까? “어느 쪽을 할까요? 알아 맞춰봅시다” 했을까?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했을까? “아버지! 제가 저 여인의 죄까지도 담당하겠습니다.”라고 쓰셨을까?

  무엇을 쓰셨는지는 오직 주님밖에 모른다. 사람들은 과연 주님이 무엇을 쓰셨는가를 밝히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는가보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쓰셨는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손에 돌을 들고 있다. 당장이라도 돌로 그 여자를 쳐 죽일 기세다.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행동할 순간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다. 땅바닥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조용히 쓰신다.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에게게? 저게 뭐야? 왜 저래?” 그들은 기운이 빠졌고, 이내 고요해졌다.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가 한 풀 꺾였다. 예수님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주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 돌아갔다. 분노 속에서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분노는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다만 타인을 향해 해치려고만 든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여유로운 행동으로 인해 그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살핀다. “나는 과연 어떤가? 나는 저 여자가 음행했기에 죽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어떤가? 나는 음란한 생각을 품지 않았던가? 나는 음행과 간음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가? 사실 나는 그 마음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나는 언제나 음행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길거리에서 섹시한 여자가 지나가면 못된 생각을 품지 않았던가? 내가 과연 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저 말씀대로 먼저 돌로 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뿐. 그 외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자신의 죄악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더 큰 죄악과 더 무서운 죄악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부끄러워 자리를 뜬다.

  숭례문이 한 사람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었다. 여러분은 이번 사건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①저는 참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도 사실은 성품도 착하셨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애쓰고, 자녀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런 무서운 죄악이 숨어 있었다니... 지하철 테러까지 생각했다니... 만약 지하철이 불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도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무서운 죄악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세상이 무서웠다.

②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방화범보다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도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분노와 미움을 품고 살았던 적이 많았던가? ‘너는 내가 언젠가는 한 번 손봐야 주겠어!’라고 결심해 본적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내가 오늘은 이렇게 당했지만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지 많은 않겠어! 두고 보자!’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 불 지른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그 분노와 미움과 죄악을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았을 뿐이고, 그 할아버지는 그 마음과 생각대로 그렇게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죄가 없다고, 나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요한은 예수님의 독특한 행동을 두 번씩이나 같은 말로 표현했다.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6,8절) 글자 하나 다르게 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고 하는 것은 요한이 이 대목에서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1)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몸을 굽혀 땅을 향하셨다. 이 세상을 만드신 그 손가락이 흙먼지 이는 이 땅 위를 지나간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죄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굽히신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자신을 고발하려는 그 죄인들을 만나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 거룩한 몸을 먼지와 같은 땅에 접촉하신다.

2) 사람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무자비한 죽음과 처벌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이 행동을 마이클 카드는 거룩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렇게 묵상했다. “거룩하고 영원한 손가락이 이 땅위에 시간의 여백을 만드셨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보여 주셨다. 미움과 분노, 죽음과 처벌이 있던 세상 속에 주님은 들어오셔서 자유와 용서와 사랑이 있는 세상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구원과 사랑과 용서가 있는 하늘의 세상을 가르쳐 주셨다.

3) 결과는 이렇게 조용하게 끝났지만 사실 예수님은 이 순간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시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앞에 서 계셨다. 그들의 분노와 미움, 고소, 정죄, 살인. 이 모든 것은 그 간음한 여자가 받아야 할 것이었지만,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받을 각오로 그들과 맞서고 계셨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카툰(삽화)하나가 생각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진다. 그 돌에 예수님은 이 곳 저 곳이 상한다. 피가 흐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팔을 벌리고 그 곳에 계신다. 그리고 바로 뒤, 예수님의 등 뒤에 죄인이 내가 숨어 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내가 받아야할 모든 비난과 수모, 멸시, 정죄, 죽음을 받으셨다. 나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게 하시려고... 나에게는 털끝만큼의 상처도 없게 하시려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오늘 아무런 해도 받으시지 않았다. 주님은 무사하셨다. 그 말씀대로 돌로 친다면 주님 밖에 칠 수가 없는데, 주님밖에 정죄할 수가 없는데 주님은 결국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신 죄 없으신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으신다. 이 한 없는 주님의 사랑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3. 용서하신 예수님

사람들이 다 돌아간 다음 주님은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자가 대답했다. “주여 없나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우리들에게도, 음행하여 죄의 형벌에 잡혀 있던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신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있느냐?” 우리도 대답한다. “주님의 용서로 구원받은 우리도 주님을 향해 고백해야 한다. 주님! 없습니다. 저를 정죄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를 죄의 형벌로 인해 고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저를 건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의 죄를 고발할 수 있고, 내 죄악을 정죄할 수 있는 주님께서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니 저는 정죄도, 심판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