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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자유하게 하심에 자유 하라 (막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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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하게 하심에 자유 하라 (막 5:1-15)

  오늘은 3.1절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 민족은 모든 주권과 자유를 일본에 빼앗긴 것입니다. 3.1 독립만세운동은 이러한 우리 민족이 민족적 자주생존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유를 선언한 운동입니다.

  3.1운동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자유와 평등정신의 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유와 평등입니다. 3.1운동은 빼앗긴 자유를 찾고 일본인과의 불평등에서 평등을 찾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 의로운 운동입니다.
  독립선언문에 보면 도의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습니다. 양심과 진리가 우리와 함께 함으로 만세를 부른 것입니다. 권력과 압제의 폭력에 양심과 진리와 도의를 빼앗길 수 없기 때문에 맨주먹으로 나가서 진리와 양심의 소리로 만세를 부르짖은 것입니다. 

  󰓏 민주정신의 운동입니다.
  삼일운동은 어느 특정한 지도자가 지시한 사건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전 민족이 일어나 자율적으로 일치단결하여 일으킨 민주적 운동이었습니다.

  󰓐 비폭력저항 운동이었습니다. 
  간디의 무저항 운동도 이미 삼일운동이 일어난 후의 사건이었습니다. 인도의 정신적인 지도자 네루수상이 자기 딸에게 “빈 손들고 독립운동을 편 한국의 저 소년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3.1운동의 비폭력 운동을 표현한 말입니다. 독립운동의 공약삼장을 보면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신,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마지막 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모든 행동을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3.1운동은 감정이나 파괴적인 생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총칼 앞에 빈손 들고 비폭력적으로 공명정대하게 자유와 독립을 주장한 운동으로 문화민족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 교회의 역사적 참여 운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서적으로 볼 때에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애족 하는 신앙입니다. 3.1운동당시에 기독교는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3.1 운동은 교회의 역사적 참여 운동이었고,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과 함께 하는 애국운동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3.1 독립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주도적 역할을 다했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이 3050명이었고, 이들 가운데 목사가 54명, 전도사가 127명, 장로가 67명이었습니다. 특히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가 16명이었는데, 그 중에 9명이 감리교 지도자였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교회가 불타며, 많은 신앙인들이 희생하면서 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잘못된 사상과 급변의 변화 속에 삼일운동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일운동의 정신과 사상, 그리고 그 운동을 만들어낸 신앙성의 진실성을 잃어버리거나 왜곡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봅니다. 
  특히 인간자유의 가치를 잊고 자유남용과 아울러 자유상실의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고 했습니다. 이 자유는 어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인간의 귀중한 권리입니다. 
  자유의 권리를 선포한 3.1독립만세운동의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자유를 바로 누리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부족함 없는 자유의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내면의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인간으로서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을 보고자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군대귀신인 수많은 귀신이 들어가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무덤가운데서 생활하고 있으나 귀신의 노예로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특성을 보면
  󰒑 죽음의 세계(어둠)에서 살았습니다.
  󰒒 비참했습니다. 
  󰒓 포악했습니다.
  󰒔 자해했습니다.   
  󰒕 잔인 했습니다.
  󰒖 파괴적이었습니다.
  󰒗 소망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외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 같으나, 내적으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거라사 지방의 광인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어두워 죽음 속에 살아가는 것 같고, 소망을 잃고 절망 속에 살아가면서, 비참하고 포학하고 잔인하며, 자신을 파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귀신들의 지배와 농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누가 어떻게 인간에게 온전한 자유를 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자유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을 찾아주셨습니다. 거라사 광인에게 있는 귀신에게 명하여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을 이천마리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심으로 귀신들린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도 귀신들린자에게서 귀신을 쫒아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1:25-27)

  성경은 귀신을 쫓아주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마8:16)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 고 하셨습니다. 참 자유란 빼앗는 것도 아니고 쟁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 하게 하시기에 우리는 자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한일이란 고작 쇠고랑과 사슬로 그를 묶어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를 사로잡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만이 귀신들린 자를 근원적으로 고치시고 자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 정상적인 인격의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 가족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 데가볼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원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감으로 그분의 자유하게 하심 안에서 자유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삶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으니 주님의 자유하심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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