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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십자가 위의 말씀Ⅳ: 버림받음 (마 27: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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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위의 말씀Ⅳ: 버림받음 (마 27:45-49)

  ‘엘리자베스 퀴불러 로스’(Elisabeth K&uuml;bler-Ross 1926-2004스위스 취리히)는 일생 동안 인간의 죽음을 연구한 정신과의사였습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그녀의 저서 ‘생의 수레바퀴’, ‘인생수업’, ‘상실수업’ 등은 우리말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과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의사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하여 시카고대학 부속병원에서 말기 환자 220여명을 인터뷰해서 ‘죽음의 선고’를 받은 환자가 겪게 되는 심리변화를 알아내었습니다.

  첫째, 거부합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합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암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오진이라고 단정하고 의사를 바꾼다든지, 다른 더 크고 유명한 병원을 찾아가서 다시 진단을 받으려고 합니다.

  둘째, 화를 냅니다. 여러 군데에서 진찰을 받아보았지만 암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면 무척 화를 냅니다. 자신에게 이러한 운명이 닥친 사실에 대하여 분노하며, 그 분노의 대상은 질병 자체, 자기 자신, 가족, 의사, 하나님 등이 됩니다. “왜 하필이면 나냐?”

  셋째, 타협을 시도합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흥정을 해봅니다.  이번에 내가 다시 회복만 된다면 남은 생애를 정말 헌신하며 살겠다든지,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텐데 살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졸라봅니다.

  넷째, 우울에 빠집니다. 자신이 아무리 어떻게 해보아도 결과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무력감에 의해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다섯째,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현실로 인하여 죽음을 수용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 이 단계쯤에 이르게 되면 환자는 더 이상 기운을 차릴 수도 없고 기진맥진해 집니다.

그런데 이런 다섯 단계를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거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세 단계들을 왕래하며 한꺼번에 경험하기도 하고 지나갔던 단계로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지 거의 여섯 시간이 지났습니다.
특히 3시간 전부터 온 땅이 캄캄하여 어둠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심히 임박하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질러 기도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 위에서의 네 번째 말씀은 이처럼 애절한 기도로 올려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인 사실을 단순히 시간대별로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사건과 교훈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보면 예수님의 족보설명과 탄생과 관련된 기사가 두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0년을 건너뜁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여 최후의 한 주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3년의 사역을 3장부터 20장까지 18장에 기록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보내는 최후의 한 주간의 삶을 8장에 기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미국의 영화감독 ‘멜 깁슨’은 예수님의 지상의 삶의 마지막 12시간을 중심으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만들어 개봉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의 수난에 대하여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이 영화만큼 예수님의 고난을 리얼하게 묘사한 경우는 드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중심은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한 신학자는 말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신약성경의 중심된 진리라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바로 이 부르짖음은 이 진리의 심장이요, 가장 심오하게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이 시간은 십자가 위에서의 네 번째 말씀을 함께 묵상합니다. 

1.버림받은 자의 외침입니다.

교회사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잘못 해석하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영지”(靈知 gnosis)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이들은 철저히 이원론 자들이었습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하여, 영이신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악한 물질의 세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습니다. 모든 악은 물질로부터 발생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악한 물질세계를 창조하지도 않았고, 물론 통치하지도 않는다고 믿습니다.
인간영혼의 본질을 하나님의 신성과 동일시하며,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회복한다고 믿었습니다.

영지주의의 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그리스도 가현설(Docetisim)’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양으로 보였으나, 실제로 완전한 사람의 몸을 갖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수난도 비실제적인 하나의 가상(假像)이었다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성을 전적으로 부정하여, 몸을 입고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의 환상으로 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재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악한 육체를 취할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에게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만약에 불결한 육을 취한다고하면 그것은 타락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예수라고 불리워진 심오한 영적인 인간과 일시적으로 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가 탄생할 때, 세례 받을 때에 이 결합이 이루어졌고, 십자가에 처형되기 직전에 영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예수와 분리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예수일 뿐이었습니다.

이같이 가현설론 자들은 구속자에게서 참 인간성을 모두 박탈하고,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인격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인성을 경시하였습니다.

요한일서4:1-3에 이와 같은 사상이 이단임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성경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죄인에 대하여는 용서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단에 대하여는 대단히 단호합니다.

요한이서1:7,10,11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이런 사람들이 너희에게 나아가거든)그르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자임이라.”
영혼을 좀먹고, 양을 도둑질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신천지’에 연류 된 사람들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교회안의 적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예수님도 연민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주일 분명히 말씀드렸으나, 스스로 찾아와서 그 동안의 연류사실을 고백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용서도 없을 것입니다. 정리가 되는 대로 조치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서 그는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온 몸으로 모든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며 우리의 죄를 인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로마서8:3,4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3:20,21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로마서3:23,24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성경의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죄에서 의롭게 될 수 있을 만큼 율법을 완전하게 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율법의 의, 외에 다른 한 의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소중한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아사셀 염소의 희생’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을 맞이하게 되면 대제사장은 염소 한 마리를 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루어야 하는 모든 죄 값을 그 염소에게 전가한 후, 이스라엘 진으로부터 축출하여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이스라엘에서 떠나보낸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때 사용된 염소를 가리켜 ‘아사셀’ 이라 부릅니다.
이 한 마리의 염소가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마다 드리는 희생의 제사로는 사람의 죄를 완전하게 속죄할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여신 새로운 은혜의 사건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의 제사 십자가입니다.

히브리서10:1,4,10말씀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이는 황소와 영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 뜻을 좇아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은 아사셀 염소의 희생으로 온전히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새로운 사죄의 법을 전하셨습니다.
영원한 아사셀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세례요한이 최초로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신 말씀이 바로 이 아사셀입니다.

요한복음1:29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위하여 고난 받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저 골고다 언덕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버리시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버림받은 독생자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해를 가려서 정오에서 3시까지 온 땅은 캄캄하게 되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입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 값으로 당신의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을 받아 천국 갈 것을 믿습니까?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 모든 죄를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물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자이셨습니다. 아사셀의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그 크신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모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의로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이 은혜의 역사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갈라디아2:20,21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신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리스도는 광야에 버려진 아사셀 염소처럼 우리의 모든 허물을 대신 지시고, 거친 언덕 갈보리 위에 홀로 버려졌습니다.(마태복음27:46)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이 위대한 은총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고백하기만 하면 그 죄를 벗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라디아3:13)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2:24)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불의는 그 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십자가의 은혜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3.이제는 날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물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오르셨고, 우리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보내신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한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살리셨으니 이제 우리는 우리를 살려주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내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어디이든지, 무엇을 하며 살든지 그 모든 일이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예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헌신이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이제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부흥회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완성하는 일에 주님과 함께 동역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 간단한 믿음의 기도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의 죄를 슬퍼하며, 저의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저의 구원자로 믿으며, 그리스도만을 저의 구주로 고백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의 교회와 교제하는 가운데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저를 영원히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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