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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문에 흐르는 저주의 통로를 차단하자 (민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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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에 흐르는 저주의 통로를 차단하자 (민 14:18)

여러분, 우리는 종종 유전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약삭빠른 자녀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다 엄마를 닮은 유전 때문이에요.” 자녀들이 이렇게 말하면 부모님은 “뭐가 그게 유전이니?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엄마는 애 아빠에게 묻습니다. “혹시 애가 당신 닮아서 그러는 것 아니에요?” 이런 경우 대개 아빠도 오리발을 내밉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어.” “그러면 누구 때문이에요?“ ”아마 애가 자기 외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

여러분, 유전의 법칙을 알고 있지요? 한번 물어 볼까요. “죄는 유전이 될까요? 유전이 되지 않을까요?” 세 가지로 대답해 보십시오. 첫째, 유전된다, 둘째, 유전되지 않는다, 셋째 잘 모르겠다. 정답은 유전이 됩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성경 본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14:18)

이런 죄의 유전법칙에 대하여 출애굽기 20장 4-6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 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리고 예레미야 32장 18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는 은혜를 천만 인에게 베푸시며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여러분, 저주 받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인간은 각 가문마다 알게 모르게 저주가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가문은 음란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가문은 병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가문은 혈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살이 흐르는 가정도 있습니다. 어느 가정은 정신분열증이 흐르고, 어느 가문은 거짓말이 흐릅니다. 어느 가문은 단명이 흐르고 어느 가문은 사고가 흐릅니다. 이혼이 흐르는 가정도 있습니다. 어느 가문은 가난이 흐르는 가문도 있습니다. 분명히 부모의 죄는 자녀에게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로로 죄와 저주가 흐르는 것일까요? 5가지 통로를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유전 인자를 통하여 죄의 저주가 흐릅니다.

민족마다 독특한 유전인자가 있고 가문마다 유전인자가 다릅니다. 흑인들에게는 적혈구 빈혈증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민족에게는 우울증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빨리빨리’ 유전인자가 많습니다. 반면 중국 사람들에게는 ‘만만디(천천히)’ 유전 인자가 많습니다.

어느 산파가 아이를 받고 나니 손가락에 끼었던 금반지가 없어졌습니다. 주위를 온통 다 뒤졌으나 못찾았습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그 아이의 움켜쥔 손에 금반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도벽이 심한 분이었습니다. 즉 부모의 유전인자가 태어날 때부터 그 아이에게 전달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혹 이 이야기가 좀 과장이 되었다고 생각이 드시겠지만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즉 다윗도 부모의 죄의 유전인자를 받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타락한 인간이 아담과 하와로부터 내려오는 이런 원죄의 유전 법칙을 뛰어 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죄인이고, 그 죄의 결과인 사망 판결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정녀 탄생으로 이런 원죄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원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가정에 흐르는 죄의 인자들을 기도와 말씀으로 끊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다음 세대에 이런 죄의 유전 인자와 저주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2. 모방을 통하여 죄의 저주가 흐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제일 가까이서 보게 됩니다. 그 자녀들은 부모의 좋은 점은 물론 죄의 모습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죄가 전가됩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담배를 피우다가 아버지에게 들켰습니다. 아버지는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담배를 피운다고 아들을 몹시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풀리지 않아 아들을 앉혀 놓고 담배를 피우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도 학생시절부터 골초였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보고 자란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왕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기 아버지 왕을 본받아 그대로 정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37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그리고 열왕기하 24장 9절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해롤드 브롬휠드(Harold Bloomfield) 박사는 이런 말했습니다. "자녀들과 부모와의 관계는 부모의 행동으로 영향을 미친다. 자녀들은 자신들이 자라면서 부모의 혐오하였던 그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반복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는 배운다." 쉽게 예를 들면 한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가 술을 먹고 방탕하여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아들은 그런 자기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라서 자신도 아버지가 되었는데 옛날 자기 아버지처럼 자신도 술을 먹고 방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주에서 수학 여행단을 받는 여관을 하는 한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국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자고 간 자리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지럽습니다. 베개 잎은 찢어져 있고, 이불은 담배재로 얼룩져 있고 야단들입니다.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자고 돌아가고 나서 방에 들어가 보면 ‘누가 자고 간 방인가?’ 의심할 정도로 흔적이 없습니다.“

즉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죄의 모방을 통하여 죄의 저주에 빠지게 됩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하여 많은 희생을 합니다. 그래서 기러기 가족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교육 환경,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모범이 되어서 그 자녀가 죄의 모방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3. 추수의 법칙을 통하여 죄의 저주가 흐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납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납니다. 또한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이 납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이 땅에 만드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만드신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고층빌딩에서 떨어지면 즉사합니다. 추수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농부가 추수의 법칙을 무시하고 씨를 심지 않으면 농부는 그 해에 추수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죄를 지으면 자기가 벌을 받거나 그 자손이 재앙을 받는 것은 뻔한 추수의 자연법칙입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자가 임신하였을 때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가 난 아기보다 독서능력이 6개월가량 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발육이 늦어진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합한 다윗왕도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름 아닌 자기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신인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그만 죽었습니다(삼하12;18) 하나님이 다윗의 죄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아이는 부모의 죄 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는 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의 자식들은 눈이 멀지니라.”(욥17:5) 즉 부모의 질이 나쁜 죄로 인하여 자녀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고통을 당하면 그 부모 역시 자녀의 고통을 보면서 더욱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부모의 죄를 물어 자녀를 치는 것을 보면 당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좀 야속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그 보응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남을 괴롭히고 죽이는 자를 하나님이 평안하게 방치하고 잘살게 한다면 그것도 불의의 하나님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추수의 법칙을 통하여 자기가 이전에 잘못 심은 것에 대하여 회개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이러한 추수의 법칙을 깨닫고 좋은 씨앗을 심어 자기의 자녀들이 잘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악령들을 통하여 죄의 저주가 흐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시니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귀신들렸다고 고쳐달라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그러자 그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어릴 때부터니이다.”(막9:21) 즉 이 어린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딕커슨 박사가 귀신들린 이들 400명 가량을 치유하면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론은 귀신들린 아이들의 3-4 대를 거슬려 올라가면 반드시 귀신을 섬겼던 조상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조상들이 섬겼던 귀신의 영이 그 자손들에게 들어가서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에 흐르는 악령들은 그 가정에 독특한 병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어떤 가정에는 그 가족식구들에게 특정한 신체의 일부분에 해를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혹은 성격적으로 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은 식구들에게 아주 비슷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기도로 이러한 가계에 흐르는 악령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어릴 적부터 가계에 흐르는 귀신 들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그 가정에 흐르는 귀신을 아들에게서 쫓아내셨습니다. 우리도 가계에 흐르는 귀신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5. 영혼육의 접촉을 통하여 죄의 저주가 흐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늘 영혼육을 접하며 살고 있습니다. 영을 접할 때 접하는 사람의 영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혼을 접할 때 그 사람의 정신이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육을 접할 때에 접하는 이의 육이 흘러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창기와 접하면 좋지 않은 음란의 영이 들어와 일생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6-17)

하와가 마귀와 접하니까 마귀영이 들어와 결국 에덴동산을 파괴시키고 말았습니다. 고로 마귀가 세게 역사하는 사람과 만나기 전에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혼육을 다 접하며 사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렇기에 부부 중 한 사람이 잘못 되면 아담과 하와처럼 같이 잘못 되기가 쉽습니다. 또 부부 중 한 사람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역사하면 마귀는 쉽게 그 남편 혹은 아내를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고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늘 기도해주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영혼육이 같이 파괴를 당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파괴당하면 자녀들도 파괴당하기 쉽고, 사회나 교회 또한 파괴당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마귀가 세게 역사하는 죄인, 악인, 교만한 자, 유혹하는 자를 멀리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부모의 죄도 흐르고 부모의 축복도 자녀에게 흐릅니다. 신앙의 위대함은 <태어난 대로><생긴 대로><되는 대로>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생활을 바꾸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주의 통로를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영을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통하여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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