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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넬료 회심 사건의 의의 (행 10: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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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넬료 회심 사건의 의의 (Cornelius Calls for Peter)
성경 : 행 10:30-48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사도행전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제자들이 어떻게 따르기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은 전도에 관한 한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유앙겔, 기쁜 소식)을 다른 나라에까지 전하는 세계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그때까지 어느 나라에도 다른 나라에 소개하고 다른 민족에게 전할 만큼 가치 있는 신(神)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신들과 우상들은 성가시고 피곤한 기생충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시 신들을 섬기는 문화가 만연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바알이나 아폴로, 아데미 같은 신들에게 애착이나 애정이 없었습니다. 신이란 그저 기쁘게 해주고 달래줘야 하는 미치광이 폭군 정도로 여겨졌을 뿐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시대에 초대교회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식하고 천한 시골 청년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사회적 지위나 지적수준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랍비들처럼 교육수준이 높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대단한 학식을 자랑했고, 로마인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어부와 농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무리들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성공의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에 예루살렘을 소동케 했고, 유대지방과 사마리아를 흔들었고, 결국 로마제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들어 쓰셔서 대단한 것으로 만드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주님께 얼마나 사로잡혔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에게 온전히 사로잡힌 베드로의 복음 전도 행적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최초의 사건이고,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당시의 제자들에게 박혀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린 사건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가이사랴에서, 다른 한 사람은 거기서 하룻길 떨어진 욥바에서 환상을 봅니다.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가정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줄 것’이라 하며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합니다. 욥바의 베드로 역시 누군가 자신을 청할 것이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비전을 따라 행했습니다. 이튿날 베드로는 가이사랴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고넬료와 그의 가정은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보며 주님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고넬료 가정의 회심과 성령 부으심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1. 베드로를 청하라 하심 (적용적해석: 복음의 필요성)
  
31-32절=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고넬료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2절). 22절을 보면 고넬료는 온 유대족속이 칭찬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도와 구제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그와 더불어 경건한 삶을 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넬료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이것을 고넬료에게 명확히 보여줍니다.  

5절=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1:14= “그(베드로)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경건한 고넬료에게 구원의 말씀이 필요했던 것처럼, 복음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마귀의 권세 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가망이 없습니다. 
  
마약 중독자들과 알콜 중독자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세금 잘 내고 법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가정 폭력범이나 강도 살인범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 순진무구한 청소년과 전쟁영웅 같은 선량한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할까요?

그렇습니다. 고넬료처럼 고결한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도 복음을 듣도록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면 결론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은 여러분과 저의 몫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이름이나 예수님의 교회, 그리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하여 제법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복음의 핵심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언약,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 받으심의 의미,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능력과 사죄의 은총, 주님의 부활의 영광과 그 부활의 생명에 힘입은 우리의 거듭남, 성도의 성화와 영화에 이르는 주님의 인도하심, 마침내 이루어질 영원한 천국의 소망...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소식입니다.   

강직한 삶을 산다고 예수님의 구원의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 영적 무지(無知)가 바다처럼 우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세상 학문은 무섭도록 진보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없이 지식만 늘어나면 결과는 명약관화 합니다. 고린도전서 8:1은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를 청하라.” 의로운 자라고 칭송받던 고넬료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너와 네 가족은 그에게서 구원받는 길을 배우라.” 
  
성도 여러분!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 주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복음 전파를 천사 대신 베드로에게 맡기심 (적용적해석: 복음은 사람이 전함)
  
32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1:13-14=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책임이 사람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천사가 고넬료에게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천사는 예수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도 베드로를 청하라는 명령을 주었고, 베드로의 소재지를 알려 줄 뿐이었습니다. 

  복음을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천사가 아닌 우리의 일입니다. 천사가 훨씬 효과적으로 전할 수도 있을 텐데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지혜 가운데서 천사가 아니라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며, 주님은 원하시는 곳에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님의 특권을 나누어 주십니다. 복음은 인간이 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인간의 협력은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의롭고 죄 없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사 2000년의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를 위해 천사들을 세상에 보내어 이 세상을 공의로 덮고 죄인들이 범죄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의 실체를 보여주며 심판과 하나님에 대해 온 세상을 깨우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고전 1:27) 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들을 부르실 수도 있었고, 원하기만 하면 대적자들을 모두 무릎 꿇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 깨닫고 구원 얻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강요나 놀라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능력에 힘입어 나오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원하는 목적을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더딜지 모르지만 결국은 사랑이 이깁니다. 복음은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이 사랑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를 통해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이 사랑의 표현이 바로 복음입니다. 전도는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끄시는 전투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몸도, 정신도, 마음도 연약한 그릇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지구의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버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성품은 죄로 얼룩지고 더러워졌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의 성취를 위한 열쇠입니다. 보잘것 없는 우리지만, 인간은 영원한 미래까지 뻗어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악의 세력과 마귀의 계획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 바로 지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실 전도는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획의 주된 부분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 최초의 이방인 전도임 (타문화 전도의 필요성)
  
34-35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고넬료와 그 가정이 회심한 사건은 최초의 타문화 전도 사건입니다. 정말 중요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의 이방인 전도는 제자들에게조차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새롭고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속한 단순 소박한 유대 문화와 세련되고 부유한 로마의 관리가 속한 로마 문화 사이에는 도저히 좁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사고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거듭 주셨지만, 베드로는 아직 이방인에게 접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욥바에서 기도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갖고 있었던 경직된 유대적 사고방식이 변화 받았고, 전통과 금기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10:10-17). 베드로가 경험한 이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는 인종의 차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새 시대, 지구 혁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졌던 이방인 전도의 사명,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타문화 전도, 즉 선교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허드슨 테일러는 모든 족속을 품에 안으신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중국 선교사의 길로 나섰습니다. 그는 최초의 중국선교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테일러 이전의 선교사들은 유럽인의 외양을 그대로 고수하며 유럽식 집에서 살고 유럽 의상을 입었습니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이런 서양선교사들의 모습이 중국을 침공하는 외세와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데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중국의상을 입고 변발을 하고 철저히 중국의 생활양식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우리의 사도 바울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전 9:20-22=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여러분, 요지는 하나입니다.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 바울의 삶의 목적이요 신실한 종들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고넬료 회심 사건을 통하여 오늘의 교회들에게 타문화 전도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4. 예수님의 사역, 죽으심, 부활, 죄사함을 증거함 (적용적해석: 오직 예수 메시지)
  
36절=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43절=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한 메시지는 ‘오직예수’ 신앙의 메시지였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이 온통 관심을 쏟았던 정치나 국제관계, 사회적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예수님의 사역과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마귀에게 눌려 모든 자를 고치시고 건지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기름부음에 대한 말씀, 둘째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그리고 셋째는 다시 사신 예수님에 관한 선포입니다.

베드로는 이 핵심적인 사실들이 보여주는 의미를 도출하며 결론을 짓습니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43절).

오늘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이 세상에 ‘오직 예수’의 메시지가 의미 없다 한다면 그 어떤 메시지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은혜와 진리의 성육신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그 은혜와 진리를 직접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내가 예수님을 직접 아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온 가정이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주의 성령으로 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 속에 사랑과 능력이 들어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담대히 소개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부으심을 받고, 오직 예수의 메시지를 담대하게 전하는 주님의 증인들이 되어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순오 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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