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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치는 감사의 삶 (골 2:6-7, 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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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감사의 삶 (골 2:6-7, 출 23:16)


7월 첫 주인 다음 주일은 우리나라 대다수의 교회들이 지키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이 맥추감사절은 사람에 의해서 정한 절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셨으며 지키도록 명령하신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 말씀에“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된 거룩한 절기인 맥추감사절 전 주일인 이 시간“넘치는 감사의 삶”이란 제목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컴퓨터에는 검색 기능이 있습니다. 어떤 단어를 치면 그 단어와 연관된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컴퓨터보다 더 탁월한 기능을 가진 것이 인간의 뇌라고 합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뇌 연구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라는 말을 하면, 뇌의 검색 기능이 작동해서 감사에 해당되는 더 많은 자료들을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타의 구별이 없습니다. 

나의 감사이든 남의 감사이든 상관없이 감사를 말하기만 하면 감사에 관한 내용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술의 말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 18장 21절에“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의 검색기능은 단순하게 감사의 내용만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난관을 이겨내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육군장교 시절 문서 위조죄로 시베리아 정치수용소에 11년 동안 감금되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강제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화병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사의 검색기능으로 밝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수용소 군도”라는 대작을 저술했습니다. 그 책으로 인해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솔제니친이 말한 첫마디는“Thank you Prison”(고마워요 감옥)이었습니다. 감사의 검색기능은 이처럼 사막에서도 꽃이 피게 합니다. 

기도할 때에 간구보다 감사를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하되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 초반에 간구부터 시작하면 온통 문제만 검색됩니다. 결국 문제에 짓눌려 기도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감사로 시작하는 것이 기도의 지혜입니다. 감사를 먼저 하면 감사의 검색기능이 작동해서 온갖 감사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심령 속에 감사로 채워지면 힘이 생기고, 문제를 쉽게 풀어갈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왜라고 묻지 말고, 어떻게 라고 물어야 합니다.“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묻지 말고“어떻게 하면 해결 될까”라고 물어야 합니다.“왜 저 사람은 저모양인가”하지 말고“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까”를 물어야 합니다. 감사의 시각은 대안을 만들어 내고, 열매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인 골로새서는 박해로 인해 로마 감옥에 수감 중인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이므로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생명같이 소중한 자유가 박탈된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를 향해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되“넘치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넘친다는 이 말씀은“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하되 이처럼 감격에 찬 풍성한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一. 왜 이렇게 감사해야 합니까?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록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시편 23편 1절~6절에 시로 표현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 23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은총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주님은 그를 섬기는 성도들을 지키시되 양떼를 지키는 목자처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십니다. 사악한 원수로부터 보호하시며 승리케 하십니다. 그 지키심은 평생 동안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은 밀 보리를 수확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밀 보리를 보셨습니까? 요즘은 농촌에 가도 밀과 보리를 보기 어렵습니다. 밀 보리농사는 저소득작물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밀 보리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60여 년 전 지구상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지금은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복이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이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장 6절~8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토록 넘치는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되 넘치는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생명의 주님을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말씀하시기를“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혀 자격이 없는 죄인인 우리들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감격하여, 강물이 제방을 넘치듯, 넘치는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성자로 널리 알려진 성 프란시스를 괴롭히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하루는 두 사람이 격렬한 신앙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 앞에 한 걸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걸인은 맹인으로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프란시스코가 맹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내 명령에 순종하겠소?" 맹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디 순종뿐이겠습니까?. 평생 선생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섬기겠습니다." 프란시스코는 무신론자인 친구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이 맹인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면 평생 노예가 되겠노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자네는 밝은 눈과 명석한 두뇌를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그 친구는 그때서야 자신의 우둔함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넘치는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되 강물이 제방을 넘치듯 풍성한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2.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는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는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말씀에“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행하는 것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넘치는 감사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넘치는 감사가 있습니까?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없다면 우리들의 심령은 탐욕으로 가득한 형식적 신앙생활로 변질되어가는 증거입니다. 이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저주하신 그 나무는 곧 말라 죽었습니다. (마태복음 21:19) 이처럼 감사함은 신앙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든든히 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나무에 비유하여“뿌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그 나무의 뿌리가 어디에 심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도 그 나무의 뿌리가 어디에 심겨져 있는가에 따라 나무의 성장에 큰 차이를 나타내게 됩니다.“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하셨는데“그 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안에 삶의 뿌리를 내린 성도는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감사에 뿌리를 내릴 때 감사의 진액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되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린 삶이 감사라면, 원망과 불평은 어디에 뿌리를 내린 삶이겠습니까? 마귀 사탄에게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감사에 뿌리를 내린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본문 7절에는“그 안에....세움을 입어....”라고 하셨습니다. 세움이란 신앙생활을 건물에 비유한 것입니다. 건물은 세워진 위치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큽니다. 같은 아파트라 할지라도 서울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관 좋은 아파트는 값이 훨씬 더 비싸다고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 위로 떠다니는 유람선, 그리고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은 또 다른 안식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며, 우리의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감사함의 조건입니까? 아니면 불만스럽고 원망스러운 조건만 바라보십니까? 이러한 시각의 차이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행복하여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터 위에 우리들의 삶의 집을 세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감동이 됩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남편 잃은 목사의 아내는 어렵게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아들도 그런 어머님의 뒷받침에 부응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고생하시는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이 명문 프린스턴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수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수석졸업자에게 주는 금메달을 받을 때, 어머니를 연단으로 불렀습니다. 어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어드리며“이 메달은 17년 동안 내게 감사를 가르쳐주신 어머니의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훗날 192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입니다. 

이처럼 역경속에서의 감사는 고난을 헤치고 승리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메마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크고 좋은 일에만 감사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쌀 한 톨을 만들려면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뜻의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버리고 또 전혀 아까워하지도 않는 쌀 한 톨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 쌀을 위해 땀 흘린 수많은 손길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二.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1.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원문의 뜻은“깊이 생각한다.”“숙고한다.”라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감사한 일이 깨달아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11편 1절에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의식을 갖추어드리는 예배도 있어야 하고, 준비된 예물도 있어야 하지만, 이에 앞서 깊이 생각하며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온 마음을 다해 하나하나 찾아 깨닫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자세입니다. 

2. 찬미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6절에“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했습니다. 즐거운 날 사람들이 모인 곳에 거의 빠짐없이 있게 되는 것이 노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음악과 노래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미개한 지역의 사람들이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음악과 노래는 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음악과 노래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어디에나 찬송이 있습니다. 오늘 같은 맥추감사절은 더욱더 기쁨이 넘치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3. 정성된 예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제정하시면서 기키는 방법에 대해 신명기 16장 16절~17절에 말씀하시기를“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빈손)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하셨습니다. 시편 96편 8절 말씀에도“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감사의 예물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9장 6절~9절에 말씀하시기를“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물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곡식을 땅에 심고 거두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드리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9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씨앗을 땅에 심으면 수십 배, 수백 배를 수확하게 되듯, 더 많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 편에서 볼 때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물을 답례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주시고자 심고 거두는 씨앗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 이 땅위에서의 풍성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21절 말씀에는“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다가 때가 되면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본향 하나님나라입니다. 그곳에 갔을 때 상급으로 되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 한다면 보험과 같습니다. 마지막 죽어서는 하늘나라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서 먼저 보낼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가 2008년도“한국 여성 지도자”상을 YMCA에서 수상했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기를“우주인이 되기 위해 무척 힘든 훈련과정을 거쳐서 우주에 갔다. 지구에서 우주까지의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정도 되는데, 우주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불편했다. 우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지구에 도착했을 때, 지구는 너무도 아름답고 공기가 쾌적했다.‘그때 나는 생각하기를, 이렇게 아름답고 쾌적한 지구에 관연 내가 살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지구를 떠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감사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생활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아픔과 슬픔을 많이 겪었습니까?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습니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을 받았습니까? 뜻하지 않은 손해로 고통 받고 낙심한 적이 있었습니까?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까지 견디게 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그 손길을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림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본다면 더 많은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향상 잃어버린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남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심령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심령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심령을 도우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심령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이 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연작(燕雀)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미물 같은 우리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어찌 다 알겠습니까?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되 넘치도록 감사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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