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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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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시 100:1-5)


(시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00: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옛날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증기선을 탄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습니다. 출렁출렁 파도와 함께 미국으로 가는  배 속에서 그는 무척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어서 그 좋은 식당 근처에도 못가고 준비한 비스켓만 먹고 지냈습니다. 한달을 이를 악물고 그렇게 고생하며 여행을 하던 청년이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식당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지배인에게 사정이야기를 말하며 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먹다 남은 것이라도 좋으니 식사  좀 하게 해주십시오. 비스켓에 질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배인이 놀란 눈을 뜨고 이 청년을 보더니, "아니 그럼 이제껏 굶었다는 것입니까? 이런 세상에 당신이 이 배를 탈 때 산 승선표에는 모든 식사와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는 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지내는 동안에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도록 다 함께 주셨습니다. 축복과 은혜는 별도의 옵션이 아니라 구원에 다 포함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아낌없이 주십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할렐루야! 은혜의 보좌입니다.  심판의 보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잔뜩 쌓아 놓고 나아오기만 하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쌓아 놓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은혜는 넘칩니다.  풍성합니다.  
  
우리가 그 보좌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날마다 보좌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앞에 나아가면 좋은 은혜를 아낌없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매 주일마다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앞으로 나아가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까?  
  
  1.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2상)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모든 기쁨을 얻으려고 세상으로 나가서 방황합니다. 재물을 물쓰듯 합니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재미있게 놀아 봅니다. 온갖 죄의 열락에 빠져보지만 그는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무하고, 공허하고, 그럴수록 더 방탕하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다 잃고서야 깨닫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언제나 풍족하였는데, 기쁨이 가득했는데.. 그래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길 때 비로서 아버지의 품안에서 큰 기쁨을 얻습니다. 아버지의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뜹니다. 그래서 너무 행복합니다. 아버지의 기쁨이 자신을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는 참 사랑에서 온 것임을 알기에 기쁩니다. 가난하다가 부유해져서 누리는 기쁨이 아닙니다.  참 사랑을 깨닫고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디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기뻐해야합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기쁩니다. 주님이 내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고 구원해주시니 기쁩니다. 주께서 내 형편을 아시며 내게 감당할 힘을 주시니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시편 37편 4절에는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저는 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교회안에서 아이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싶고, 볼에 뽀뽀도 해주고 싶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저를 보면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하고 사탕 하나를 주어도 고맙습니다 하며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안아 주려고 하면 거부합니다. 내가 먼저 안녕 하고 인사를 해야 마지못해 인사합니다. 그러면 조금 섭섭합니다. 지난 주일에 예은이가 제 방에 와서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하며 주스를 한 병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하고 안깁니다. 그래서 주스를 냉장고에 넣다보니 마침 조그만 초코렛 한봉지가 있어서 "예은아, 주스 고맙다."하고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주간 내내 '목사님께 초코렛 받았다.'고 자랑을 하더랍니다. 많은 아이들이 저를 반가와하지만 늘 그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은이는 언제 보아도 반가와합니다. 볼 때마다 반가와합니다. 정말 열렬한 팬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도 내가 예은이만큼만 하나님을 반가와하고 즐거워한다면 무척 기뻐하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앞에 나갈 때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러 올라오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부를 때, 기도를 할 때, 말씀을 들을 때, 헌금을 드릴 때 모든 때에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나아와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기뻐하며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 있을 때에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드릴 때 큰 은혜가 임합니다. 풍성한 축복이 임합니다. 그래서 기뻐하면서 드리는 예배가 참 귀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근심에 눌려서 살았더라도 하나님앞에 기쁨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기븜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기븜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 즐겁게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1. 2하)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찬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을 하도록 선물을 주셨습니다. 찬양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 중심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구속해주신 이 엄청난 은혜에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찬양의 배경은 언제나 해방에 있습니다. 자유함을 얻어야 찬양이 나옵니다. 찬양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찬양이 나옵니다.  구속함을 받은 축복이 있어야, 은총이 있어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 나옵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어 노래방으로 갑니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대체로 인생의 허무와 슬픔, 지난날의 상처를 노래합니다. 지난날의 아팠던 상처, 외로움, 슬픔을 노래합니다.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노래하는 것이 세상노래입니다. 그 노래에는 소망이, 내 영혼에 힘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은 위로받으려고 하지만은 상처는 상처로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낙심 된 사람은 낙심된 노래로 치료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병든 사람이 병든 노래로 치료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찬송할 수 잇는 특권이 있습니다. 시편33편 1절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송 할 때 마귀가 물러갑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에 보면 다윗이 수금으로 연주하고 노래 할 때에, 사울 왕에게 있던 악귀가 모두 다 떠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찬송하면 물러갑니다. 여러분 가정이 답답하십니까? 가정에서 찬송을 불러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송하면 두려움과 불안이 물러갑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잡혀가 심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간수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렇게 찬송 할 때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감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묶고 있던 쇠사슬도 다 풀렸습니다. 간수와 그 가족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빌립보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찬송하면 내 가는 앞날 길이 열립니다. 묶고 있는 사단의 저주가 다 풀립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환경이 밝고 환하게 바뀝니다.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 어두운 이 감옥은 세상이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베토벤은 서른두 살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 유서의 내용은 "잠시 후면 나의 생은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 불온한 존재여!"하고 자기를 절망 중에 비관하면서 유서를 적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 중인 인생이라도 주의 품안에 안기우면  절망과 불행은 물러갑니다. 세상속에서 받았던 아픔과 상처는 주님 품안에 오면 다 치유됩니다.  우리 모든 인간을 품어 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주  예수의 품안에 오면  영원한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있습니다.
   
베토벤은 주님의 품안에 안기면서  새 생명을 얻었고 기쁨이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작곡한 것이 바로 교향곡 심포니 No 9입니다. 베토벤이 은혜 받아가지고 새 사람이 되어서 예수 안에서 누린 그 기쁨이 바로 찬송가에 있습니다.  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인기와 명예와 돈으로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무함이 왔습니다. 자살하려고 유서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품안에 안겨서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고 그 기쁨으로 불후의 명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심포니 No 9는 곡도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입니다.   심포니 No 9은 정말 영감으로 충만한 최고의 작품입니다.  찬송가 13장을 한번 불러 봅시다.
  
♬(1절)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찬송가 13장을 부를때마다 깊은 어둠속에서 주님을 만나 새롭게 된 베토벤이 영감을 받아 기쁨이 충만하여 지은 노래임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베토벤처럼 즐거움으로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경배와 찬양팀이 앞에 나와서 찬양을 인도할 때 다른 것 보지 않습니다. 곡을 얼마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잘 부르나! 보지 않습니다. 누가 얼굴이 더 이쁜가!도 보지 않습니다. 그 얼굴에 얼마나 은혜가 넘치고 있나!를 봅니다.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얼굴이 밝고 환합니다.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바라보며 찬송을 부르다보면 내 마음에도 함께 은혜가 넘치고 내 얼굴도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께 즐겁게 찬송하면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찬송을 부르는 이들을 더 기뻐하시며 풍성한 복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3.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4)
  
세익스피어는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뱀의 이빨에 물리는 것보다 더 따가운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마다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큰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1886년 게이츠라고 하는 여사가 25세 되던 해 겨울 어떤 날이었습니다. 폭풍 한설이 휘몰아치는 무서운 일기로 말미암아 그 날의 모든 계획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게이츠는 불만과 불평, 아니 하나님께 대한 원망까지 퍼부으며 그날 자기의 계획이 취소된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안에서 창 밖으로 휘날리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집안에서 무언가 유익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하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해사가 못되면 배가 갈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지 않은가?
-나폴레옹이나 넬슨 제독같이 싸울  수가 없으면 상처받은 병사들을 나이팅게일처럼 싸매어 줄 수는 있지 않은가?
-보아스처럼 풍부한 추수를  할 수 없으면 룻처럼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는 있지 않은가?
-돈이 없으면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전 문 앞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는 있지 않은가?
-삭개오처럼 재산의 절반은 줄 수 없어도  과부처럼 동전 둘을 줄 수는 있지 않은가?
-오늘 눈보라가 친 것은 나로 하여금 무언가 다른 일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며 석판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1.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오라
만일 일기가 좋아서 게이츠  여사가 밖에 나가 자기의 볼일을 다 보았다고 한다면 오늘 여러분이나 저는 돌아오라는 애절한 아버지의 심정이 담아 복음의 멧시지가 생생한 315장 찬송가는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신 것을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일생의 최고의 미덕이  되는 것입니다. 야비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실락원)의 작가인 죤 밀턴은 한참 일할 때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밀턴은 그 불행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내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는 실명 후에 (실락원)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고난중에 감사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어둡고 험악한 환경을 만나 감사하면 더 큰 능력을 경험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면 진정한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언제나 감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처럼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은혜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오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나아오는 이들을 더 귀히 여기십니다. 즐겁게 찬송하며 나아오는 이들을 기쁘게 축복하십니다. 감사함으로 문에 들어오는 이들을 더 사랑스럽게 보십니다. 이왕이면 나아올 때마다 기쁨으로 찬송하며 감사하면서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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