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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얻으라 (잠 8: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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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얻으라 (잠 8:22-36)

    
설교내용      
 
한 성인이 나무 아래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우면서 살 수 있을까? 그 때 한 배고픈 귀신에게 쫓기던 비둘기 두 마리가 성인의 품에 안겼습니다. 뒤따라온 귀신은 성인에게 “배고파 못 견디겠소, 내 먹이를 내놓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성인은 “안돼, 이 가련한 비둘기 내 놓을 수 없다. 그 대신 비둘기 생명의 무게만큼 내 살점을 떼어 가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은 양손 저울을 가지고 왔습니다. 양쪽의 무게를 달아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입니다. 

그는 넙적 다리 살점을 떼어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비둘기 쪽이 더 무거워 저울이 기울어졌습니다. “조금만 더 떼어내 올려놔봐.” 그래도 비둘기가 무거웠습니다. 다시 조금 더 떼어내 올려보았지만 그래도 비둘기가 더 무거웠습니다. 그 때 성인은 저울 위에 자기 몸을 올려놓았습니다. 비로소 저울은 평형을 이루었습니다. 그 때 귀신이 도망쳐버리고 말았고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작은 비둘기의 생명 무게지만 사람의 생명 무게와 버금갑니다. 모든 생명을 아끼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물며 인간의 생명이야 얼마나 더 귀하고 무겁겠습니까? 마가복음 8:36에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생명의 이야기입니다. 지혜를 말하지만 그 지혜는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일하시기 전에 있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세상이 지어지기 전에 땅이 생기기전에 바다가 있기 전에 하나님과 있었다. 그 지혜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그 지혜로 그 말씀으로 그 생명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지혜를 부으시고 그 말씀을 채우시고 그 생명으로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30절에 보세요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로고스요, 지혜요 생명이요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좋았더라 좋구나, 참 좋구나 하시며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좋아하신 것이 무엇을 보고 좋아하신 것입니까? 생명의 조화들입니다. 모든 만물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늘도 살아 있고 땅도 살아 있고 바다도 살아 있고. 짐승도 살아 있고 식물도 나무도 살아 있고 새들도 살아 있고 그래서 기뻐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사망은 우리의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생명의역사이지 죽음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뜻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생명을 주기위하여 오신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받아 영생의복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0:10에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에 해당되는 ‘조에’라는 단어는 복음서에 52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 중 36회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대표적 주제는 생명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나는...이다”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자기를 증명하는 말씀입니다. “나는...이다”(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양의 문이다”, “선한 목자이다”, “부활이요 생명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참 포도나무이다”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십니다. 일곱 번의 자기 증명 가운데 생명이란 말이 세 번이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증명은 ‘생명’입니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에는 생명의 빛, 생수, 살아 있는 떡, 영이요 생명, 영생의 말씀 등의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온통 생명으로 가득한 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거짓 스승들이 종종 교회로 들어올 것을 미리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타나는 도둑은 거짓 교훈을 가진 자들입니다. 도둑은 생명을 훔치는 지도자입니다. 이단들의 집단자살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오대양 사건이 그 한 예입니다. 1987년에 32명의 무고한 교인을 죽게 하였습니다. 영생교 사건도 그렇습니다. 1999년 강원도 남대천에서 7명의 교인이 승합차에 불이 난 채 죽어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인민사원 사건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1978년 짐 존스라는 교주가 914명의 추종자들을 집단 자살하게 하였습니다. 그 외에 크고 작은 자살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생명을 훔쳐가는 도둑의 짓입니다.

최근 이단의 교회 침투가 심각합니다. 그 중에서 ‘신천지’라는 이단이 있습니다. 이만희라는 교주가 오래 전 ‘장막성전’이란 이단의 분파를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의 현장이 ‘장막성전’이 있던 청계산이랍니다.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도요한적 사명자를 만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아가서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만이 새 언약이며 신약과 구약은 모두 무효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신천지’에서 탈퇴하면 3대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전하는 내용들이 전형적 이단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각 교회에 침투하여 위장 등록을 하고 교인들을 현혹하고, 교회를 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의 누가 위장 투입되었는지 다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단과는 타협이 되지 않습니다. 설득도 되지 않습니다. 발견 즉시 당장 쫓아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일은 가정을 파괴 시키고 생명을 죽이고 멸망시키기 때문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참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의 진정한 유익을 구하십니다. 양들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며, 또한 그 생명을 풍성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은 내 것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생명의 근거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36:9에는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합니다. 생명의 근거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나무, 생명 샘, 생명 강이 있습니다. 어디 풍경인지 아세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죽음이 없으니 생명밖에 있을 것이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생명으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잉태하고 살려야 합니다. 

제가 총회를 섬길 때 태안반도에 기름유출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회부 총무로부터 긴급전화가 왔습니다. 총회장님 서해안에 배에서 원유가 쏱아져 서해안이 온통기름바다랍니다. 저는 임원과 해당부서를 긴급소집하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든 생태계가 기름으로 죽어가는 모습이 처참했습니다. 전국노회에 긴급 연락을 하고 교단마다 협력체계를 만들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다 달라 들었습니다. 생명 살리는 일에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서해안 때 기름띠를 거두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은 생명을 살리는데 오염된물에서는 생명이 죽는구나.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데 오염된 교회는 생명을 죽이는구나. 신앙은 생명을 살리는데 오염된 신앙은 생명을 죽이는구나.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데 오염된 사랑은 생명을 죽이는구나. 

오염되지 않아야 합니다. 맑은 물이 되어야 합니다.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사람도 마시고 동물도 마시고 삽니다.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시를 지나가는 강물은 아무도 마시지 않습니다.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끔 내게 와서 마시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생수, 생수의 강, 샘물, 모두 물인데 물을 이렇게 말씀 하신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기 예수님의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물은 생명을 줍니다. 예수님은 생명의근원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물은 겸손합니다. 언제나 낮은 곳으로 모이고 내려 갑니다. 억지로 위로 올려도 기회만 되면 아래로 내려 갑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 주시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 가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물은 포용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감사 줍니다. 막으면 돌아갑니다. 그릇에 담으면 그릇모양으로 변합니다. 세모난 그릇에서 세모가 되고 네모난 그릇에서 네모가 됩니다. 누구도 배타하지 않고 수용합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세리도 받아 들였습니다. 창녀도 받아 들였습니다. 가난한 자들도 받아 들였습니다. 누구나 받아 들였습니다. 

물은 가장 부드럽지만 가장 강합니다. 물속에 손을 넣어 보세요 거부하지 않습니다.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바위에 손을 넣어 보세요 넣을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넣으려고 했다가는 손이 깨지고 피가 납니다. 바위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위는 물을 구멍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은 바위를 구멍 냅니다.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나 세상을 이겼습니다. 마귀를 이겼습니다.

물은 영원합니다. 물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물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감사할일입니다. 물은 뜨거우면 기체가 되어 날아갑니다. 차가우면 고체가 되어 얼음이 됩니다. 따뜻하면 물이 되어 흐릅니다. 지구위에서 그 일을 반복하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자연 속에서 영생을 배웁니다. 물은 우리 몸속에 들어갔다 가도 그대로 나옵니다. 소변으로 나오고 땀으로 나오고 눈물로 나오고 다 나옵니다. 나오면서 우리 몸을 정하게 하고 생명을 줍니다. 여러분 우리 몸 구석 구석까지 여러분의 피부에까지 영양분을 공급하고 마르지 않게 하고 생명을 공급 해주는 것이 물입니다. 물이 없으면 핏줄이 다 막히고 피부가 다 마를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 고 합니다. 주님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습니다. 35절에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잠언서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생명이라고 합니다. 잠언에는 생명이란 단어가 41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라는 말은 거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잠언 3:18에는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합니다. ‘생명나무’는 히브리어로 ‘에츠 하임’이란 말입니다. 영생과 참 평안의 원천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연관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대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생명나무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주님 앞에 나와야 지혜를 얻습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정경 외에 외경과 위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세기의 위경에 ‘디오그네터스 서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서신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모든 것에 풍성하였다. 그들은 학대당했지만 학대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였다. 그들은 선행을 베풀었지만 행악자로 처벌받았다. 처벌받는 가운데 새 생명을 얻고 기뻐했다.”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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