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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하는 삶이 기쁘시게 합니다 (시 69:30-31, 롬 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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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는 삶이 기쁘시게 합니다 (시 69:30-31, 롬 15:10-12)


음악사에 보면 모든 국가들이 전쟁에 음악을 사용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때에 중공군은 피리와 징을 사용하여 중공군이 진격할 때마다 요란한 소리에 아군이 혼란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에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를 고무시켜 전쟁에 승리하게 하는 중요한 전략인 것입니다. 군가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아군의 음악소리는 적군의 마음을 약하게도 만들기도 합니다. 
  
옛날 신라시대 한 전쟁에서 적군의 수가 신라 군사의 수의 배가 되었습니다. 신라가 승전의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 영리한 장군이 피리 부는 병사를 동원하여 처량한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적군이 이 피리소리를 듣고 고향과 부모와 처자가 생각나게 한 것입니다. 결국 적군은 배나 되는 많은 병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병사들이 전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음악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의 힘은 그 이런 음악의 힘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역할은 다양합니다. 천사들은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합니다. 메신저 역할을 하는 천사의 장이 가브리엘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군대의 역할도 합니다. 군대의 역할을 하는 천사의 장이 미가엘입니다. 그런데 메신저이든 군대이든 모든 천사의 공통적 역할은 찬양입니다. 이사야 6장에는 스랍들이 등장합니다. 스랍들은 천사들인데 “서로 불러 이르되”라고 합니다. 천사들이 합창을 한 것입니다. 천사들이 한 합창의 내용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상투스”를 노래한 것입니다. 천사들이 노래할 때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연기가 충만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얼마나 크게 찬양했으면 문지방이 흔들렸겠습니까? 이렇게 찬양은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눈 온통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처음 세상에 오실 때도 천사들의 찬양과 함께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세상에 다시 오실 때는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찬송이 끊이지 않습니다. 찬송은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시편 전체가 찬송입니다. 성도의 삶이 찬송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찬송소리가 우렁찬 교회가 은혜롭고 힘이 있는 교회입니다. 찬송소리는 은혜와 비례합니다. 찬송소리가 우렁찬 이런 교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찬송소리가 작고 찬송에 힘이 없는 교회는 항상 문제가 있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언가 교회가 기운이 빠진 교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송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찬양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찬송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찬송으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압니다. 찬송할 수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찬양은 목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입니다. 역대상 25장에는 찬양대가 등장합니다. 아삽, 헤만, 여두둔의 자손 중에 구별하여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역대상 25:7에는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라고 합니다. 당시에 찬양대원의 수가 이렇게 많았습니다. 에스라 2:65에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라고 합니다. 당시에 찬양대원의 수가 200명은 기본입니다. 찬양대가 번성해야 교회가 번성하고 예배가 은혜롭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선물들 안에서 더 푹 쉴 수 있게 해주는 두 가지 영적 연습은 찬양과 감사입니다. 찬양은 감사보다 큽니다. 찬양은 순전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 자체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공부 잘 하는 것입니까? 돈을 잘 버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입니까?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부모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찬양하는 것이며 영광입니다. 우리의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 기쁘시게 합니다. 

시편 69:30에는 “내가 노래로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송 가운데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의 근거는 하나님의 구속의 표현입니다. 구속받은 것이 찬양의 목적입니다. 예레미야 31:11에는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라고 합니다. 12절에는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위대하십니까?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위대합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미리암의 찬송을 보세요. 시편 98:1에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 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은 우리의 끊임없는 찬송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수도원에서는 매일 아침 이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 자기들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래를 청합니다. 시편 137:4에는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라고 합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 그들은 찬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포로지에서 해방하여 본국에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찬양을 회복하고 다시 찬양합니다. 
  
18세기 영국 교회의 목사이며 영성가인 윌리엄 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인 누구인지 알고 있나? 그것은 기도 가장 많이 하거나 금식 많이 하는 사람 아니다. 헌금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는 사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표로 받고 늘 그로 인해 마음에 하나님을 찬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찬양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성인의 일입니다. 찬양하므로 우리 모두가 훌륭한 성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욥기 1:21에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라고 합니다. 찬송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다 잃고 찬송하는 사람이 진짜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망하고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찬송은 영혼의 복입니다. 찬송은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영신수련’에서 “모든 좋은 선택에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인 한,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창조된 목적인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만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찬양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피조물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곁에서 찬송을 많이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가무민족이라고 합니다. 노래를 즐기고 많이 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 민족은 모내기를 할 때도 노래를 합니다. 방아를 찧을 때도 노래를 합니다. 함께 모여 강강술래도 합니다. 심지어 상여를 매고 나갈 때도 노래를 합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가무 민족을 넘어서서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찬송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것보다, 구제하는 것보다, 전도하는 것보다, 봉사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찬송을 더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둘째, 찬송하는 것이 황소를 드림보다 기쁘시게 합니다. 

시편 69:31에는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완전한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찬송을 드림이 여호와를 더 기쁘시게 합니다. “소 곧 뿔과 굽이 있는”이란 말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로서 전혀 흠이 없는 소를 말합니다. 
  
제사용 제물은 다양했습니다. 아주 가나난 사람은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렸습니다. 보통 평민들은 양이나 염소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소를 드리고 특히 황소를 드리는 것은 최고의 예물이었습니다. 가장 귀한 제물이 소였고 당시 사람들은 황소는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제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동일하십니다. 거액의 봉헌을 한다고 해도, 수많은 전도를 하였다고 해도, 아낌없는 봉사를 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찬송이란 말입니다. 
  
베드로가 전도하였을 때에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다비다가 과부들에게 극진한 봉사를 하여 죽었지만 장사지내지 않고 시체를 씻어 다락에 두어 다시 살게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도들의 발아래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은 비싼 향유를 다 붓고, 눈물로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사신의 역할을 잘 한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싸움을 잘 한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찬송을 잘 하니까 기쁘시게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찬송하는 것보다 더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찬송하는 것보다 더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 뭘 드리겠습니까? 황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고 더 중요한 것은 찬송입니다. 선물할 것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할 만한 것이 없는 부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도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드릴 수가 있습니다. 찬송을 드림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찬송은 누구나 다 드릴 수가 있습니다. 찬송 없는 황소의 제사가 필요 없습니다. 찬송이 없는 황소의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물질은 절대로 찬송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어느 사찰의 정안스님이란 분이 귀신을 쫓는 음반 ‘카르마’를 내 놓아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록앤롤’이란 음악이 있습니다. 사탄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성을 자극하고, 마약을 권하고, 자살을 충동질하고, 폭력을 조장하고, 이방신을 섬기게 하고, 사탄숭배를 권장하는 음악들이 있습니다. 음악의 힘은 대단합니다. 사탄도 음악을 좋아합니다. 음악은 가장 빨리 사람을 감동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찬송을 우상 숭배하는 도구로, 헛되게 사용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아모스 6:5에는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라고 합니다. 옛날 성경에는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헛된 노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닌 노래를 싫어하십니다. 이사야 42:8에는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릴 찬양을 헛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찬양이 죽으면 교회가 죽습니다. 찬양을 잘 못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큰 소리 찬양하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이 없는 교회나 찬송을 약화시킨 교회는 약화됩니다. 퀘이커나 메노나이트와 같은 음악이 없는 교회는 쇠퇴하고 자라지 못합니다. 찬송을 높인 교회, 찬양소리가 큰 교회가 부흥되고 활기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찬양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전 재산을 다 바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이 한참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리스에게 이겨서 사기가 충천이었는데 아르헨티나에게 져서 약간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에게 이기면 16강 진출이 가능합니다. 나이지리아는 두 번다 졌는데 진 김에 태극전사에게도 져 주면 좋겠네요. 

그런데 남아공 관중들이 불어대는 ‘부부젤라’라는 전통 악기가 있습니다. 마치 벌떼가 집단으로 몰려오는 소리 같습니다. 이 악기는 코끼리 떼에게 물을 마시우기 위해 물을 발견하면 코끼리를 불러 모으기 위해 사용하거나 동료들을 모아 힘을 합하여 전투를 독려할 때나 경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부부젤라’를 불 때 나는 소리는 127dB이라고 합니다.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입니다. 잔디 깎는 기계가 90 dB이고, 전기톱이 100 dB이고, 보통 사람이 대화할 때가 60dB인 것을 보면 이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프기 시작하는 소리가 120dB이고 제트엔진은 130dB라고 합니다. ‘부부젤라’의 소리는 귀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북소리나 꽹과리소리는 저리가라입니다. 악기나 음악이나 노래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기분을 상승시키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기분이 상승될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귀가 자신의 작전용 도구를 경매하였답니다. 이것저것 다 팔고 맨 마지막에 자신의 비매품을 가지고 나와서 경매에 붙였습니다. 절대로 팔지 않던 그 비매품이 무엇이냐 하면 낙담과 근심이었다고 합니다. 낙담과 근심은 가장 강력하고 비밀스런 무기입니다. 가장 비싼 마귀의 작전용 도구는 찬송하지 못하고 하는 것들입니다. 찬송하면 낙담이나 근심은 사라집니다. 
  
야고보서 5:13에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합니다. 찬송은 고난을 물리칩니다. 찬송하는 삶은 힘을 얻습니다. 내가 힘을 얻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내가 힘을 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찬송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결론 

유다의 입술은 배반의 키스를 퍼부은 입술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 유다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었습니다. 유다라는 그의 이름의 뜻은 ‘찬양하다’입니다. 찬양할 입술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팔거나,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근심의 독을 내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이 찬송하는 입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한 주간도 열심히 찬송하고 하나님께 많은 영광 돌리면 근심도, 걱정도 염려도 사라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찬송은 영원히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근심이나 걱정이 없습니다. 이 세상나라에서 이미 찬송하는 자들이 우리에게 찬송이 구원의 은혜이기를 바랍니다. 매일 우리의 입술에 찬송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찬송으로 힘을 얻고 찬송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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