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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사 6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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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사 66:1-4)  


하나님은 하늘을 보좌로 삼으시고, 땅을 발등상으로 삼으시는 분이시다. 그는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성전이나 다른 어떤 한 곳에 제한적으로 갇혀 계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그는 온 우주를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이 우주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분으로서 그 만큼 높으신 분이요, 영광스러우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과 비교될 만한 그 어떤 피조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 

여기 2절에 “돌보신다.”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보호하신다.” “깊이 관여하신다.” “책임을 지신다.”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때 가장 행복하고, 안심하며,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세상의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세상에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만 하시면 아무 것도 염려할 것 없다. 

돈 없는 것이나 병든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 더욱 큰 불행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자가 되려고 하기보다,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기 바란다. 


1.마음이 가난한 자를 돌보신다.(2)

여기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적인 마음으로 곧 “겸손한 마음”이다. 자신에게는 죄를 비롯한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해 줄 구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식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를 가리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갈망하고, 찾는 사람이다. 영적인 것은 자신의 부족함과 궁핍함을 알고 사는 사람만이 얻는 것이다.(마5:3)
“경제적인 가난”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실 수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마음에만 계신다. 왜냐하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항상 갈망하고, 사모하기 때문이다. 

“가난하다”는 말은 물욕과 정욕, 사욕을 다 버리고, 지극히 낮은 자리에 처하여,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신의 실상을 알아야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은혜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가난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주고, 교회를 나와 주고, 연보도 드려주고, 교회 일에 봉사해주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돌보아 주신다.


2.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돌보신다.(2)

(시34:18, 시51:17, 마5:4)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그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그 죄로부터 돌아서는 사람을 돌보신다. 

오늘날 인간의 질병 중에 가장 큰 질병은 죄를 짓고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곧 양심이 마비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붙들고,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자복하는 자를 돌보신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두 가지 눈물이 있어야 한다.
①감사의 눈물 ②회개의 눈물이다.

마3:2과 마4:17에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로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는 말씀이었다. 

렘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이라고 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대로 놔두면 육체의 소욕대로 발전하여 동물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그 위치로 볼 때,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그리고 주님과 악마의 중간에, 선과 악의 중간에 있는 것이다. 이 중간에 서 있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어느 한 쪽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결심하고 악에서 떠나 선으로, 악마에게서 떠나 주님께로, 지옥의 길에서 떠나 천국의 길로 향하는 태도가 바로 통회인 것이다.

완전한 회개란 단순히 눈물만 흘리고,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참된 통회에는 ①지적인 요소. ②감정적인 요소. ③의지적인 요소.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원문 상 여기의 “통회”라는 말은 “죄를 깊이 뉘우치고, 그 죄를 끊어버리는 태도” 를 가리킨다. 


3.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2)

“떤다.”는 말씀은 “극한 두려움”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려움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벌벌 떨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날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아무 감각이 없고, 그 말씀 앞에서 떠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웃는다.

롯의 사위들은 장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 행26:24에 의하면 베스도 총독은 바울의 말을 듣고 “네가 미쳤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참된 말은 믿지 않고, 거짓은 얼마나 잘 믿는지 모른다. 요시야 왕은 서기관 사반이 읽는 율법 책의 내용을 듣고 “자기의 옷을 찢으며” 모든 백성을 모아놓고 그 율법 책을 들려주었으며,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 모든 백성이 함께 두려워하였다.

요나3:5-10에 보면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왕과 모든 백성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하나님 앞에 회개 자복하여 멸망을 면하였다고 말씀하였다.

느8:5-9에 의하면 포로에서 귀환한 남녀노소 무릇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다 모여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낭독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나무 강단에 서서 책을 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모두 “일어섰다”고 했다. 그리고 율법을 낭독할 때 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손을 높이 들고 “아멘. 아멘”하며, 응답했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우리가 어찌할까?” 하는 이런 두려운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돌보아 주신다.(행2:37 행16:30 눅3:10-1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할 줄 아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돌보아 주신다.


결론.

이런 마음이 없이 소나 양을 잡고, 분향을 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누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있는가? 
①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②심령에 통회하는 자이다. 
③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두려워 떠는 자이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여러분이 모두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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