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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왕상 2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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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왕상 21:17-19)

 
사냥을 몹시 좋아하는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냥꾼이 독수리를 잡기 위해서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런데 숨을 죽이고 자세히 보니 독수리가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면 총에 맞아 죽을 줄도 모르고... 독수리는 뱀을 잡아먹기 위해서 노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뱀도 역시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노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꼼짝하지 않고 뭔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무당벌레를 잡아먹기 위해서 노려보고 있었고 무당벌레 또한 꼼짝하지 않고 진딧물을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사냥꾼은 슬그머니 총을 내려놓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도 또한 누군가 자기를 그렇게 노려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더러운 욕심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되는 이스라엘의 악한 임금 아합을 보게 됩니다.
아합은 왕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갖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는 텃밭 가꾸는 취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나봇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 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왕상 21:2)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값을 치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거절했습니다. 조상의 유산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나봇은 매우 고지식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못 이기는 척하고 포도원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 아닙니까? 속된 말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인데... 임금의 기분도 좋게 해 주고 또 더 좋은 포도원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인물이었습니다.

아합은 몹시 속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또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분해서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세벨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이세벨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겨우 그런 일로 고민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 포도원을 갖게 해 줄 것이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합은 악하지만 그렇게 독한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 두려운 줄도 알았던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방 여인 이세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악할 뿐 아니라 독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세벨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합에게 장담한 대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주었습니다. 이세벨은 나봇이 사는 성읍 어른들에게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뭐라고 썼습니까?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왕상 21:9~10)
과연 그들은 이세벨이 시키는 대로 나봇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아합은 결코 욕심을 내어서는 아니 될 것에 대해서 욕심을 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화려한 왕궁이 있었습니다. 아마 별궁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포도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텃밭 가꾸는 취미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텃밭 가꾸는 취미는 오히려 정신 건강에 좋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가 탐내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탐심을 가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왕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것이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할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의 임금이면 먼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이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뿐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욕심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욕심을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욕심은 큰 잘못입니다. 욕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을 탐내는 것이 욕심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욕심이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렇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은 바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며 만족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침내 주님이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반절)

아합은 본성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봇이 거절하자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근심하고 답답해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의 옆에서 악을 부추기는 자가 있어서 문제였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나서지 않았습니까? 이세벨은 마음이 약한 아합에게 핀잔을 주며 악을 행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세벨은 내조를 잘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이 택한 길은 모두가 함께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 주위에는 악을 부추기는 무리들이 있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아마 북의 김정일 위원장 주위에도 그런 무리들이 포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지도자들이 잘못한 경우보다는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소위 참모라고 하는 자들이 잘못해서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더불어 함께 망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세벨에게 동조하는 무리들이 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누명을 씌우고 그를 돌로 쳐죽인 자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과 불량자들이 바로 그런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알량한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불의한 권력과 타협하고 악을 행한 자들입니다. 악한 계획을 꾸미는 자들이나 그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하수인들이나 결국은 똑같습니다. 그런 자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옳지 못한 일에 자기들이 가진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둘렀습니다.
나봇은 탐욕스러운 그들 앞에서 아주 무력하게 죽어갔습니다. 결국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포도원을 빼앗겼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그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아마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이 세상은 불의한 세력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들이 오히려 더 큰 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약자들은 늘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고 고통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아합과 이세벨도 완전히 성공한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노하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을 향해서 분명히 꾸짖었습니다.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왕상 21:21~22)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약한 자,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억울하게 당하는 자들을 대신하여 보복하십니다. 아합은 풀이 죽어 다녔지만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일을 되돌려 놓지 않았습니다. 되돌려 놓을 수도 없었겠지만... 그냥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 텃밭으로 삼은 채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예후를 들어 그의 집을 치셨고 이세벨도 아주 처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사람이 갚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어코 갚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악하고 교활한 계략도 주님은 모두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봇의 억울한 죽음도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왕상 21:19)
오늘 우리에게 욕심이 있습니까? 받은 바 은혜에 만족하지 않고 탐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더 늦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고 처음 사랑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 보좌 앞에 섰을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상으로 받아 먹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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