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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결과 (엡 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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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과 (엡 5:21-3)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에베소서 5:21-33

미국 신문에 “일본, 매 맞는 아내들 반기를 들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본 아내들이 매를 많이 맞나 봅니다. 또 “영국, 가정 보호책 강화!”라는 제목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동서양이 문화는 달라도 가정문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가정들도 참 어렵습니다. 작년에도 많은 가정들이 이혼을 했는데, 그 이유는 ‘성격차이’가 43.8%로 절반정도입니다. 그 다음이 경제문제, 배우자의 부정, 배신 등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정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여성인권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선진국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전 세계에서 여성의 권리가 가장 잘 보장되는 나라는 노르웨이입니다. 미국은 12위,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18위로 가장 좋고 일본은 42위, 우리나라는, 매 맞는 아내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일본보다 아래인 53위입니다. 앞으로 미국 신문에 “한국 여성들, 폭동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한참 더 가야 합니다.

본문은 사도바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사도바울은 로마제국시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권리라고는 전혀 없던 시대입니다. 여자는 오로지 남편을 위해 존재하고 남편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한 노예와 같이 남자의 소유물에 불과하였습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일부 나라,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자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한 남자가 자기 마음대로 4명의 아내를 얻을 수 있고 언제든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혼했어!”, “이혼했어!”, “이혼했어!”라고 세 번만 외치면 그 여자와는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나와 결혼하자!”고 하면 그 여자와 결혼하는 거지요. 

여러분이 잘 아는 오사마 빈 라덴도 그의 아버지가 아내를 얼마나 많이 얻었던지 형제가 50여 명이나 됩니다. 이슬람 사람들은 한 번에 4명씩의 아내를 얻을 수 있잖아요. 오사마 빈 라덴의 자서전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젊은 여자를 아내로 삼고 딱 2주 함께 산 후에 “이혼했어!”라고 세 번을 외치고 그 여자를 자기 운전기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인간인데 여자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이슬람의 문화입니다. 

사도바울 시대에도 여자의 권리는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사도바울은 본문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아내가 남편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던 시대가 기독교로 인해 그 방향이 바뀌어 남편이 아내를 위해 사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25절). “교회를 사랑하시고” 다음에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당대의 가정관이나 부부관에 비추어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가정질서를 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에는 여자만 남자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사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문화권의 서양 국가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UN에서 실시한 여성권리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1등부터 10등까지의 상위권이 전부 서양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경제적으로는 세계 12위지만 여성의 권리는 53등입니다. 갈 길이 멀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문화를 보여주시고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결혼서약을 합니다. “나 000은 000을 아내(남편)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그대를 사랑하고 아끼며…” 그 다음에, 한국에서는 잘 안 하지만 본래 결혼 서약에는 “죽음이 우리를 나누어 놓을 때까지”라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고 아끼며 그대의 신실한 남편(아내)이 될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서약합니다. 아멘!”이라고 맺는 것이 결혼서약입니다. 

결혼식 당일에는 신랑 신부가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서약을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따라 하지요. 그런데 결혼식을 끝내고 생각해 보면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대단한 약속을 한 거예요. 자 이제 결혼은 했고, 이 약속은 지켜야 하겠고, 그러고 보니 너무 힘들어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약속은 했지만 도저히 못하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죄성을 가진, 연약하고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부족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모두가 고생입니다. “내가 서약합니다!”라고 해 봤자 죄성을 가진 죄인이기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어느 남자가 이혼을 하겠다고 법원에 갔습니다. 판사가 “당신과 당신 아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남자는 “우리 둘 사이에 쟁반 6개와 몽둥이가 날아갔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저도 그런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첫 휴가를 받아 누이 집에 찾아갔더니 옆집에서 갑자기 “와장창, 와장창”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 당시 한국 집들은 옆집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다 들렸잖아요. 분명히 싸우는 소리 같아서 문틈으로 살짝 봤더니 접시들이 날아가는데, 사기그릇이 아니라 플라스틱 그릇들이에요. 그때 ‘야, 저렇게 접시들을 날리면서 한 집에서 살아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 바로 성령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길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 속에 영원한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였으면, 우리 가슴속에 찾아오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결혼 출발 때부터 매일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는 혼자 힘으로 가족을 제대로 사랑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본문은 사실 18절부터 읽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절). 술을 많이 마시고 술기운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정신으로 해도 부족한데 술 취해서 어떻게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라. 그러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발견했을 때,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셨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떠나면 다른 보혜사를(나와 똑같은 도우미를)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가 오시면 그는 네 안에 계실 것이요 너와 함께 영원히 살리라.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라.” 그분에게 도움을 청할 때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노력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노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노력할 그 때 우리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매일 그분과 함께 살아가면 우리 속에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납니다. 

첫째, 우리 입술에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은 가사와 멜로디, 화음, 그 다이나믹함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느 찬송가를 펴더라도 그 속에는 생명, 사랑, 희망, 평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찬양은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깨끗하고 부드럽게 합니다. 용기와 힘과 소망을 줍니다. 게다가 찬송가 가사는 전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 가슴속에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이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눈으로 아내와 남편, 자식, 형제들을, 모든 사물을 봅니다. 성령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격스럽고 신비하고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교회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분이 계신데 그분이 강연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쁜 생활을 잠깐 멈추고 꽃 한 송이를 15분 동안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격해서 눈물이 납니다.” 저는 그런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양, 색깔을 보며 꽃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있나!’ 이 세상에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령에 충만하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세상이 달라 보이면 여러분 삶 속에 감격이 있고, 감격이 있으면 감사와 기쁨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셋째, 사람을 존중하게 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20-21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쳐다만 봐도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아름답고 신기하고 놀랍게 보입니다. 이 세상 만물 가운데 사람보다 신비로운 것이 없습니다. 한가할 때 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해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신기하고 놀랍습니까. “피차 복종하라”에서 ‘복종’은 ‘존중한다’, ‘귀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33절에서는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경외’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사람을 귀하게 봅니다. 찬송이 있고, 감사가 있고, 대인관계의 기술이 향상됩니다.

이어서 “아내들이여” “남편들이여” “부모들이여” “자식들이여” “상전들이여” “종들이여”라고 하면서 6가지의 인간관계가 펼쳐집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내들에게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볼 때 교회가 예수님을 바라보듯이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고 경외하라 하십니다. 남편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듯이, 교회가 주님을 바라보듯이 볼 때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존귀하고 가치 있는 남편을 나에게 허락하셨다.’ 이런 마음으로 남편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존귀하게 여기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인간 스스로 갖추기 힘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도울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이 충만해 질 때, 그때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성령이 내 가슴속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우리의 남편들을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전에는 아내가 남편을 위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아내를 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한 남자가 결혼해서 아내를 위해 살 수 있는 그런 새 시대가 왔다는 말입니다. 아내를 위하는 것은 한 사회의 문화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시대, 무슬림시대는 물론 100년 전의 우리나라, 심지어 지금도 우리 문화 속에는 여자가 무시당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물로 씻고 깨끗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살고 계시고 내 안에 성령님이 계셔서 내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케 해 주시니 내 아내가 나 때문에 영광스럽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여자는 흠이 있고 티가 있고 주름 잡힌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다지 좋게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한 남자를 만나서 주름살이 펴지고 티가 빠지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흠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 충만한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때문에 우리 모든 식구들의 흠과 허물이 다 덮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을 모두 덮어서 안 보이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에 충만하면 이와 같은 일을 우리 가정에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입술에 이런 기도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시고 성령을 주셨는데, 지금 저에게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과 같은 남편(아내)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나 때문에 내 배우자의 흠과 주름 잡힘이 없어지고 오히려 주름이 펴지는 축복이 있게 하시고, 내가 그 축복의 도구가 되도록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28-30절). 이렇게 돌봐서 나로 인해 내 아내가 행복해지고 내 자식들의 삶 속에 기쁨과 만족이 있다면 덕 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남편이 행복합니다. 내가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적으로 살기 때문에 아내의 얼굴이 찌그러지면 누가 손해를 봅니까? 한 집에서 아내의 찡그린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하는 남편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분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희생을 해서 여러분의 아내, 남편에게 행복과 웃음과 기쁨을 안겨줌으로써 여러분 가정에 큰 축복과 행복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에 다녀왔어요. 딸 셋 중에 한 명은 태국에 있어서 미국에 있는 딸 둘을 만났습니다. 공항에서 만나 서로 안아주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40대 젊은 딸들의 얼굴이 자기 엄마만 못하더라고요. 엄마 피부가 더 나아요. ‘아니, 이 아이들이 왜 이러지? 엄마가 화장하는 것을 안 가르쳐 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그래도 내 아내가 딸들보다 낫구나!’하며 감사했습니다. 일흔이 다 된 엄마가 40대 딸들보다 얼굴빛이 더 좋아서 제가 기뻤습니다. 물론 제가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제가 아내에게 “여보, 아이들 화장하는 법 좀 가르쳐줘!”라고 했더니 아내가 “그 아이들은 젊어서 상관 안 해요” 하더라고요. 여러분도 아내의 얼굴이 여러분 딸들의 얼굴보다 예쁘게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여러분 남편의 얼굴이 아들의 얼굴보다 더 빛나게 되길 바랍니다. 방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왜 계십니까?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로 매순간마다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나로 인해서 내 가족이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서 찬양을 즐겨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대인관계의 능력이 있어야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 때문에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우리교회 모든 가족들은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서 정말 좋은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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