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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대하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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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대하 16:1-12)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뉜 후 유다의 세 번째 왕이 된 아사에 관한 기록은 <열왕기상>과 <역대하> 두 역사서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록이 <열왕기상>에서는 15장 9절부터 24절까지 열여섯 절에 불과한 반면, <역대하>에서는 14장부터 16장까지 세 개의 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절 수로 보면 <역대하>에서는 마흔여덟 절이 아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열왕기상>에서의 기록보다 꼭 세 배가 됩니다. 

그러나 이 두 역사서 사이의 보다 중요한 차이는 그 기록상의 양보다 그 내용에 있습니다. <열왕기상>의 기록은 아사 왕의 행적을 간략하게 객관적으로 전할 뿐 그 어떤 신학적 평가도 덧붙이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역대하>의 기자는 아사가 행한 일들과 이에 따른 그의 나라와 백성에게 주어진 상황에 관하여 보다 자세하게 다루며 <열왕기상>에는 없는 내용까지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일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성찰과 평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하14:2-5에 보면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했습니다. 나라가 평안함을 누린 것이 아사와 그 백성이 하나님을 찾고 그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6절도 그것을 확인합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또 그 사실을 아사 자신도 분명히 믿고 있었다고 역대기 기자는 이어지는 7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이러한 역대기 기자의 신학적 성찰과 평가는 유다를 침공해온 구스의 백만 대군을 패망시킨 아사의 승전 기록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대하14:9-13입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아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를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편에서 싸워주시고 놀라운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성찰과 평가가 역대기 기자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의 약속에 기초한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다음 제15장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1-2, 7절) 아사는 선지자 아사랴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대하15:8, 16-17). 온 백성도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대하15:14-15). 그러자 “이 때부터 아사 왕 제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었다.”는 결론으로 역대기 기자는 15장의 기술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찾으며 그와 함께했기에 그의 약속대로 상급을 받아 전쟁 없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는 신학적 성찰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아사에 대하여 <열왕기상>은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왕상15:11) 그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고 긍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14절). 그러나 <역대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14장과 15장에서는 아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16장에서는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고 망령되이 행한 사실을 기록하며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은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가 다윗 같았다고 하기보다는 솔로몬을 닮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에 있어서 솔로몬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잘 하다가 뒤에 가서 잘못되었다는 뜻에서 그를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역대하>에서는 <열왕기상>에서처럼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왕상15:11) 하지 않고 “그의 조상 다윗 같이”라는 말은 뺀 채 그저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대하14:2)라고 쓰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오 마일 정도 거리에(그러니까 팔 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지척에)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루살렘으로 왕래하는 길목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사는 바아사의 이러한 도발에 대해 직접적인 무력대응을 하기보다는 외교를 통해 제삼국과 연합작전을 폈습니다. 

그는 전통적으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던 아람을 끌어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아사는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요청하기를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한 것입니다(본문 2-3절). 아람 왕 벤하닷은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주요 성읍들을 쳤습니다(본문 4절). 그 소식을 들은 바아사는 라마를 건축하던 공사를 그치고 철군했습니다(본문 5절). 

그러자 아사는 온 유다의 무리를 거느리고 라마로 가서 바아사가 건축하는 데 사용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습니다(본문 6절). 아사는 전쟁을 해서 백성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 없이 지혜롭게 전쟁을 피했으며 성전과 궁전의 은금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갖다 바치기는 했으나 그 대신 두 성읍을 건축할 수 있는 자재를 거저 얻는 실리를 챙긴 것입니다. 군왕으로서 나라의 위기를 역전시킨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 아사에게 선견자 하나니를 보내셨습니다. 그는 아사에게 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를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본문 7절)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더라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아람에 대해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터인데 아람 왕을 의지했으므로 후에 아람이 유다에게 화근이 될 것임을 예언한 말입니다. 하나니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본문 8절). 

구스의 백만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나 말과 병거가 심히 많은 다른 군대와의 전쟁에서도 아사가 하나님을 찾고 그를 의지했기에 그보다 적은 수의 군사로 놀라운 승리를 거둔 일을 잊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니의 엄한 질책이 뒤를 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본문 9절) 그런데 뜻밖에도 아사에게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반응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과오를 얼른 깨닫고 하나님의 용서를 빌기는커녕 크게 화를 내며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성 중에서 선견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학대하기까지 했습니다(본문 10절). 

본문은 아사의 이 온당치 못한 처신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응답이 무엇이었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후의 아사의 생애는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듯 11절에서 일단 그에 관한 기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그러나 마치 “아!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군!” 하며 말하듯 12절에서 다시 아사에 관한 언급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것은 뭔가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기술입니다. 아사가 발에 매우 위독한 병을 얻었고 그런데도 하나님께 낫기를 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만 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것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그의 편에 선 백성을 학대하는 등 잘못된 길에 들어선 그가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사의 삶이 머리부터 몸까지의 앞부분에는 좋았으나 발 끝 부분에 가서는 매우 잘못되었음을 상징적으로 가르치시려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아사는 결국 이년 간 발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본문 13절). 

우리는 유다 왕 아사의 종반기 삶에 관한 기록을 통해서 무엇을 봅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한 삶을 끝까지 잘 지켜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 하고는 말년에 발 병난 사람 같이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아사와 그의 군대가 구스의 백만 대군에 대해 압승을 거두고 돌아올 때 선지자 아사랴를 통해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꽤 오랜 동안 하나님을 잘 섬긴 아사였지만 그가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와 함께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의지해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가 행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가 누려온 지금까지의 번영을 우리 스스로 지켜갈 수 없습니다. 

월드컵 축구경기에 대한 열기로 많이 가려져 있지만 유엔에서는 남북한이 뜨거운 외교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억지 주장이 통하지 않자 북한은 외교관이 할 일이 없어지면 그때는 군대가 할 것이라고 전쟁을 각오하라는 듯 협박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전면전쟁을 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며 서울이 불바다 될 것이라는 해묵은 발언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게다가 북한과 꼭 같은 입장과 주장과 논조를 드러내는 세력집단이 여기 저기 고개를 들며 정부에 맞서고 북한정권에 동조하면서 감추고 있던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불안해합니다. 이제는 밖에서부터의 공격보다 안에서부터의 배신과 내분이 더 큰 걱정거리가 될 정도입니다. 이런 때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그저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밖에는 다른 힘이 없음을 절감케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으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나라 되면 아무 걱정 할 것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하나님을 더욱 철저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유다 왕 아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외국의 대군도 물리치게 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자기 발의 병도 고치지 못하고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신실할 때의 아사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됩시다. 아사처럼 나중에 잘못되지 맙시다.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그만을 의지하며 삽시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일한 힘이고 소망임을 잊지 맙시다.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한 말 중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면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우리에게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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