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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백성과 전쟁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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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과 전쟁 (출 17:8-16)

 
내 용 

6월 첫 주일은 우리 교회 창립 기념 주일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공교롭게도 현충일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전쟁터에서 피 흘려 희생된 병사들을 기념하는 이 현충일은 어느 나라든지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라는 이름으로 국가 기념일로 지킵니다. 우리나라 현충일은 6·25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는 군인으로서 전사한 경우도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그 분들의 고마움을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평화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인간 공동체의 평화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인 이 지구가 지구다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평화를 창조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창조인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은 역시 평화를 누리고 사는 길입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원리의 반대 입장을 가지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켜왔고 그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처참한 비극을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전쟁의 현장을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요즘 한반도는 천안함 사건으로 세계에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전쟁 위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면 남한도 북한같이 테러 행위를 자행했다면 아마 이 한반도는 열 번도 넘는 전쟁이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인내와 지혜로 더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평화가 한반도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북한이 하는 것처럼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분명한 것은 북한은 국제간의 인격적 파트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끔 TV에서 북한 방송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은 상대방과 전쟁을 할지라도 인격적으로 방송해야 그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입니다. 그런데 북한방송을 보십시오. 날마다 한방에 때려 부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인격적이지 못합니다. 인격적, 국제적 파트너십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도 북한에 가셨고, 노무현 대통령도 가셨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을 볼 때마다 남한에 오라고 초청했는데 국제간의 파트너십은 갔으면 와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발이나 합니다. 절대 인격적 파트너가 아닙니다. 인격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일을 하다가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군인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인은 누가 되느냐? 사람의 일생 가운데 가장 건강이 좋은 때입니다. 마음의 담력이나 신체적 에너지가 가장 활발한 연령에 군인을 나가게 됨으로 세계 모든 젊은이들은 최고의 능력이나 에너지를 전쟁에 바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전쟁과 기독교인’이라는 제목을 놓고 한번 생각해볼 때 잘못 생각하면 이율배반의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핵심적 진리가 뭡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겁니다. 그 진리를 배우는 우리인데 전쟁하는 군인은 날마다 받는 교육과 훈련이 “어떻게 하면 원수들을 때려 부수나?” “어떻게 하면 한꺼번에 많이 죽여 버리나?” 이것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원수들을 잔인하게 없앨수록 훌륭한 군인이 되는 논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이 총칼을 들고 이웃을 무참하게 죽인다는 것은 평화를 위장한 대량 살인의 악마적 행위가 아닌가라는 갈등이 생겨서 어느 특정 교파에서는 군인으로 안 나갑니다. 감옥에 가야 된다고 하면 “감옥에 가겠습니다.” 그 진리를 믿는 교리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3년 6개월 권투 시합을 못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군인은 나가지만 총칼은 손에 안 들겠다. 다른 일을 하겠다.” 끝까지 고집합니다. 군인이 그렇다면 이 'Memorial Day'에 국가는 왜 전쟁하다가 피 흘려 죽은 군인들의 정신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고 국가 공휴일로까지 정하는 것인가? 

전쟁에 대한 기독교 입장이 뭔가? 몇 가지 정리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명령하셨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전쟁을 명령하셨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지 아니하는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하여 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가 하나님의 의를 어두움의 세력으로 덮고자 할 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납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의로움이 하나 있습니다. 

5천년이라고 하는 긴 역사 속에서 그렇게 많은 전쟁을 경험했지만 한 번도 다른 민족을 불법 침략한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 몽골, 북한에게 항상 침략을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어떻게 하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뭐냐? 군인이라는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군인은 전쟁을 하기 위한 것보다 안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우리 군인이 있음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국가 조직 안에서 군대 생활을 기피하거나 총칼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남들이 피 흘려 싸워 지켜준 땅에서 나는 열매나 따 먹으면서 평안하게 살자는 파렴치한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젊은이들이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이 평화의 세계를 어두움의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악의 세력에 철저히 협조하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전쟁은 필요합니다. 전쟁은 악이지만, 전쟁을 안 하면 더 큰 악이 덮칩니다. 그래서 악과 악이 있을 때 작은 악을 선택해서 큰 악을 물리치기 위한 필요악이 전쟁이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목회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칼 바르트라고 하는 신학자는 히틀러와 싸우고 있는 체코의 군인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그리스도의 군대이다. 당신들이 있음으로 히틀러의 악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군인은 거룩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피를 흘립니다. 맥아더 장군이 국회에 불려 나갔습니다. 국회의원, 특별히 야당의원들이 맥아더에게 막 질문을 했습니다. 

“왜 이 전쟁을 끝까지 하느냐?” 맥아더 장군이 앞에 나가 연설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 여러분들이 이렇게 좋은 의사당 안에서 이런 권위 있는 세계 평화의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같은 군인들이 세계 도처에 나가서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서 케이크를 썰어가면서 행복한 대화를 나누고 아내와 함께 행복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우리 군인들이 세계 도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인 줄 아십시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유대 민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가는 도중 첫 번 만난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진행을 막고 있는 아말렉과 전쟁을 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왜 명령하셨는가? 하나님의 선한 역사 진행을 그들이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미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저 평화의 땅을 주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전쟁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평화롭게 모든 사람이 살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고 그 선한 목적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군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성경에 보면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에게 하나님이 철저하게 명령하신 게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은 자칫 맹수와 같아질 확률이 많습니다. 젊음의 에너지가 충만한 때이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자.’ 망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평화를 위한 군대가 아니라 마귀를 위한 군대로 돌변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비전투인은 죽이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해 버립니다. 죽이는 재미를 느낍니다. 항복하는 군인은 절대 죽이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다 죽여 버립니다. 성폭행을 일삼고 전리품이나 가져가는 것에 눈독을 들입니다. 그러면 그 집단은 마귀의 군대입니다. 성경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부족들이 자기들의 갈 길을 막으니까 전쟁을 하면서 지나가는데 아이성과 전쟁을 하려 했을 때 조그만 성이니까 많은 군대를 파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얕잡아보고 전쟁을 했는데 패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무슨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패전을 당해야 합니까? 다 죽어야 합니까?” “군인 중에 하나가 물질 탐욕을 부렸다. 부정을 행했다.” “누구입니까?” 그래서 금덩어리 하나를 훔쳐낸 아간을 잡아내서 죽여 버렸습니다. “너 때문이야. 우리 군대는 거룩한 군대야. 하나님의 역사 진행을 하고 있는데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무참하게 학살이나 하고 그 집의 금덩어리 하나 탐이 나서 몰래 감춰두는 너 때문에 망한 거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이 전쟁은 여호와 의가 나타나야 되는 전쟁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 위한 전쟁이니까 걱정하지 말라.”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이 전쟁으로 인해서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기도를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전쟁에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전쟁이라야 의롭습니다. 침략과 악을 위한 전쟁은 언제나 다 망했습니다. 테러 국가는 절대 발전하지 못합니다. 북한은 테러 국가입니다. 그래서 발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G20에 들어갑니다. 하도 힘이 빠져서 손이 내려오면 오늘 성경 말씀에 옆에서 협조자들이 와서 손을 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기도만 하고 군인을 내보내지 않는다든지 군인만 내보내고 기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전쟁은 함께 있는 일이다.” 6·25 전쟁 때 이스라엘 나라의 사령관이 방송국으로 가서 계속 시편을 낭독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쟁을 하자.” 뜻은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한 전쟁에 논리를 가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기 위해서 군인의 제도를 가지고 있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군인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전쟁 이야기는 영적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군대가 모집된 우리들이 조직을 가지고 악의 세력과 싸워 나가는 신앙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군대 조직이나 영적 군대 조직이나 이 원리를 지켜 나간다면 반드시 승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영적 십자군 조직입니다. 아말렉이라는 마귀의 군대는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해 주기 위해서 피 흘려 죽은 병사들을 추모하는 이 현충일에 우리는 십자가 군대 병사로 사회악과 싸워야 되는 영적 군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국가적 의미 있는 날 우리는 주님이 온 세상이 다 젖과 꿀이 흐르는 평화의 땅을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기억하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 희생된 병사들을 함께 생각하면서 오늘 이 성찬의 떡과 잔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의 떡과 잔은 주님의 피로 나와 주님의 공동체됨을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마피아 조직을 영화화한 대부(The Godfather)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마피아 두목들이 원 테이블에 앉아서 회의를 합니다. 

“우리가 싸우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공존할 것인가?” 회의를 해서 “같이 살자.” “그러면 함께 피를 나누는 의식을 통해서 우리 피차 함께 사는 의식을 하자.” “그러자.” 원 테이블의 두목들이 새끼손가락 한마디를 끊어서 가운데 물 컵에다 피를 뚝뚝 떨어뜨려 돌아가면서 한 모금씩 마시고 “우리는 한 피다.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돼. 알겠나?” “예.” 그래서 마피아 조직들이 무서운 겁니다. 지금 러시아는 마피아 조직들을 대통령도 못 건드립니다. 

하다못해 동네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마피아 허락 없이는 못합니다. 마피아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그 조직이 무서운지 모릅니다. 미국도 한때는 알 카포네가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굉장히 강한 조직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막 순교자 같이 성찬식 하듯이 합니다. 그래서 그 조직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이 성찬 예식은 주님과 내가 함께 피를 섞어서 마시는 겁니다. “나는 이제 살아도 주님과 함께 살 것이며 죽어도 주님과 함께 죽을 것이다.” 그 각오를 하는 사람들이 이 떡과 잔을 마시고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대한민국이 영원히 젖과 꿀이 흐르는 평화의 복지가 되길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찬의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살아도 주님과 함께 살고 죽어도 주님과 함께 죽는 의미로 이 떡과 잔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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