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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막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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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막 9:14-29)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악취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쓰레기통을 치우고 거리를 청소하는 일을 평생 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일에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표정이 늘 밝다는 점입니다. 하루는 그 점을 궁금하게 여기던 한 젊은이가 힘들지 않으시냐고, 어떻게 항상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느냐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젊은이의 질문에 환경미화원은 ‘젊은이, 나는 거리와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창입니다. 이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자신의 일을 ‘돈벌이’나 ‘거리 청소’가 아니라 ‘지구를 청소하는 일’ 로 마음의 창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지구를 청소하고 있는 마음은 단순한 돈벌이나 거리 청소의 마음보다는 훨씬 상위 수준의 마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바로 이런 상위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냥 하루하루 대충 사는 거지 뭐!’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 일을 하고 있지’ ‘남들도 다 안 하는데 뭘’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삶에 접근하다 보니 그들에게는 무엇을 해도 행복함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항상 행여나 일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를 걱정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들은 설령 99% 성공 가능성이 있더라도 1%의 실패 가능성에 연연해하며 ‘혹시 실패하면```’이라는 자기 방어적인 마음으로 인해 매사에 소극적입니다. 

그러기에 부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는 ‘YES’ 보다 ‘NO’라는 대답을 자주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창이 어느 방향을 향해 있고 얼마나 크게 열려 있는가는 행복한 삶을 사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방향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은 사람은 절대로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부정적인 방향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은 사람을 통해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람은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부정적인 방향을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 놓은 것과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 놓은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귀신들리고 간질병 걸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산에 올라 가셔서 그 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힘을 모아 기도했지만 아이가 낫지를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당황스러워 했고 주변의 사람들은 웅성거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로 나아가 귀신들리고, 간질병에 걸린 아이의 상황을 말하며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아이의 아버지를 꾸짖으십니다. 꾸짖으시는 말씀이 23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아이의 병이 얼마나 중한가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과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며 아들의 문제를 해결보다 먼저 아버지의 부정적인 마음과 믿음을 긍정적인 마음과 믿음으로 바꿀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믿음을 지적받은 아버지는 ‘소리를 높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라고 고백합니다. 부정적인 방향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아이를 향해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리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때 귀신이 소리를 지르고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킨 후에 나갑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해결받기 원하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끌어 안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사단의 특성은 우리들의 약점과 허물을 들춰 내며 ‘너는 할 수 없다. 너는 안 된다. 네 주제를 알아라’ 고 말하며 우리로 하여금 자꾸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을 품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된다. 너는 나의 존귀한 자다’ 라고 말씀하시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단점을 확대해 크게 보시기보다 우리의 장점을 더 크게 확대해 보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볼 때 여덟 아들 중에 가장 약한 막내로만 보았습니다. 왕의 재목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목동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왕의 재목을 찾는 사무엘에게 보여 주지도 않고 들판에서 양을 치게 하였습니다. 너는 왕의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위대한 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너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다’ 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어린 다윗은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위대한 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평생 자신을 인정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됩니다. 코흘리개 어린 다윗에게서 미래 위대한 왕의 모습을 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이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작은 돌, 약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부모님은 아마 자신의 놓인 처지를 생각하며 아들을 귀한 인물로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꿈이 없는 삶을 아들의 이름을 통해 표현한 것 같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성장해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평범한 어부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결국 시몬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작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꿈이 없으면 그 자녀에게 꿈을 심어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갈릴리 바다에서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고 말씀하시며 그의 이름을 베드로라 이름을 바꿔 주었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큰 돌,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부모는 베드로 안에서 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면 예수님은 베드로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변화된 베드로는 정말로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처럼 초대교회에서 반석과 같은 존재로 세워졌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는 삶의 내용이 부정적인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보다 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찾습니다. 그들은 해야 할 이유 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들은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소극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생각을 하며 행동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합니다. 할 수 없다는 마음보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임합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소극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마음이 아니라 성취하는 보람과 기쁨을 가지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적극적으로 임합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마음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한 결 같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야곱이 그러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는 부정적인 마음이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마음이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단점이 나를 지배하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장점이 나를 지배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단점에 지배를 받으며 부정적인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의 창을 열어 놓은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오늘 본문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외치며 부정적인 방향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일어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할 수 있다 하신 주’ 라는 찬양이 있는데 우리 함께 한 번 불러 보며 마음의 창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짝 여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이 한 주간도 살아갈 때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가며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눈을 가지고 우리 자녀에게서, 가정과 일터, 교회 안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창을 활짝 열고 힘차게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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