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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화위복 (삼상 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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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삼상 30:1-6)
  

국민일보의 ‘역경의 열매’라는 섹션에 카이스트 고등과학원 김인강 교수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김인강 교수는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신문에 난 그의 간증을 몇 군데 읽어드리겠습니다.

“수술이 잘 됐지만 서울 신림동 반 지하방에서 몇 개월 동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 가을 문턱에 닿자 구멍 났던 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바깥세상을 구경하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때 바라보던 관악캠퍼스 위의 파란 가을 하늘과,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던 찬란한 맑은 햇빛과 공기, 바람을 나는 아직도 느낄 수 있다. 햇살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나는 미처 몰랐었다. 이 세상에서 감사할 것 중에, 고통 없이 숨 쉴 수 있고 마음껏 태양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도 깨달았다.(고통 없이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번엔 오른쪽 폐에 똑 같은 증상의 통증이 나타났다. 다시 병원에 가서 방사선촬영을 했다. 의사는 같은 병이니 또 수술하자고 했다.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폐가 갑자기 파열돼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는 죽음보다도 왜, 언제까지 이 고통을 참아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고 싶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기도원에 가보기로 결심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한적한 산속에 있는 기도원을 찾았다. 그곳에는 갖가지 질병과 삶의 문제로 찌든 사람들이 마지막 끄나풀을 잡으려는 듯 모여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한쪽 구석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누군가 부르는 찬송소리가 내 가슴을 내리 찍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는 곡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 자복했다. 내가 얼마나 교만한 자였는가를. 작고 작은 피조물이 육신의 질고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 목을 세우고 변론하였던 무례함을 회개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적인 얕은 지식으로 나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대해 하나님을 공격하였던 죄를 털어놓았다.

다음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의 뜻대로 날 받으시라고. 하루 6시간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빚으심대로 나를 내어 드렸다. 욥이 드렸던 기도를 똑같이 드렸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로다.(욥23:10)”

그는 그렇게 단련을 받은 후 지금 정금처럼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저가 이 간증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슬픔, 아픔, 고통, 가난, 질병, 실패....... 그 어떤 이름의 고난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붙들리라.”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성공시키리라.”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행복하게 하리라.”
하나님이 들려준 음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사실이 진실임을 확인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블레셋왕 아기스의 요청을 받고 다윗일행이 출정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군사들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 다윗은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도와 자신들을 배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배반하여 이스라엘 군사들과 협공한다면 블레셋은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삼상29:4절 “블레셋 사람의 뱅백들이 그(아기스 왕)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래서 다윗 일행은 그들이 거주했던 ‘시글락’으로 철수했습니다.

1. 다윗이 만난 화란?

그런데 그들이 없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부 지역에 살고 있던 아멜렉 족속들이 시글락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남정네들이 전장에 나간 사이에 남아있던 이스라엘의 아녀자들이 큰 화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2-3절에 나옵니다.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성은 불탔고, 아내와 가족들은 사로잡혔는데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흥분한 사람들은 지도자인 다윗에게 그 책임을 돌렸습니다.
6절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고향을 떠나 블레셋까지 따라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600명의 추종자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할 정도로 민심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실로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다윗이 받은 복은?

그런데 삼상30장 7절 이하에 보면, 다윗이 이 위기를 잘 극복했습니다. 
사로잡혔던 가족들을 도로 찾았습니다.
전리품도 챙겼습니다.
전리품을 백성들과 나누고, 유다 장로들에게도 보냄으로 민심을 얻었습니다.
26절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아멜렉이 시글락을 공격한 사건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다윗이 이끄는 공동체 자체가 완전히 와해될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다윗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승리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주는 성도들의 궁극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성도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절망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실패는 과정상 잠시 잠간의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복음성가 -하나님의 사랑을

3. 전화위복을 만든 요인들은?

다윗이 전화위복이 된 요인들을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 요인들을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습니다.

1)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8절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얘기이지요?
지금 다윗의 처지가 어떠합니까? 
따르던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을 상황입니다.
붙잡혀간 처자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가면 ‘수영로 교회’라는 큰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한 정필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개척한 지 몇 년 안 되어 500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흥하면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언뜻 들더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 주 수요일 예배에 반주자와 아내,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만 있을 뿐 어른 성도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큰 위기감을 느끼고 그날 저녁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기도하던 중 주님께서는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니가 해? 내가 하지!” 이렇게 세 번이나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교회가 이렇게 부흥된 것은 설교를 잘하거나 목양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하신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이 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저는 그저 교육전도사처럼 심부름만 잘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답니다.

그리고 교회에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주님이 담임목사이시니 잘 해결하셔야 합니다. 잘못되면 주님 망신입니다. 아시지요?”라고 기도한답니다.
이후로 목회는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를 그저 목도하는 나날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먼저 기도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다윗이 시글락 사건을 전화위복으로 만든 것은 잊었던 기도를, 잃었던 기도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잃었던 기도를 회복하셔서 전화위복되십시오.

2) 적에게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11절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다윗은 400명의 군사와 함께 아말렉을 뒤쫓아 가다가 도중에서 애굽 소년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말렉 사람의 종으로서 병이 들어 버림을 받은 소년이었습니다.
아마 아말렉 주인은 병들어 더 이상 종으로 쓸모가 없고, 이동하는 데에도 방해가 됨으로 그 애굽 소년을 버렸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병이 들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병들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두면 들짐승이 먹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 소년에게 떡, 물, 무화과 덩이 하나,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애굽 소년에게 제공한 음식물 내역을 자세하게 나열한 것은 다윗 일행이 그를 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이냐? 일이냐?’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한시가 급한 추격전에서 죽어가는 노예 하나를 돌보기 위하여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을 소중히 여깁니다.
정신을 회복한 소년은 다윗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감동을 받으면 헌신합니다.
그래서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다윗에게 제공했습니다.

삼상30:15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결국 이 소년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여 다윗 일행의 추격전은 승리로 마감하게 됩니다.

사람을 중요시 여기십시오.
사람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리고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면 정말 중요한 사람을 잃고 맙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윗이 시글락 사건을 전화위복으로 만든 것은 죽어가는 노예조차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중요시하는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3) 화합을 도모했습니다.

24절 “이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다윗의 추격대에 낙오병이 생겼습니다.
다윗의 병사들은 아벡이란 전장에서 떠나 3일 만에 거주지인 시글락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글락에 도착하여 보니 살던 집이 불타고, 아내와 자녀들이 피랍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접하고 그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그런 상태에서 다윗일행은 숨도 돌릴 새도 없이 60리를 추격했습니다. 
그러니까 브솔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200명의 군사들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남은 400명을 이끌고 추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많은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군사 중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낙오자들에게는 전리품을 나누어주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대에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에게만 전리품을 나눠줬습니다.
전리품은 그들이 전쟁에 참여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불문율이었습니다. 
만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리품을 나눠준다면 다음 전쟁을 어떻게 치룰 것입니까? 

아무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전리품만 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명분으로 군사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리품을 나눠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낙오자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주지 않으면 실망할 것입니다.
낙오되었다는 정신적인 패배감과 전리품을 얻지 못했다는 물질적인 박탈감이 클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공동체의 통합이 무너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은 설득합니다. 
“전쟁에 승리한 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따라서 전리품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맞다.”
다윗은 공동체의 화해와 통합을 우선했습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은 하나밖에 없는 10대의 남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딸도 있었습니다.
방 두 개의 좁은 아파트에서 남동생과 함께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0여년이 흐르고, 동생이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입영하는 날 동생은 형에게 100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편지를 건넸습니다.

“형, 그동안 고마웠어.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부모님 대신 나를 이만큼 키워줘서 고마워. 어려운 살림 때문에 형님 부부가 휴가 한번 제대로 못간 것 알아. 영장 받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야. 이번 여름에 형수님이랑 조카들이랑 바닷가 한번 다녀와.”

형은 눈물지으며 말했습니다.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대학생 되고, 학비 용돈 다 스스로 벌어 썼는데 내가 뭐 해줬다고. 내가 미안하지........”
정말 아름다운 형제간입니다.
왜냐하면 남 탓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가정이 아니라 자기 탓하고 모아지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화합하고, 하나 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다윗이 시글락 사건을 전화위복으로 만든 것에는 화합과 하나 됨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고, 화합하는 공동체에 전화위복의 축복이 임합니다.

나가는 말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전화위복입니다.
어려운 일이 복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좋으신 하나님이 그 일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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